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브랜드를 고르는 시대… P&G CEO “마케팅 공식이 붕괴됐다” [어도비서밋2026]

원호섭 기자(wonc@mk.co.kr) 2026. 4. 22.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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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에서 선택되는 것으로”
SEO·광고 중심 마케팅 한계 직면
하루 수백개 콘텐츠… AI 없인 불가능
P&G “오케스트라 규모 재즈 필요”
샤일레쉬 주리카르 P&G CEO(오른쪽)와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어도비 서밋 2026 기조강연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어도비 유튜브 캡처]
인공지능(AI)이 소비자를 대신해 제품을 비교하고 추천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글로벌 브랜드 전략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검색엔진 최적화(SEO)와 광고 노출에 의존해 온 기존 마케팅 문법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 접점을 지킬 수 없다는 진단이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과 디지털 경험 기업의 수장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어도비 서밋 2026 둘째 날 기조강연 무대. 65개 브랜드를 180개국 50억 명에게 파는 프록터앤드갬블(P&G)의 샤일레쉬 주리카르 최고경영자(CEO)와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인도 하이데라바드의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4년 선후배 사이. 익숙한 거리감이 무대 위 대화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대담의 화두는 AI 시대 브랜드 전략의 재편이었다. 나라옌 CEO는 이 변화를 ‘브랜드 가시성’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검색 결과 상단과 광고 지면에 보이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하는 과정에서 ‘선택되는 것’이 관건이 됐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를 탐색하기보다 AI 비서가 선별한 결과를 받아보는 환경이 확산되면서 응답 결과에 포함되지 못한 브랜드는 사실상 소비자 접점에서 배제될 위험이 커진다는 분석이다. 어도비가 같은 행사에서 ‘브랜드 인텔리전스’와 ‘CX 엔터프라이즈’를 전면에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P&G는 1932~33년 라디오 드라마에 자사 비누 광고를 끼워 파는 방식으로 ‘소프 오페라’라는 매스 마케팅 모델을 발명했다. 100년 가까이 전 세계 마케터들이 변주해 온 원형이다. 주리카르 CEO는 그 원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오늘날의 세대는 미래의 소프 오페라를 만들 기회를 갖고 있다”라며 “다만 그건 더 이상 소프 오페라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꺼낸 비유는 ‘재즈’였다. 과거 마케팅이 소수의 크리에이터가 만든 록 밴드 음악이었다면 지금은 창작이 분산된 재즈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글로벌 기업에 필요한 건 그냥 재즈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가진 재즈 밴드”여야 한다고 그는 표현했다.

분산된 창작을 글로벌 스케일로 운영하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주리카르 CEO가 브랜드 매니저였던 시절에는 1년에 광고 한두 편을 만들어 2~3년간 집행했다. 지금은 다르다. 매일 수백 개의 콘텐츠가 브랜드의 목소리, 소비자의 목소리, 전문가의 목소리로 동시에 생산된다. 그는 “AI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AI는 생산 도구를 넘어 마케팅 인프라 자체가 됐다는 설명이다.

변화는 마케팅 부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주리카르 CEO는 공급망 혁신을 진단, 예측, 처방으로 이동하는 흐름으로 정리했다. 업계 대부분이 예측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AI가 처방 단계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P&G가 1년 반 전 독일 베를린 질레트 공장에서 진행한 파일럿이 대표 사례다. 평소 500명이 움직이던 라인의 야간조 4시간을 무인으로 돌려봤다. 라인 위에 단 3명만 남기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아무도 없는 운영이었다. 검증을 마친 P&G는 이 방식을 여러 공장으로 확대하고 있다. 품질 관리 영역에서는 센서와 카메라가 모든 제품을 검사하고 에이전트끼리 대화해 라인의 센터라인을 자동 조정하는 개념검증(PoC)도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건 직원들의 반응이다. P&G가 매년 3월 진행하는 조직건강도 조사에서 베를린 공장은 회사 내 최상위권에 올랐다. 자동화 라인을 운영하던 인력이 “더 발전된 일, 미래를 짓는 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는 게 주리카르 CEO의 설명이다.

양사는 “브랜드 경쟁의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소비자가 직접 브랜드를 탐색하던 시대에서 AI가 정보를 선별하고 추천하는 구조로 전환되면서 기업들은 기존 검색 중심 전략을 넘어 ‘AI 최적화’ 전략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리카르 CEO는 “우리는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가진 재즈 밴드가 되어야 한다”라며 “어도비가 만든 AI와 같은 도구들 없이는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라스베이거스 원호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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