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치매 정책, “돌봄권·당사자 중심 전환 필요”…보사연 연구위원이 짚은 핵심은

황교진 기자 2026. 4. 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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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치매 생태계 세미나…치매 정책 전환 방향 집중 논의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일본 치매기본법 비교…권리·시민 관점 정책 재정의
통합돌봄 과제는 ‘치매와의 공존’…정책 방향 명확화 요구
제10회 치매 생태계 세미나 포스터 / 내마음은콩밭

 

치매 생태계 세미나는 지역 기반 협동조합 내마음은콩밭 협동조합을 비롯해 콜라보리빙네트워크(C2L), 디랩(D-LAB), 나우, 한국에자이 등 치매 생태계 조성에 뜻을 모은 다양한 민간 주체들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는 정기 공론장이다. 이 세미나는 치매친화사회와 지역 돌봄, 해외 정책뿐 아니라 초로기 치매, 가족 돌봄, 영케어러 등 치매를 둘러싼 다양한 삶의 문제를 의제로 다루며, 당사자 경험과 현장, 정책을 함께 연결하는 논의를 이어왔다.

21일 오후 2시 온라인으로 열린 제10회 치매 생태계 세미나는 치매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논의의 장으로 마련됐다. 사전 신청자는 170여 명에 달했으며, 화상회의 정원 제한으로 100명만 입장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전국 광역치매센터와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해 정책 방향에 대한 현장의 관심을 반영했다.

이성희 한국치매가족협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치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국가 책임 문제를 언급하며, "치매 이후의 삶을 누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이번 세미나에서 충분히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제10회 치매 생태계 세미나에서 발표된 치매 정책 논의의 핵심은 치매를 '관리 대상'으로 보는 기존 접근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삶과 권리를 중심에 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세진 연구위원이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중심으로 국내 치매 정책의 구조와 주요 쟁점을 설명했고, 임덕영 연구위원은 주거복지와 장수사회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 치매기본법과 치매친화사회 구축 사례를 분석했다. 두 발표는 각각 국내 정책의 과제와 일본 인지증기본법과 추진 정책의 시사점을 통해 향후 치매 정책 방향을 비교·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돌봄은 권리"…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의 핵심과 과제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과 앞으로의 치매 정책 방향에 대해 발표하는 김세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디멘시아뉴스

김세진 연구위원은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설명하며, 정책의 방향이 '안심'에서 '돌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점진적으로 구현해야 할 과제라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특히 3월 27일 시행된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제도 시행만으로 새로운 돌봄 체계가 즉시 작동하는 것은 아니며, 그동안 분절돼 있던 의료와 요양, 돌봄서비스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연결하고 보완해 갈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였다.

AIP(Aging in Place) 개념에 대해서 단순한 '거주지 유지'로 이해해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Place'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역사와 관계, 시간의 연속성이 함께 작동하는 생활의 맥락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정책 역시 특정 공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삶의 맥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 설계와 현장 사이의 간극에 대한 보완 필요성도 제기했다. 장기요양가족휴가제는 실제 이용률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제도 설계와 접근성 측면에서 점검이 필요하다. 한편 가족돌봄휴가제의 경우 이용 활성화 문제를 단순히 홍보 부족으로 해석하는 접근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돌봄이 가족 책임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제도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용 조건과 제도 설계 전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치매 환자는 정책에서 예방·치료 대상이거나 서비스 수혜자로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사자의 삶과 욕구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치매 환자를 사회 안에서 어떤 존재로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치매 환자의 생활 특성도 제시했다. 지역사회 거주 환자의 경우 1인 가구 비율이 높고, 식사 준비와 같은 일상 유지가 주요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흔히 문제행동으로 인식되는 폭력과 배회 증상보다 우울과 같은 정서적 문제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경우 연간 수천만 원 수준의 비용 부담과 장시간 돌봄, 이에 따른 삶의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정책 방향과 관련해 'Person-centered'에서 'People-centered'로의 확장을 강조했다. 이는 World Health Organization(WHO)가 제시한 개념에 기반한 것으로, 개인 중심 관리에서 벗어나 관계와 지역사회까지 포함한 구조 속에서 치매를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치매 환자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돌봄권에 대한 부분도 발제에서 중요한 축으로 다뤄졌다. 치매 환자의 돌봄을 단순한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권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방향이 정책에 반영되고 있지만, 그 권리는 단순히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일상 유지, 자기결정,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용어와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시했다. 치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명칭을 '인지증'으로 변경하는 것이 인식 개선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낙인 효과나 사회적 태도가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또한 향후 기본법 제정 논의와 관련해서도, 기본법은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의 법인 만큼 실제 현장에서의 작동력은 별도의 치매 정책 설계와 실행 과정에 달려 있다는 점을 함께 언급했다.

김 연구위원은 "치매 정책은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삶을 어떻게 유지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일본 인지증기본법, "당사자는 시민"…치매 '대처'에서 '공생'으로
일본 치매기본법 내용과 제정 의의에 대해 발표하는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 디멘시아뉴스

두 번째 발제자인 임덕영 연구위원은 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숙인, 치매 노인 등 의사결정 지원이 필요한 다양한 집단을 연구해 온 연구자로, 특히 주거와 돌봄이 결합한 생활 지속 가능성 문제를 중심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일본의 치매 정책을 설명하는 핵심 배경으로 제시됐다.

임 연구위원은 일본 사례를 통해 치매 정책이 '대처' 중심에서 '치매친화사회'로 전환된 과정을 짚었다. 단순히 문제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치매가 있는 상태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은 2023년 '공생 사회 실현을 위한 치매기본법'을 제정하며 이러한 방향을 제도화했다. 이 법은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무를 상위 규범으로 설정하는 구조다. 특히 치매 당사자를 보호 대상이 아닌 '시민'으로 규정하고, 권리와 참여를 정책의 중심에 둔 점이 특징이다.

정책의 무게중심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동했다. 임 연구위원은 "사람을 시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맞게 주거와 서비스를 결합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는 AIP(Aging in Place), 즉 기존 생활 공간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일본의 치매친화사회는 개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체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예를 들어 치매 노인의 실종 대응, 일상생활 지원, 지역 상점 이용 등 다양한 상황에 대해 세분된 매뉴얼과 지역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다. '슬로우 쇼핑'과 같이 인지 기능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도 확산하고 있으며, 안부 확인 체계와 지역 기반 지원 구조도 촘촘하게 운영되고 있다.

또한 의료·복지 영역을 넘어 금융, 유통, 외식 등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치매 당사자를 '경험 전문가'로 인정해 정책과 서비스 설계에 참여시키고 있다. 피어 서포트(peer support) 활동 역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치매 당사자나 가족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정서적 지지를 주고받는 구조로,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을 넘어 당사자가 서로의 자원이 되는 방식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가 정책과 서비스 개선에 반영되는 통로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치매 대처 사회'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문제를 관리하고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치매를 장수사회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일부로 보고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하는 구조로 전환한 것이다.

임 연구위원은 이러한 일본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으로 ▲치매를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 과제로 인식할 것 ▲일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할 것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대응 체계를 구축할 것 등을 제시했다.

특히 정책의 성과를 '당사자 만족도'로 평가하는 방식은, 정책의 기준을 공급자가 아닌 당사자로 이동시킨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 공통 메시지 "치매,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인식의 과제"
치매 생태계 온라인 세미나 참석자 단체 사진 / 디멘시아뉴스

두 발제의 치매를 바라보는 관점은 공통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치매는 장수사회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보편적 과제이며, 대응 역시 의료·복지 영역을 넘어 주거, 지역사회, 관계망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세진 연구위원은 "정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수정·보완되는 과정"이라며 현장과의 연결을 강조했고, 임덕영 연구위원은 치매 당사자와 현장 관계자들을 더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총평했다. 정책과 연구가 실제 삶의 조건과 현장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접점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세미나의 논의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치매 정책의 중심축이 '관리'에서 '돌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 당사자의 삶과 욕구가 정책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필요성, 그리고 일본 사례가 보여준 권리 기반의 사회 통합적 접근이다. 

결국 치매 정책은 제도의 확대 여부를 넘어, 치매가 있는 상태에서도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치매를 '걸리면 인생이 끝나는 병'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또한 나 역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공동체가 함께 대응하는 치매친화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함께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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