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면, 그게 바로 장학사업의 의미다”
민관식 박사의 철학, 장학으로 이어지다
가족 비개입 원칙이 확보한 공정·투명성

민병환 前국정원제2차장(민관식 前문교부장관 아들)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 대한체육회장 등을 역힘한 고(故) 소강(小崗) 민관식 박사의 장학재단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이 올해 설립 70주년을 맞았다. 단순한 금전 지원을 넘어 인재 양성과 사회 환원의 가치를 실천해온 재단은 우리나라 전반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재단 설립 70주년을 맞아 설립자 민 박사의 아들 민병환(69·사진) 전 국정원 제2차장을 만나 재단의 발자취, 향후 구상 등을 들어봤다.
민 전 차장은 “재단은 한 개인의 삶을 바꾼 경험에서 비롯된 ‘약속’의 산물”이라며 재단의 출발을 설명했다. 재단의 뿌리는 그의 부친인 민 박사와 큰아버지 민완식 선생의 삶과 닿아 있다.
민 박사는 개성 출신으로 수원고등농업학교(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전신)를 졸업한 뒤 일본 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는 장학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 전 차장은 “조선일보 설립자 방응모 선생의 장학금이 없었다면 유학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전 차창은 “아버지는 공부도, 운동도 잘했지만 일본 학생들과 자주 충돌했다. 그런데 장학금을 받은 뒤 삶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장학금이 단순한 경제적 지원을 넘어 삶의 태도까지 바꿔 놓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다짐’으로 이어졌다. “장학금이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면, 나중에 꼭 장학사업을 하자.” 이것이 바로 재단의 출발점이었다.
민 전 차장은 “큰아버지는 해방 직후 공산 세력과 맞서 활동하다 암살됐다”며 “그 유업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장학사업의 출발점이 됐다”고 전했다.
민 박사는 1954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기반을 다졌고, 마침내 1957년 형의 아호를 딴 ‘중산육영회’를 설립했다. 민 박사가 2006년 별세 이후 그의 호를 따 ‘소강민관식육영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재단 운영 전반에는 민 박사의 삶을 관통한 가치와 철학이 녹아 있다. 민 전 차장은 부친의 철학을 ‘평생학습, 평생현역’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했다. 사무실 문 위에 이 문구를 붙여놓고 늘 스스로를 다잡았다는 것이다.
민 전 차장은 “선친은 끊임없이 배우고 끝까지 현역으로 살아가시려고 노력하셨다”면서 “그 정신은 재단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평생 검소함과 겸손함을 지키며 누구에게나 고개를 낮추셨다”며 “그런 삶의 태도 역시 재단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친에게서는 신념과 근면함을, 모친에게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겸손을 배웠다”면서 “이는 내 삶에도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치는 재단 운영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재단의 자랑인 ‘지속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재단은 지난 7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장학사업을 이어왔다. 민 전 차장은 “이게 가장 뜻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재단의 지속 가능성은 안정적인 운영 구조에서 나온다. 민 전 차장은 “부친이 생전에 농지를 재단에 기부했는데, 이후 해당 부지가 수용되면서 건물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그 건물의 임대 수익으로 재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점은 가족의 개입을 최소화한 운영 방식이다. 재단 운영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비개입 원칙’이다. 민 전 차장은 “가족이 개입하면 공과 사의 구분이 흐려지고 재단이 망가질 수 있다”며 “형식적으로 이사로 이름만 올렸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장학생 선발과 체육 인재 발굴은 외부 전문가와 심사위원들이 맡는다. 민 전 차장은 “우리가 개입하면 인재를 제대로 선발할 수 없다”며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성과로 이어졌다. 재단은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을 대중적 주목을 받기 전부터 발굴해 지원했다. 배우 윤여정 역시 초기 장학생 출신이다.
재단의 또 다른 특징은 장학금의 ‘선순환 구조’다. 민 전 차장은 “선배 장학생들이 스스로 기금을 모아 후배들을 돕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이런 자발적인 참여가 재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지원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교정시설 수용자의 자녀, 다문화 가정과 대안학교 학생 등 기존 제도에서 소외되기 쉬운 이들까지 대상을 넓혔다. 그는 “조금만 손길을 더하면 삶이 달라질 수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며 “가능한 범위에서 지원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이 지향하는 방향도 시대 변화에 맞춰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성적 우수와 가정 형편을 중심으로 장학생을 선발했다면, 이제는 잠재력과 환경적 제약 등을 더 폭넓게 고려한다. 민 전 차장은 “성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의지와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라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그의 개인적 경험도 자리한다. 신앙 생활을 시작한 이후 ‘주변을 살피는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말로만 선하게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은 도움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말했다.
70년의 시간은 짧지 않다. 그럼에도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민 전 차장은 “대기업 재단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지속성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며 “처음의 약속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소강민관식육영재단 70년은 그런 ‘선순환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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