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를 오마주한 브루크너와 말러?...세 거장을 잇는 선율

아르떼 2026. 4. 2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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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윤종의 명곡의 측면도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의 선율,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으로 이어지다

이른바 ‘천인(千人)의 교향곡’으로 불리는 말러 교향곡 8번을 처음 ‘제대로’ 들어본 것은 40여 년 전 고등학생 때였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을 알게 된 것은 그것보다 훗날의 일이었던 것 같다. ‘방랑자 환상곡’의 느린 두 번째 악장 주제를 들었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선율이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2악장]

내가 이 선율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말러 교향곡 8번 2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신비의 합창’이었다. 이 교향곡 2부는 괴테 ‘파우스트’ 종막을 가사로 사용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모든 덧없는 것은
한낱 비유일 뿐,
다다를 수 없던 것
여기서 실현되고,
형용할 수 없던 것
여기서 이루어지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노라.

왜 모든 덧없는 것은 비유일까?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오늘도 수많은 문학 연구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이 문제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선 그 텍스트의 의미를 찾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음악적 주제, 즉 선율만 들여다보자.
[말러 교향곡 8번 2부 ‘신비의 합창’]

이 주제는 이 합창에 앞서 바리톤 독창자인 ‘법열의 교부(敎父)’가 부르는 노래에 처음 나온다. ‘영원한 희열의 불꽃,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사랑의 결합’을 노래하는 부분이다.

두 주제에서 첫 여섯 음표의 유사성은 명백하다. ‘방랑자 환상곡’ 주제 각 음표의 길잇값을 두 배로 늘리면, 즉 ‘방랑자 환상곡’의 4분음표를 ‘법열의 교부’ 노래의 2분음표에 대입하면 두 동기의 길잇값은 같다. 네 번째 음표인 점음표에 이어지는 다섯 번째 음표가 반음 올라가는 점도 같다.

나는 이 두 곡이 닮았다고 생각한 순간 머릿속에 당시까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독일의 바위산을 떠올렸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2악장은 그가 1816년 쓴 가곡 ‘방랑자’의 선율을 가져왔다. 게오르크 필리프 슈미트 폰 뤼베크가 쓴 시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산 위에서 내려왔다
골짜기엔 안개가 자욱하고, 바다는 포효한다
조용히 걷지만 즐거움은 없다
한숨지으며 묻는다. 어디인가?

이곳의 태양은 너무나 차고
꽃은 시들었고, 삶은 늙어버렸다
오가는 말은 공허한 울림일 뿐
나는 어디서나 이방인이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자에게 방랑(Wandern)은 먼 길을 걷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는 이질적 존재로서의 고독,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한 갈망을 상징했다.
이 가곡이 나오고 2년 뒤인 1818년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그림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를 그렸다.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한 산에서 내려온’ 가곡 방랑자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담은 수많은 음반이 표지에 이 그림을 사용했다.

말러 교향곡 8번 2부 가사로 사용된 괴테 ‘파우스트’ 2부 종막의 배경도 독일의 바위산이다. 괴테는 이 장면의 시작 부분에 ‘산의 협곡, 숲, 바위, 황야’라는 설명을 붙였다. 은둔하는 수행자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영적 고양을 추구하는 장소이며,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을 받아 상승하기 위해 ‘수직’을 강조한 공간적 장치이기도 하다.

‘방랑자 환상곡’과 말러 교향곡 8번, 두 곡을 알고 나서도 몇 년이 흘러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처음 들었다. 3악장 아다지오가 시작되자 잔잔한 현의 전주 위에 바이올린이 명상적인 제1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앗, 싶었다. ‘방랑자 환상곡, 그리고 말러 교향곡 8번의 그 동기와 닮았는데?’


[브루크너 교향곡 8번 3악장]

브루크너의 주제는 앞부분에 쉼표가 있고 점음표가 더 강조되기는 하지만 듣는 사람은 누구나 그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 오스트리아인인 브루크너는 슈베르트가 생전에 살고 다닌 곳과 지역적 정서를 공유했으며 그의 교회음악에는 슈베르트의 영향이 엿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말러는 빈 음대 재학 시절 대학교수였던 브루크너의 수업을 들었고 그의 교향곡 3번을 피아노 포핸즈용으로 편곡하는 등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브루크너의 장대한 교향곡도 여러 부분에 걸쳐 ‘숲과 산 등 광대한 자연이 제공하는 엄숙함을 상기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시 브루크너가 슈베르트를, 또는 말러가 슈베르트나 브루크너를 오마주한 결과 이렇게 비슷한 선율 또는 동기가 나온 걸까? 브루크너와 말러는 이와 관련한 말이나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여러 강의나 에세이에서 세 작품의 동기적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말러의 교향곡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가 세 주제의 유사성에 대해 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책 <구스타프 말러 3부작>은 말러 연구의 교과서 격인 저작물로 통하고 있으니, 나 자신의 지적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다.

플로로스는 ‘브루크너와 말러’에서 두 작곡가의 정신적 혈연관계를 분석하며 특히 브루크너의 곡에 담긴 슈베르트적 특성이 어떻게 말러에게 시적 상징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가곡 ‘방랑자’와 ‘방랑자 환상곡’이 길고-짧고-짧은 이른바 ‘닥틸(Dactyl)’ 리듬을 사용하는데 이는 ‘고향을 찾지 못하고 방랑하는 고독한 자의 실존적 고뇌’를 상징하는 ‘방랑자 리듬’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브루크너가 이 리듬을 통해 슈베르트의 세속적 방랑을 신을 향한 영적인 순례로 승화했다고 봤다.

나아가 플로로스는 말러 교향곡 8번 2부에 나오는 ‘영원한 사랑의 불꽃’ 주제도 이 동기와 비슷하다고 지적하며, 말러가 브루크너의 종교적 숭고함을 파우스트의 텍스트와 결합함으로써 ‘우주적 사랑에 의한 구원’을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성경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괴테도 같은 얘기를 바로 ‘신비의 합창’이 나오는 ‘파우스트’ 2부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빌려 말했다. “대체 누가 어리석거나 똑똑한 것을 생각할 수 있겠나, 옛사람들이 이미 생각하지 않은 것을?”

그래도 뿌듯했다. 평생을 브루크너와 말러 연구에 매진한 학자와 같은 생각을 어쨌든 나 스스로도 해낸 것이 아닌가. 음악이라는 광대한 바다를 자원으로 삼아, 갈피를 잡을 수 없더라도 여러 가지 상상과 생각을 하다 보면, 그중 몇 가지는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옆에서 묻는다. “그런 게 재미있어요?”
나는 황홀경에 빠진 교부처럼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런 게 재미있습니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