기간제 ‘2년’의 간단한 해법 [하종강 칼럼]

한겨레 2026. 4. 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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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 직원 김아무개군의 가방에 있던 스패너 등의 작업 공구와 컵라면, 스테인리스 숟가락, 일회용 나무젓가락. 유가족 제공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에는 “총 파견 기간은 2년을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지만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굳이 ‘2년’이라는 기간을 명시했을까? 2년 동안 계속 존재했다면 장기 지속적으로 필요한 일자리로 보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은 기업이 단기적으로 노동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비정규직 개인의 삶은 물론 기업 경쟁력이나 국가 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고용 형태이다.

우리가 그 이름을 온전히 부르지 못한 채 ‘구의역 김군’이라고만 표현하는 사건이 있다. 2016년 5월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하청회사 소속 19살 청년 노동자 김군이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다. 김군의 가방 속에서 스패너 등 작업 공구와 함께 미처 뜯지 못한 컵라면이 발견돼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매년 5월28일이 될 때마다 구의역 사고 장소에는 “천천히 먹어” 등의 글귀와 함께 컵라면이 놓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서울교통공사)는 우여곡절 끝에 스크린 도어 수리 담당 노동자 400여명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사람은 “회의를 100번 이상 열었다”고 소회를 전한다. 그 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2015년 2만196건이었던 스크린 도어 고장 건수가 3년 뒤 2018년에는 3495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6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을까? 알고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비정규직 중에 자신의 일터를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할 사람들이다. 일하다가 문제점이 발견돼도 개선하고 싶은 의지가 생기기 어렵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공통으로 발생한다. ‘평생직장’인 자신의 일터에서 문제점이 발견될 때마다 개선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제시한 개선 방안 몇가지를 회사가 받아들여 위와 같은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 승무원 29명 가운데 15명이 비정규직이었고, 승객 구조를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도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배를 직접 조종하는 조타수 3명도 6개월 내지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이름도 몰랐다고 알려졌다. 자기 직장에 애정을 가질 수 없는 고용 구조였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언론 보도에서는 “세월호에서 일했었는데 너무 위험해서 그만두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대부분 정규직이었다면 세월호의 문제점이 사전에 개선됐을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으려는 비정상적 경영 방식이 불러온 비극이기도 했다.

2006년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제정할 당시 민주노총 등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를 2년마다 해고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 제정을 주도했던 정부에서는 “숙련 노동자를 해고하면 생산성이 낮아지고, 신규 노동자 채용에 따르는 비용 부담 때문에 기업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밀어붙였다. 여당 국회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이 과장할 수는 있지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변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법이 제정된 뒤 경영계에서는 그 기간을 3년이나 4년으로 늘려달라는 요구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점 민원 사항으로 꾸준히 제기해왔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조차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2년이 지난 뒤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규정을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그 일자리에 적용하는 규정으로 개정하면 된다. 2년이 지나는 시점부터는 사람이 바뀌어도 그 직책에서 일하는 사람은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이 되는 것이다. 입법 기술상 어려운 일도 아니다.

씨유(CU) 진주물류센터 파업 현장에서 화물연대 노동자가 회사 쪽 대체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던 이가 말한다. “세상 참 안 변하네요.” 이재명 대통령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정부에서조차 변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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