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전략 연동된 지속가능성 공시, 韓증시 밸류업 기여할 것”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6. 4. 2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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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진 10대 한국회계기준원장
K-디스카운트 해소 공시 신뢰성 필수
재무·지속가능성부서 공동준비 시급
美 빼고 EU·日·中 모두 ESG 공시로
더 미루면 韓 기업 경쟁력 타격우려
790조 기후금융, 中企에 큰 기회
일탈회계 더 이상 논란 여지 없어
곽병진 한국회계기준원 원장. 2026.4.16 [김호영기자]
“지금처럼 홍보부서 중심 지속가능성 공시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히 공시 양을 늘리기보다 재무·전략·리스크 관리가 연계된 통합적 정보 생산과정으로 기업의 접근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곽병진 제10대 한국회계기준원장은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가 기업 공시의 질적 전환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취임한 곽 원장은 2028년 첫 의무공시 도입을 앞두고 있는 국내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 안착을 임기 최대 과제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밸류업이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 등 재무적 요소에 초점을 둔다면,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의 중장기 리스크와 기회 요인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정보 체계”라며 “두 제도 모두 기업 투명성 제고와 투자자 신뢰 회복이라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무·비재무 공시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국 증시에 대한 저평가 해소가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한국회계기준원은 국내에서 회계기준 제정권을 전담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기업회계의 틀을 책임진다. 2022년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신설로 지속 가능성 공시기준 제정까지 역할이 확장됐고, 지난해 보험사 일탈회계 논란을 질의회신으로 사실상 정리하며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는 그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작성해 홈페이지 등에 올려온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사업보고서 수준의 정식 공시 체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2028년 연결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적용되며 통일된 기준에 따라 거버넌스·전략·위험관리·지표 및 목표 등 4대 영역에서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를 정량 데이터로 공개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필수 공시 지표에 포함된다. 거래소 공시로 출발해 향후 사업보고서와 같은 법정공시로 전환될 예정이다.

EU가 2029년부터 역외 기업까지 공시 의무를 확대하고 글로벌 ESG 펀드들이 공시 없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지속가능성 공시는 글로벌 자본 유치와 수출 경쟁력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곽 원장은 “국내 많은 기업에서 지속가능성 공시가 홍보부서나 일부 전담 조직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작성되고 있다” 며 “이런 방식으로는 투자자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고 시장 신뢰 확보에도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보 수집 단계부터 지속가능성 부서와 재무부서가 공동으로 공시를 준비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기후 리스크나 공급망 리스크가 실제 투자 결정이나 사업 전략에 반영될 때 공시의 신뢰성과 실질적 의미가 확보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질 때 밸류업 프로그램과 지속가능성 공시가 함께 작동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속도조절론’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곽 원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안 하고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유럽·일본·호주·중국 등 모든 나라가 지속가능성 공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캘리포니아처럼 민주당이 강한 주는 이미 계속 이 방향으로 가는 중이고, 미국도 결국 갈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영원히 미룰수 없는 과제로, 더 미루다 기업 경쟁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지속가능성 공시 전환이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곽 원장은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기후금융 방안은 향후 10년간 790조원을 투자해 전환금융으로 가는 내용”이라며 “50%는 지방에, 70% 이상은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할텐데 여기에 맞춰 생산설비나 프로세스를 바꿔나가면 큰 기회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 2월 제4차 생산적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기존 420조원 규모의 기후정책금융을 790조원으로 확대해 2026~2035년 10년간 공급하는 녹색금융 종합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는 대형 상장사에 국한되지 않고 밸류체인 전반에 파급된다. 대기업 공시가 본격화하면 협력 중소기업에도 탄소배출·에너지 사용량 등 데이터 제공 요구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부담 요인이지만 기후금융을 지렛대 삼아 설비와 공정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할 경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곽 원장의 진단이다.

지난 2월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을 발표한 금융위는 이달중 최종 로드맵을 확정해 내놓을 예정이다.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단계적 도입하고 밸류체인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는 스코프3 공시는 3년 유예 후 2031년 적용하는 방향이 골자다.

곽원장은 지난해 이슈가 됐던 보험사 일탈회계 논란에 대해서는 종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회계기준원과 금감원이 각각 질의회신 결과를 발표하면서 회계기준 관점의 논란은 종식됐다”며 “과거와 같은 일탈 회계를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회계기준은 특정 시기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경제적 실질을 충실히 반영해 이해관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통의 언어”라며 임기동안 원칙 중심 판단에 무게를 두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상자산 회계처리 기준에 대해서는 국제 기준 제정기구에 앞선 선제 대응을 예고했다. 곽 원장은 “가상자산은 회계기준의 공백이 분명한 영역”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나서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곽 원장은 자본시장 참여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이들의 피드백이 회계기준을 개선하고 공시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준을 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 뿌리내리는 마지막 단계까지 책임지겠다”며 “투자자들도 공시 품질에 대해 시장 참여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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