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리뷰] 박해영 작가 신작 JTBC '모자무싸', 주인공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작가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지난 18일 첫 선을 보이고 2화까지 공개됐다. 시청률은 2.2%(닐슨 코리아 기준)로 출발했다. 전작 <나의 해방일지>가 2.9%로 시작해 6.7%로 마감했고, <나의 아저씨>는 3.9%로 시작해 7.4%로 마친 것을 감안하면 전작들보다 다소 낮은 출발이지만 이 드라마를 시청률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일종의 '무가치함'일 수 있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는 팬덤이 강하고, 그 색이 워낙 뚜렷해서 팬덤 외 새로운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엔 쉽지 않은 결의 콘텐츠다. 물론 새로운 '팬덤'이 될 시청층을 확보할 수도 있다. 전작들이 아이유, 이선균, 손석구, 김지원 같은 이른바 '메이저' 배우들로 화제를 모았듯, 이번 작품 역시 고윤정과 구교환이라는 주목받는 배우들이 전면에 섰다. 특히 구교환은 최근 영화 <만약에 우리>로 흥행 배우 반열에 오르며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구교환 배우 외 도대체 누가 이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여기에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을 연출한 차영훈 감독의 연출로 특유의 자연적 감성이 더해지고 세련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20년 동안 데뷔하지 못한 '영화감독' 황동만(구교환)의 질투와 시기를 담은 객기, 그를 둘러싼 영화계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PD(고윤정)가 이끌어가는 정신분석적 전개까지, 드라마가 다루는 소재와 대사들에는 박해영 작가 특유의 짙은 색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심지어 제목도 전작들보다 훨씬 길고 비주류적인 느낌까지 든다. 드라마 이름은 짧아야 한다는데 왜 이렇게 긴 제목인 걸까.

'나의 무가치함'이 아닌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인 이유
표면적으로 드라마의 무게 중심은 20년째 데뷔를 못 한 황동만이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일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목이 <황동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아니라 <모두가>라는 점을 한 번 더 곱씹게 되는 순간, 드라마의 지형은 달라진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은 황동만만이 아니다. 이는 전작인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두가 '해방 대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구원에 이르는 전개는 이번 드라마에서도 동일할 것으로 예측된다. 어쩌면 그 방향 때문에 전작들 제목에서 공통점으로 나타났던 <나의>라는 단어가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내내 황동만을 뒷담화하는 주변 인물들은, 그를 무가치한 존재라 단정하면서도 동시에 극도로 미워하고 경계한다. “왜 무가치하다는 사람 이야기를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다. 잘나가는 영화사 최필름 대표 최동현(최원영)은 황동만에게 아무도 차마 못 하는 말, “넌 이 바닥에서 안 돼”를 직접 던지는 인물이다. “다들 고고하셔서, 쌍놈인 내가 대신 말해줬어”라며 쾌감을 내비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역시 황동만의 시나리오를 '직접' 읽어보지는 않는다.
이 기묘한 적의의 실체를 짚어주는 인물은 고박 필름 대표이자 박정세 감독(오정세)의 아내인 고혜진(강말금)이다. 이미 여러 편의 장편 영화를 찍은 박정세 감독은 황동만을 죽이는 상상을 담은 시나리오를 이야기할 정도로 그를 비정상적으로 미워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어디 나랑 같은 급으로 놀려고 해”라고 중얼거린다. 이에 고혜진은 “당신이 데뷔 못 했으면 달랐을 것 같아? 너는 더 심했을 거야. 황동만과 다른 인간이고 싶으면 다른 인간인 걸 좀 보여줘. 다르다고 징징거리지 말고”라고 말한다.
결국 지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뒷담화만 하는 인간은 그와 같은 급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황동만을 그토록 미워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결국 그가 언젠가 데뷔해서 자신보다 좋은 영화를 찍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제목은 <황동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주인공에게만 공감하도록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황동만이라는 인간이 너무 꼴보기 싫어서 오히려 그를 다그치는 주변 인물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신의 영화는 찍지도 못했으면서 남의 영화를 줄기차게 비판하는 그에게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죽어라 자기 길만 가는 인간, 죽어라 남욕만 하는 인간. 근데 남 욕을 절대 그만 둘 순 없어. 자신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방법이 그것뿐이니깐”이라고 황동만에게 말하는 박정세 감독의 말에 속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이쪽저쪽 고개를 끄덕이고 이쪽저쪽 동정하다가 순간, 뜨끔하게 된다. 이 사람 저 사람에 번갈아 공감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구조다. 여기에 SF적 설정인 '감정 시계' 같은 장치들이 색다른 기대감을 더하기도 한다. 박해영 작가가 말아주는 사랑 대사도 마찬가지로 기대 포인트다.
드라마의 상징적 공간으로 보이는 철길 위에 쓰인 문구 하나가 앞으로의 방향을 암시한다. “갇혔을 땐 돌파하세요.” 이 드라마는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무가치함을 논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건 아닌가' 묻는다. 황동만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그를 비웃을 수도 있고, 안쓰러워할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를 둘러싼 그 어떤 인물에도 마찬가지다. 박해영 작가가 늘 그래왔듯,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가장 솔직한 거울을 들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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