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 의료취약지 강원에 살다] 3. 원정진료의 실태

이설화 2026. 4. 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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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3000㎞ 모녀는 달렸다 살기 위해…
양구 거주 27개월 여아 시은이
춘천어린이재활센터 원정진료
선천성 심장병·기관지연화 등
내년 1월까지 서울 진료도 병행
엄마 남경아씨 희귀질환 앓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통원
소모품·주유비 월 160만원↑
“중증 질환자 지원 사각지대
최소한 도움 받을 창구 절실”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수도권 이동이 불가피한 지역 환자들이 ‘원정진료’로 다시 건강을 잃는 악순환 속에 있다. 두 살 딸과 나란히 희귀질환을 갖고 있는 남경아(28) 씨는 지난달 원정진료로 3000여㎞를 오갔다. 벚꽃이 한창이던 지난 봄 경아 씨를 만났다. 그는 원정진료가 일상이 된 생활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을 견디고 있었다.

▲ 지난달 12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동 중 남경아 씨가 홍천 부근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딸 시은이의 밥을 먹이고 있다. 선천성 심장병 등으로 중증 수술 여러 개를 마친 아이는 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다

■ 엄마는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3월 12일. 초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차창으로 내리쬐는 봄볕이 따스했다. 나른할 법도 한데 운전석에 앉은 경아 씨는 분주했다.

이날 출발지는 춘천의 공공어린이재활의료센터, 도착지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다. 양구에 거주하는 모녀는 이미 춘천으로 한 차례 이동을 마친 뒤였다.

딸 시은이(27개월)는 어린이재활의료센터에 다니고 있다. 오전 9시 무렵 낮병동에 입원해 하루 3~4개의 치료 프로그램을 마친 뒤 오후 3시쯤 퇴원하는 일정이다. 경아 씨는 아이를 운전석 뒷자리에 태우고 평일 오전 춘천~양구를 오간다.

아이는 복합 선천성 심장병, 디죠지증후군, 파브리병, 선천성 기관지연화 등을 갖고 태어났다. 병원에서는 생사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아이는 큰 수술을 모두 이겨냈다. 자가 호흡이 어려워 기도 절개를 했고, 그 탓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지낸다. 배에 위루관을 달고 있는 아이는 아직 입으로 음식을 삼키는 일이 쉽지 않다. 경아 씨는 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주입하는 ‘피딩’으로 하루 다섯 차례 시은이 밥을 먹인다.
▲지난 2일 삼성서울병원 주차장에서 남경아 씨가 딸 시은이 피딩(위루관을 통해 영양을 주입하는 행위)을 위해 피딩백을 채우고 있다. 이설화 기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경아 씨 목적지다. 그 역시 희귀질환인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손발이 압정에 찔리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반복됐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10여년 전인 2017년 아버지가 파브리병 진단을 받으면서 경아 씨도 같은 질병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희귀질환 치료로 경아 씨는 2주에 한 번 병원에서 효소 주사를 맞고 있다.

이동이 잦다보니 운전과 아이 밥 때가 겹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날도 그랬다. 경아 씨는 춘천~원주 이동에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선택했다. 출발 20분 만에 갓길에 차를 세웠다. “시은이 밥 먹자.” 엄마의 말에 아이는 동그랗게 입을 벌렸지만, 경아 씨는 미음이 담긴 주사기를 위루관에 찔렀다.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변에서 경아 씨는 그렇게 밥 먹이기를 세 차례 더 반복했다.
▲ 지난 10일 춘천의 공공어린이재활센터에서 남경아 씨와 딸 시은이가 봄을 만끽하고 있다. 자가 호흡이 어려운 시은이는 이동 때마다 인공호흡기를 구비해야 한다. 경아 씨는 아이와 인공호흡기를 합한 무게 15㎏를 감당하며 이동에 나선다.

■ 일상이 된 원정진료

한 살 배기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시은이는 목관에 인공호흡기를 끼우는 법을 배웠다. 병원 이동 중 인공호흡기가 분리될 때를 대비한 생존법이었다. 위험천만한 이동이 매일 모녀 앞에 놓여 있었다.

원정진료는 모녀에게 ‘일상’이 됐다. 시은이는 지난 겨울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냈다. 1월엔 호흡기 진료로 일주일 간 삼성서울병원에, 2월엔 설사 증세로 20일 간 강원대병원에 입원했다.

아이 유치원 생활기록지를 확인하듯 경아 씨는 병원 일정을 체크했다. 소아외과, 안과, 신장분과, 내분비유전대사분과…. 시은이 삼성서울병원 진료는 내년 1월까지 잡혀있다. 지난 2023년 12월부터 시작된 기록이었다. 춘천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는 강원도내 수술이 어려웠다. 그렇게 서울 원정 진료가 시작됐다.

하루 다섯 차례씩 피딩을 해도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 몸무게는 도돌이표다. 10㎏으로 저체중인 아이는 지난 겨울 장기 입원으로 1㎏이 빠졌다. 지난 2월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시은이는 번번이 실패하는 혈압 검사에도 보채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보는 경아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가 치료에 익숙해진 게 답답해요. 울지도 웃지도 않을 때는 정말 큰일 났구나 싶어요. 주사 놓으러 오면 팔을 내주고, 소독하려고 면봉을 꺼내면 스스로 하는 거예요. 이걸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
▲ 지난 2일 남경아 씨와 오성준 씨가 딸 시은이 진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경아 씨 가족은 이날 외에도 소아외과, 소화기영양분과 등 이달에만 세 차례 삼성서울병원 진료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설화 기자

■ 20대 엄마의 봄

숨 쉬듯 통장에서 돈이 빠졌다. 가래를 제거하고, 영양제를 주입하는 데 하루 수십개 씩 의료 소모품이 들어갔다. 소모품비만 월 100만원이었다. 양구, 춘천, 원주, 서울을 오가며 드는 차량 주유비는 월 60만원을 훌쩍 넘겼다.

직업 군인인 배우자의 월급은 200여만원. 국민건강보험을 빼면 경아 씨 가족이 정부 지원을 받은 건 양구군이 지급한 선천적 이상아 수술비 500만원이 유일하다. 결국 경아 씨는 적금을 깨고 목돈을 깼다. 아팠던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팔고 받은 돈이었다. 경아 씨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정부는 장애아의 경우 그 가족에 양육, 휴식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경제적 취약계층의 경우엔 의료비를 지원한다. 경아 씨 가족은 중증 질환으로 원정진료를 다니지만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아 ‘사각지대’에 있다.
▲ 지난 2일 남경아 씨와 오성준 씨가 딸 시은이 진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경아 씨 가족은 이날 외에도 소아외과, 소화기영양분과 등 이달에만 세 차례 삼성서울병원 진료 일정이 잡혀 있었다. 남경아 씨 부부가 이날 뗀 진료기록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이설화 기자

경아 씨는 중등도 우울증을 겪고 있다. 그는 최근 찾은 정신과에서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그가 말했다. “20대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이력서에 남는 건 없고, 병원 찾아다니느라 바쁘고요. 친구들 일한다고 정장입고 다니는 거 보면 마음이 괜히 그렇더라고요.”

지난 2일 경아 씨 가족은 서울 진료에 나섰다. 시은이 아빠 오성준(26) 씨도 부대에 휴가를 내고 진료에 동행했다. 성준 씨는 아이가 태어난 다음 날 구급차를 쫓아 처음 이 길을 운전했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 서울은 하얀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부부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벚꽃 풍경에 창문을 내렸다. “양구는 아직 겨울인데, 시간을 달리는 것 같아.” “겨울 내내 병원에 있었더니 봄이 온 줄 몰랐네.”

강원도 복지보건국이 집계한 ‘강원도 관외로 유출되는 18개 시군별 의료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서울 등 타 시·도 병원에서 강원지역 주민이 지출한 진료비는 9180억여원으로 1조원에 육박한다.

경아 씨는 호소하고 있다. “소모품비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한 곳이라도 생기면 좋겠어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설화 기자 lof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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