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참상 세계 알리고 미국 정부 책임 묻기도

‘한국인권 위한 북미연맹’ 활동하며
박정희 정권 인권 탄압 등 공론화
광주항쟁 당시 매일 소식지 내고
미 의사 2명 한국 보내 진상 조사
미 의회에서 신군부 인권유린 증언
5·18기념재단 성명 내어 고인 추모
5·18민주화운동 등 1970∼80년대 한국 인권문제를 전세계에 알리며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패리스 하비 목사가 별세했다. 향년 91.
21일 최용주 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1과장의 말을 들어보면 하비 목사의 딸은 고인이 15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왔다. 딸은 “아버지는 우리 삶의 조용한 버팀목이셨고 깊고 의미 있는 존재였다.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깊었고,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하셨다. 그의 변함없는 사랑과 온화함, 그리고 친절함은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우리는 마지막까지 그를 사랑했다”고 밝혔다.
1935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감리교 단기선교사로 일본 오키나와에 파견된 이후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인권운동에 헌신했다.
고인의 삶은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맹’(이하 북미연맹)과 맞닿아 있다. 이 단체는 1975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활동한 기독교 계열의 인권단체로, 1970∼80년대 한국 바깥에서 활동한 외국인 중심 인권단체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컸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9년 한국 방문 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난 그는 이 단체 실무자를 맡아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로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인권문제를 공론화했다.
1979년 3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북미연맹은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했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 37명이 이를 발표했다. 인권을 탄압하는 박정희 정권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같은 해 6월30일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때 미국 정부는 하비 목사 등으로부터 한국 인권상황을 청취했고 김대중 등 정치범 명단을 건네받아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고인의 기여가 가장 컸던 사건은 1980년 광주항쟁이었다. 당시 북미연맹은 매일 소식지를 펴내 광주의 비극과 한국 정치 상황을 북미, 유럽, 일본 등 전세계로 전파했다. 1980년 5월28일에는 다른 단체와 함께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 개입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 카터 행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 책임과 역할을 따진 첫 성명서다.
5·18 직후인 1980년 6월22일∼28일에는 미국인 의사 2명을 한국에 비밀리에 파견해 진상을 조사한 뒤 보고서를 만들어 미 국무부에 제출했다.
고인은 1981년 1월 레이건 행정부가 전두환 초청계획을 발표하자 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미국 하원 ‘국제관계 및 인권 소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광주 학살과 삼청교육대, 노동조합과 언론 탄압, 고문, 불법 감금 등을 알리며 미국 국무부가 전두환 신군부의 인권 유린을 안일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그는 노태우 정권 때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수차례 입국 금지를 당했다.
1981년 4월 ‘5·18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는 윤한봉이 밀항으로 미국 워싱턴주에 도착하자 하비 목사는 시애틀의 김동건, 김진숙 부부를 급히 보내 보호하게 했고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에게 연락해 망명 절차를 밟아달라고 했다.
하비 목사 등의 활동은 미국 정부가 한국 내 반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와 정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조로 전환한 배경으로 꼽힌다.
우리 정부는 2020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고인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5·18기념재단은 21일 성명을 내어 “5·18 당시 계엄군의 유혈 진압으로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될 위기에 처했을 때 고인의 노력으로 광주는 고립된 섬이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민주주의의 성지로 설 수 있었다”며 “하비 목사께서 보여주신 인류애와 정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는 5·18 정신을 계승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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