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다

한겨레 2026. 4. 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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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잡념잡상 _27 시인 이산하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어머니-

부디 오늘만은 눈물 없이 잠드세요./ 이 아들이 떠나면 빈 들판처럼 외로우실 어머니/ 비 개인 가을 오후 논두렁 밭두렁에 쓸쓸히 서서/ 슬픔에 젖어 이파리를 떨구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외로우실 어머니/ 부디 오늘만은 편히 꿈을 꾸세요./…비바람에 삐걱거리는 사립문 열어/ 어머니,…’

사모곡의 한 대목, 서정시 같다. 타관으로 떠난 아들이 삐걱거리는 사립문 열고 언제 돌아올까, 그리는 모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하는 신석정의 시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이다. 제2장 ‘폭풍전야’의 ‘진군을 기다리는 아들’ 부분이다. 때는 전야다. 미군이 장악한 제주도에 맹수도 피한다는 서북청년단이 들어오고, 지나가면 씨가 마른다는 대동청년단이 들어왔던 그해 4월. ‘민족해방의 이름으로/ 조국통일의 이름으로/ 저 간악한 미제의 각을 뜨고/ 저 미친(美親) 매판자본의 심장에 불벼락을…’, 함성이 터지던 그해 4월. 항쟁 전야이자 학살 전야이자, 폭풍 직전의 고요한 전야. ‘자욱한 밤안개가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들을 뒤덮고/ 칠흑 같은 어둠이 한라산 골짜기들을 다 메워버린’ 깊은 밤, 어서 봉화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아들이 나직이 부르는 소리, ‘어머니~’다.

어떻게 ‘미제의 각을 뜨는’ 한장 넘겨 이렇게 애절한 서정이 있나 물었더니 시인, ‘아다지오’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 구조를 보면, 1악장이 힘차게 시작하죠.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1악장 알레그로, 빠르고 웅장하고 화려하게 나갑니다. 2악장 아다지오, 봄 햇살같이 사뿐사뿐 현이 흐르다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가듯이 건반이 전개되지요. 바야흐로 전야입니다. 3악장 다시 알레그로, 장엄한 피날레로 나아가기 직전의 숨 고르기 같은.”

아다지오는 회상, 즉 그리움이다. 만지고 싶은데 만져지지 않는 그리움이 슬픔을 배접하고 있는 구조, 진군 명령을 기다리면서 어머니의 악몽이 늦어지기를 염원하는 ‘아들’은 이 참혹한 서사에 낀 서정이다. 진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 더 나직해지듯이, 아다지오는 말하자면 ‘찬란한 슬픔’ 그런 대목일 것이다.

1986년, 이산하는 두툼한 일본판 번역 원고 한편을 입수한다. ‘제주도 피의 투쟁사’(김봉현), 40년 묻혀 있던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폭로한 증언록이었다. 밤새 읽었는데 원고지 한장을 넘길 때마다 수백명씩 죽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이튿날 녹두출판사로 달려가 당장 출판하자 했다. 며칠 지나 김영호 대표가 “번역 원고보다는 파급력이 큰 장편 서사시가 좋겠는데, 상백(이산하 본명)씨가 예전에 시 좀 썼다면서요?”라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가슴 속에 눈도 내리게 하고 비도 내리게 하고 바람도 불게 하고, 때로는 불도 확 질러 대중을 뒤흔든다는 서사시의 유장한 감동’을 생각하면, 말인즉슨 맞다. 그러나 때는 전두환 말기, 폭탄을 들고 불로 뛰어드는 거의 자폭이다. 뒷일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고교 시절 숨어 읽던 김지하의 ‘오적’이 떠오른다. ‘꼭 이런 시 한편 쓰고 죽으리라’했던 다짐도 생각난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서 피할 수는 없는 법. 가자, 운명이라면 가야지, 내 인생에 최소한 비겁하지는 말자, 그렇게 이산하는 폭탄 운반책에서 폭탄 제조책이 되었다.

이듬해 1월 고교 후배 박종철이 죽고, 두달 뒤 ‘한라산’은 ‘녹두서평’ 창간호에 실려 세상에 나왔다. 그해 11월 시인은 4년 수배 끝에 광화문 한 카페에서 붙잡혀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4년6월을 선고받고 1년6월을 복역했다. 시인이 구속되는 이 땅을 온 세상이 손가락질하자 노태우는 88서울올림픽 개막 전에 이산하를, 개막 뒤에 김남주를 풀어준다. 첫 담당 검사가 악명 높은 주대경(주진우 의원 아버지)이었고, 두번째가 황교안이었다. 황씨가 총리가 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을 때 시인은 우울증 약을 먹었다. 그리고 10년 절필했다.

봄날 양평에 가서 용문사 한바퀴 돌고, 펜션 방 한칸 얻어 사는 시인의 집에 찾아갔을 때, 시인은 운동복 바람에 슬리퍼 끌고, 담배 한대 물고 나왔다. 세수해도 표가 안 나는 얼굴이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날카로운 눈매 하며 그 차림에, 한자로 근성, 일어로 곤조, 우리말로 몽니일까, 꼬장 같은 것이 훅 풍긴다.

그는 2022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5년, 병원에 간 적이 없고 약도 끊었다. “암을 그냥 무시해요. 언제 죽어도 호상인데 알아서 해라. 숙주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내가 바다를 건너려는 건 아니고, 강은 하나 건너야 하는데 그때까지만 봐달라, 그렇게 암하고 딜을 했어요.” 체중도 60㎏ 그대로고 통증은 없다 하고, 낯빛에 병색도 없어 보인다. 담배는 대놓고 피우고 술은 암 몰래 마신다. 그것이 딜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이산하는 1960년 경북 영일 태생이다. 아버지 고향이 황해도 해주 사리원, ‘성불사 깊은 밤~’에 나오는 그곳이다. 아버지는 평양공대(김책공대 전신) 재학 중 입대하여 인민군 소좌 저격수로 참전했다. 경남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터 잡은 곳이 영일이다. 가난하게 살았다. 시인은 딱 한 재주, 문재를 잘 살려 고교 시절 전국 현상 공모 백일장 마당을 “반은 내가 쓸고, 반은 안도현이가 쓸었다”고 한다. 대학 못 갈 형편인데 그 덕에 문예 장학생으로 1년 등록금 면제받고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1982년 필명 ‘이륭’으로 동인지 ‘시운동’에 ‘존재의 놀이’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륭’(隆)은 스승으로 여기는 소설가 ‘박상륭’과 심리학자 ‘칼 융’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오랜 절필 끝에 1999년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를 내면서 재개했다. 두권의 산사 기행집과 ‘체 게바라 시집’, 프리모 레비의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편역했다. 근작으로는 2021년 시집 ‘악의 평범성’이 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대학로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민기 형이 소주를 따라주며/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 사람들 너무 미워하지 마/ 너무 미워하면 판단이 흐려져/ 그 사람들같이 돼’

그의 시 ‘김민기’의 둘째 연이다. 시를 들먹이며 ‘한라산’은 좀 내려놓으셨냐고 물었다. 사실 그것은 우문이다. 이어지는 3연에 나온다. ‘나는 오이디푸스처럼/ 스스로 내 눈을 찌를 수 있을까/ 미워하든 미워하지 않든/ 나보다 더 작은 나는 없으리라/ 나보다 더 큰 나는 없으리라’

“나는 송충이니까 시나 파먹으며 사는 팔자인데, 한라산이 비탈인 줄 알고 갔더니 벼랑이라. 내 팔자가 낭떠러지요. 누가 ‘한라산’이 시인의 명예 아니냐고 하던데 평생 굴레고 멍에요. 팔자는 내가 가는 게 아니고 지가 가는 거라.”

시 ‘김민기’는 시 ‘나무’와 어울린다. ‘그 사람들 너무 미워하지 마. 너무 미워하면 그 사람들같이 돼’ 이 말은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여기에 닿는다. 어찌 미움에 향기를 묻혀줄까? 노무현 추도시로 썼다는 이 짧은 절창으로 이산하는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며, 미움의 늪을 벗어난다.

이렇게 하여 어느덧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고 쉬어가는 ‘방하착’(放下著)에 이르고 있구나, 그런 희망을 품고 있던 차에, 시인의 한 방이, 선사의 ‘방’(棒)처럼 여지없이 후려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의 빈소에 꽃 하나 바치며 조문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22년 만에 그 조화들을 모아 불태운다. 내 영혼의 잿더미 위에 단테의 ‘신곡’ 중 이런 구절이 새겨진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시집 ‘악의 평범성’ 시인의 말)

올해는 제주 4·3항쟁 78주기이자 4·9 인혁당 사법살인 51주년이기도 하다. 그가 암과 딜을 하면서 건너고 싶은 강은 ‘동백꽃’이다. ‘한라산’이 4·3의 서사이듯, ‘동백꽃’은 인혁당에 대한 서사다. 언젠가 불일암에 법정 스님을 찾았을 때 그 마당에서 보았던 동백꽃, 빨간 꽃이 모가지째 떨어졌다가 이듬해 다시 빨갛게 부활하는, 스님이 여덟 넋을 기려 여덟 그루를 심었다는 그 꽃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는 시인을 ‘곡비’(哭婢)라 했다. 초상집에서 상주 대신 울어주던 계집종처럼 슬픈 세상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 그의 시에 ‘희망’이라는 단어는 없으므로, 그는 곡을 한다. 연필 날카롭게 깎고 다시 곡을 하러,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의 땅, 곡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한라산으로 들어간다. 펜션 월세 계약이 끝나는 대로, 내년에는 제주로 간다고 한다.

이광이 |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와 소설을 동경했으나, 대개는 길을 잃고 말아 그 언저리에서 산문과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읽다가 막히면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도 못하냐?’면서 계속 읽는다. 해학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쓴 책으로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 ‘스님과 철학자’(정리), ‘절절시시’, 산문집 ‘행복은 발가락 사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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