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젠 하고 싶은 일을 즐기기로 했다
좀 냉정하게 말해 여러모로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만 귀여움으로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는 돌쟁이 아이를 떠올려보자. 그 아이가 돌잔치에서 연필 하나만 들어도 다들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칭찬한다. 자본주의의 냉정한 기준으로 보면 경제 성장에 단 1원도 기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연필을 쥔 아이의 미래를 꿈꾸느라 그렇다.
세 살짜리 아이가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무슨 멜로디 비슷한 소리를 내기만 해도 부모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질 것이다. 네 살짜리 아이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유명한 K팝 가수의 춤을 흉내 내도 마찬가지다.
나는 마흔여섯 살이다. 그동안 살면서 여러 능력을 발전시킨 덕에 돌쟁이 아이보다 연필을 훨씬 잘 쥐고, 세 살짜리 아이보다 피아노도 잘 친다. 그러나 그런 나조차도 나에게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환호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여섯 살 피아노 신동이 되지 못할 것이고,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어린 신동 쇼츠의 주인공이 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물론 이 나이에도 괄목할 성과를 거두며 주변 중년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KFC 창업 대령님은 왜 하필 환갑도 훨씬 넘은 나이에 창업을 하셔서 40대 중반인 내가 앞으로 20년 동안 “그런 사람도 있는데 너도 노력하면…” 따위의 서사를 들을 수 있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유명하지 않더라도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왜 이렇게 “네 나이에도 20대로 보일 수 있다” 영상을 많이 올리는지, 나 좀 편하게 쉬게 내버려두라고 일갈하고 싶다만, 갱년기 전 에너지 고갈로 참는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거둔 성과일수록 더 까다로운 잣대로 평가된다. KFC 대령님은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하셨으니 그런 찬사를 들으시겠으나 두 살짜리 아이는 치킨만 잘 뜯어 먹어도 찬사를 듣는다. 50대에 20대의 몸매를 가지기가 훨씬 어렵지만 사람들은 이틀만 굶어도 살이 쭉쭉 빠질 20대의 몸짱 영상을 더 선호한다. 60대 만학도보다 10대 공부 천재에게 환호한다. 그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를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더 이상 나의 작은 성취 하나하나에 창창한 미래를 꿈꾸며 박수 치고 응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섭섭할 필요는 없는 것이, 사실 좀 편하게 살아도 누가 크게 기대를 걸 일도 없을 것이고 중년 여성 1만5424번쯤 되는 실눈 캐릭터로 처리될 듯하니 인생의 난도가 오히려 낮아진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돌쟁이 아이와 경쟁해 더 귀여울 수는 없으니 어차피 노력해봐야 희망은 없다.
그래서 이젠 내가 직접 나서서 즐기기로 했다. 더 이상 미래를 위해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고 인공지능(AI) 관련 뉴스를 보지 않는다. 몸짱이 되어 인싸가 되려고 운동하지도 않는다. 중년인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뿐이다. 세상이 들이대는 기준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나는 햇빛이 좋아 밖에 나가서 걷고, 치고 싶은 곡이 있어 피아노를 뚱땅거려보고, 인스타에 올리지 않을 음식을 만들어 혼자 홀랑 먹어버리기도 한다. 부업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지만 못생긴 코바늘 인형을 만들고, 경력이나 구좌에 도움이 되는지 따지지 않는 고민 첨가가 0%인 강의를 듣거나 공부를 하며, 그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언젠가 나도 KFC 창업 대령님 같은 서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이제 하지 않는다. 나의 소설은 기-승-전을 거쳐 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 이야기가 10대 먼치킨 장르로 갈 수 있었던 분기점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전개에 나는 상당히 만족한다.
결정적으로, 굳이 돌쟁이 아이와 경쟁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내 친구들은 여전히 나보고 귀엽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편집 과정에서 빠질지도 모르겠다.

주한나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연구원·데이터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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