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6년 만에 33세 요절… “한국적 리얼리즘” 소설가 김소진

이한수 기자 2026. 4. 2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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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97년 4월 22일 33세
소설가 김소진.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김소진(1964~1997)은 작품집을 낼 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첫 소설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조선일보 서평 지면 톱 자리에 실렸다.

“63년생(*음력 12월 3일)의 신예작가 김소진의 첫 창작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 횡행하는 최근의 문학풍토에서 보면 별종에 속한다. 지식인의 관념적 독백이나, 산업사회의 도시적 이미지들로 가득찬 신세대 소설이 자기 고백체의 틀에 갇혀있는 것에 비해 이 창작집에 실린 11편의 단편소설들은 90년대초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조명하는 리얼리즘을 토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1993년 5월 8일자 14면)

1993년 5월 8일자 14면.

두 번째 소설집 ‘고아떤 뺑덕 어멈’은 박스 기사로 소개됐다.

“63년생인 작가 김소진씨는 이번에 펴낸 두 번째 창작집을 통해 빈곤의 유년기와 성장기를 털어놓고 있을 뿐 아니라 80년대 학번으로서 그 자신도 가담했던 대학 운동권의 후일담을 들려준다. 단편 ‘개흘레꾼’에서 작가는 “아비는 개흘레꾼이었다”고 외치고, 또다른 단편 ‘혁명기념일’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대의 현주소를 다루고 있다.”(1995년 2월 11일 자 20면)

1995년 2월 11일자 20면.

세 번째 소설집 ‘자전거 도둑’을 냈을 때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김소진은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아버지 모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 탐색과 세상 읽기를 시도했다”면서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내려왔으나, 사회·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아버지의 왜소함은 바로 우리 앞세대의 아픈 모습”(1996년 4월 2일 자 22면)이라고 말했다.

1996년 4월 2일자 22면.

“또래 작가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도시 주변부 서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을 꾸준히 발표, 한국적 리얼리즘의 전통을 잇는 유망주”(1997년 4월 23일 자 25면)로 주목받던 그는 33세 때인 1997년 4월 22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등단 6년 4개월 만이었다.

“그는 생전에 “내 문학의 텃밭은 서울 길음동 미아리 산동네이고, 고단한 생애를 살아온 어머니의 말 하나 하나가 내게는 모국어 어휘의 세례였다”고 말했다. (…) 그는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90년대 작가 중 하나였다. 그는 평소 호주가도 아니었고 말수도 적었다. 그런 그가 암과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퍼지자 그 또래 문인들은 홧술을 마시면서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한국문학사 속으로 사라졌다.”(1997년 4월 23일자 25면)

1997년 8월 12일자 17면.

1993년 결혼한 소설가 아내 함정임은 김소진이 투병 중일 때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함정임은 남편이 떠나고 투병과 간병 과정을 그린 단편 ‘동행’을 발표했다.

“이들은 서로가 갓 등단했던 93년 결혼해 아들 태형(4)군을 두고 인생과 문학의 동행자로 지냈다. 단편 ‘동행’은 남편이 암으로 타계하기 전 한 달간의 간병기가 토대다. (…) 뱃속의 아이는 과로로 엉망이 된 어미의 몸을 결국 떠났다. 임종 며칠 전 남편은 그 사실을 눈치챈 듯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 함씨는 이 소설의 끝에 얼굴도 못 보고 잃어버린 아이를 향한 편지를 붙였다. ‘태어나지 못한 불쌍한 아가야. 아빠가 떠날 낯설고 외로운 길, 길동무나 같이 하면 나 또한 태형이와 함께 평생 동무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세를 기약하며 그동안 부디 평안하여라.’”(1997년 8월 12일 자 17면)

1997년 4월 23일자 25면.

김소진은 서울대 영문학과 82학번으로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다 1995년 전업 작가로 나섰다. 타계할 때까지 6년 3개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 2002년 5주기를 맞아 ‘전집’을 출간할 때 책 6권에 이르는 분량이었다. 군 복무 시절 2000쪽 넘는 ‘새우리말큰사전’을 “꼼꼼하고 무식하게 씹어 먹으며” 우리말을 공부해 탄탄한 필력을 쌓았다. 그의 소설은 교과서에 실리고 대학 입시 시험에도 출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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