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K서바이벌 예능과 선거
연고·진영논리 대신 실력 봐야
정치 서바이벌의 감동과 성패
유권자 냉정한 심사에 달렸다
대한민국 예능은 유독 경쟁을 사랑한다. 그 정점에 ‘서바이벌’이 있다. 서바이벌 예능의 시작이 된 ‘슈퍼스타K’를 비롯해 쇼미더머니, K팝스타, 프로듀스101, 스트릿 우먼 파이터, 피지컬: 100, 흑백요리사까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이젠 하다 하다 서바이벌 예능의 1등들이 모여서 ‘끝판왕’을 가리는 프로그램(‘1등들’)까지 나올 정도다. 이쯤이면 ‘서바이벌 예능’ 공화국 수준이다.

이를 통해 ‘스타’가 탄생한다. ‘프로듀스101’에서 김세정이 뒤처진 팀원을 개별로 가르치며 ‘헌신의 리더십’을 보여주며 인기가 치솟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잠재적으로는 경쟁자일 수 있는 참가자이지만 팀을 위해, 그리고 노력하는 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도 허니제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만들었다. 감정적 앙금이 남은 경쟁자와 배틀을 벌이며 도도하게 내뱉은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는 2021년을 강타했다. 비록 배틀에서는 졌지만 리더로 책임을 지고 나가서 당당하게 싸운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이른바 ‘후덕죽 리더십’이 많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하기도 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허드렛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행동하고, 일단 일을 맡기면 믿고 따르고, 본인보다 팀의 성과와 분위기를 우선하는 ‘어른’의 모습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모습은 실력 이상의 존경을 만들어냈다.
서바이벌은 늘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그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바닥을 보여주며 무너지고, 상대를 깎아내리며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팀원과 성과를 어떻게 나누는지,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이 모든 것이 쌓여 ‘리더십’이 만들어진다.
멋진 리더십의 표본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질문은 늘 ‘정치’로 이어진다. “정치에 서바이벌 예능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건 이미 서바이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당의 경선 과정은 형식적으로 보면 하나의 서바이벌이다. 제한된 자원, 치열한 경쟁, 탈락과 승자가 분명한 구조. 여기에 국민의 의견을 듣는다며 여론조사도 넣는다.
그런데도, 왜 ‘3류 정치’라는 꼬리표는 여전할까. 문제는 유권자인 우리가 이 서바이벌의 ‘시청자’가 아니라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 데 있다. 예능에서 심사위원은 흔들리지 않는다. 흑백요리사의 안성재 셰프가 보여준 태도처럼, 감정이나 인연이 아니라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심사가 오히려 흔들린다. 10회짜리 서바이벌 예능에서는 참가자를 최소 10시간 이상 지켜보지만, 선거에서 우리는 정치인을 10시간씩 파헤쳐 보지 않는다. 지역 연고, 당의 간판, 권력과의 거리, 혹은 ‘이번에는 이 사람이 돼야 한다’는 당위가 판단을 대신한다. 그 사람이 걸어온 서사에 대한 냉정한 판단 대신, 짜인 각본처럼 잘못된 ‘감동 없는 서바이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곧 지방선거와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후보자 명단이 속속 공개되고, 선거일까지는 이제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안성재 같은 심사위원을 따로 찾을 이유는 없다. 이미 그 자리는 유권자에게 주어져 있다. 출연자도 중요하지만, 서바이벌의 감동과 성패를 가르는 마지막은 언제나 심사위원이다.
정진수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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