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관객수 1,660만명 ‘왕과 사는 남자’ 역대 흥행 2위...천만 영화의 흥행공식은 ‘공동 감정의 공유’

2026. 4. 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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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역대 흥행 2위
흥행공식? 보편적 서사 & 장르적 쾌감
사극이지만 ‘감정’을 내세운 드라마

영화 ‘명량’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4월 21일 기준, 관객수 1,660만 명을 달성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흥행궤도에 올라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를 재편한 왕사남. 그렇다면 이 영화가 제시한 흥행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또, 어떻게 해야만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까?

(사진 (주)쇼박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사극이지만 ‘감정’을 내세운 드라마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에 등극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60만 명(4월 21일 기준) 이상의 관객을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것이다. 현재로선 단순한 흥행이기보다 일종의 현상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왕과 사는 남자’의 어떤 요소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첫째로 우리네 역사에서 익숙한, 그리고 꽤 아픔을 간직한 인물 단종 임금을 소재로 삼은 것을 들 수 있다. 그 뒤에 역사를 바탕으로, 또 거기에 다양한 캐릭터들을 첨가하며 인간적인 이야기를 결합했다. 여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희로애락에서 발생하는 보편적 감정을 뼈대 속에 심었다. 이 소재와 이야기는 그래서 부모 세대는 물론이고 새로운 세대에까지 먹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사진 ㈜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는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권력에의 욕망이 도출한 피비린내 나는 폭력성을 앞세우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왕 그리고 그와 사는 남자(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더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왕과 사는 남자’는 사극이긴 하지만 ‘감정’을 내세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극장 개봉의 타이밍도 좋았다. 지난 2월 4일에 개봉했고, 바로 다음 주였던 2월 11일에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가 곧장 경쟁작이 될 예정이었으나 ‘휴민트’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넷플릭스에선 흥행 중이다). 그 결과 날개를 달고 흥행 질주에 나선 왕사남은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2위를 기록, 1위도 노려볼 만한 기세다.

영화 ‘휴민트’(사진 ㈜NEW)
현재 역대 흥행 순위 1위는 1,761만 명을 기록한 김한민 감독의 2014년 작 ‘명량’이다(3위는 1,626만 명을 동원한 이병헌 감독의 2019년 작 ‘극한직업’이다). 지금 대중과 미디어는 ‘왕과 사는 남자’가 어디까지 질주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1,000만 영화 조건? 보편적 서사 & 장르적 쾌감
필자의 경우, 한때 국내 대형 투자 배급사에서 일해 본 적 있다. 업계에서는 보통 천만 관객 동원을 ‘신의 한 수’라고 칭한다. 개봉을 앞둔 영화의 경우 대략 300~400만 명까지의 관객 동원은 점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 아닌 정설로 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 속에서 공통된 어떤 것을 발견할 수는 있다. 시쳇말로, ‘천만 영화의 조건’을 찾아보는 탐험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사진 ㈜쇼박스)
‘명량’, ‘극한직업’, ‘신과 함께-죄와 벌’, ‘국제시장’, ‘베테랑’, ‘서울의 봄’, ‘도둑들’, ‘7번방의 선물’, ‘암살’. ‘왕과 사는 남자’와 함께 역대 한국영화 흥행 상위 10위의 자리에 올라 있는 작품들이다. 10위에 랭크된 ‘암살’이 1,270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모두 1,000만 이상, 2,000만 명 이하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대부분 ‘보편적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사의 보편성을 논하는 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국제시장’은 전쟁과 근대화를 보내온 가장의 가족을 위한 희생을 풀어내면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후 세계를 중심에 두고 도덕적 윤리와 가족애로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보편성을 담보한 작품은 이해하는 데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을 가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에게 (이성보다는 정서적으로) 공감을 끌어낸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컷(사진 CJ 엔터테인먼트)
또 다른 천만 영화의 조건으로 ‘장르적 쾌감’을 반드시 보장해야만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폭소를 자아내든, 통쾌한 액션을 선사하든, 폭풍 같은 눈물을 자아내든 하나는 확실하게 담보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극한직업’은 형사, 범죄물을 독특한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다. ‘베테랑’은 시원한 액션을 중심으로 웃음을 양념처럼 가미하고, 통쾌한 정의 구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천만 영화들의 주요 공통점을 살펴보면, 대부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직관적 스토리를 가졌다. 연령 및 세대 불문이라는 말은 극장에 들어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만 함을 강조하는 셈이다. 우리 아들과 딸도 이해하고, 우리 부모도 웃어야 하고, 장인 장모도 울어야만 한다.

아무리 ‘N차 관람’이 천만 영화의 독특한 관객 특성이라고 하지만, 5,000만 대한민국 인구 중 1,000만 명 이상이 극장에 들기 위해선 인구의 20퍼센트가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간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2014)
가족 동반 관람 가능해야 천만 영화 조건 충족
예를 들어 천만 관객 동원 영화 중 한 편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자. 이 영화는 그리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감독의 작가주의적 시선으로 완성해냈다. 물론 ‘기생충’이 보편성과 한 줄 요약 가능 서사를 가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웃기기도 하고,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기생충’은 작가가 만든 대중 영화에 가깝다.

이 작품이 천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위시해 마케팅적인 도움이 충분하게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굉장히 훌륭한 영화이지만 한 편에선 조금은 힘겹게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 ‘기생충’(사진 CJ 엔터테인먼트)
여기에 덧붙여 천만 관객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동반 관람 가능’이라는 핵심을 보유해야만 한다. 나만 좋아하는 영화는 결코 대대적 흥행에 도달하지 못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또 ‘어쩔 수가 없다’가 아무리 연출이 뛰어나고, 나를 사로잡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추천해서 극장에 데려가기 쉬운 영화는 아니란 이야기다. 아내나 친구 정도는 함께 보겠지만, 이 작품을 70대 초반의 장모님에게 추천할 수는 없다. 되려 ‘왕과 사는 남자’는 장모님이 관람을 원해서 아내가 표를 끊어드리기도 했다.

장모님은 영화를 보고 나온 후 아내와의 통화에서 “단종(박지훈 분)과 엄흥도(유해진 분) 때문에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렇게 극장을 간혹 찾는 이들이 웃고 울어야만 천만 관객 동원의 희망이 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만 관객 영화는 ‘혼자 보는 게 아니라 같이 보는 영화’를 뜻한다. 아들이 먼저 보고 가족과 함께 볼 수도 있고, 부모님이 먼저 보고 아이를 극장에 데려갈 수도 있는 그런 동반 관람이 없이는 천만 관객에 도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 스틸컷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 해도,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은 개봉 및 시대적 타이밍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언감생심의 고지다. 앞서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여기에서 다시 소환된다. 아무리 성수기인 명절 연휴 시즌에 개봉했다 할지라도 천만에 가까운 숫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떤 평론가는 ‘천만 관객 동원의 영역은 관객들의 어떤 집단 무의식의 반영’이라고도 했다. 집단 무의식은 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에 따르면 “개인이 아니라 인간 전체가 공유하는 무의식적 이미지와 감정 구조를 의미”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 희생하는 부모, 정의의 승리, 배신과 복수 등이 그와 같은 집단 무의식에 따른 보편적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 집단 무의식은 흥행과 달리 서사를 만들어가는 뼈대로서 활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영화 흥행을 언급할 때는 사실 사회적 스트레스가 생성해둔 ‘공동의 감정 상태’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가 불안할 때는 치밀어 오른 분노를 정의가 깨트리는 콘텐츠가 흥행한다고 한다. 경제적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코미디가, 세대 갈등이 치열할 때는 가족 이야기가 각광받는다고 한다. 이게 다 그 시기의 관객들이 공유한 감정 상태가 흥행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꼭 정답은 아니다. 단지 이런 유사 감정이 입소문으로 인해 무의식적 동조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관계자들은 ‘입소문’을 가장 중요시하기도 한다. 이 탓에 과거에는 포털 사이트에 ‘리뷰 알바’를 기용하기도 하고, 이 소문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물론 그 노력은 형태가 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장항준, 최대한 배우들을 잘 살려주게 찍어”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 스틸컷
‘좋지 아니한가’, ‘대립군’ 등을 연출한 정윤철 감독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장항준 감독은 감독인 자신을 지워서 배우를 돋보이게 했다. 미장센이고 나발이고 최대한 배우들을 잘 살려주게 찍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뛰어나고 어려운 연출법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의 엄청난 흥행은 그렇게 클로즈업된 배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기 위해 기적처럼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할 것이라고는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는 물론이고 감독 본인조차도 꿈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왕과 사는 남자’가 적절한 시기에 자리를 꿰차며 해내고 있다.

‘왕사남’ 스틸컷
‘왕과 사는 남자’는 앞서 말한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보편적 감정을 우리에게 설파하고 있으며, 사극으로서의 강한 장르적 쾌감을 전달한다. 나도 보고, 아내도 보고, 장모님과 그의 친구까지 관람했으니 동반 관람의 요소도 충족시킨다. 동반 관람이 가능하다는 건 본 사람의 입소문은 물론이고 미디어의 재잘거림이 꽤 큰 홍보 효과로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왕사남’은 여기에 가장 중요한 공동의 감정을 공유시켰다. 전 세계적 경제 불황과 팍팍해진 삶 속에서 어떤 인간적 동정과 위로가 필요해졌다. 마침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튀어나왔고, 그를 돕고 보필하는 사람과 핍박하는 이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는 영화 흥행 이후 일종의 성지가 됐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결국 ‘왕과 사는 남자’는 예측 불허의 영화 흥행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진 천우일회를 맞았다. 팬데믹 이후 점차 다운되기만 했던 영화 극장에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탄생했다.

물론 장항준 감독은 다시금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 예능에 출연, 으스대는 예능인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하지만 장항준의 ‘왕과 사는 남자’는 이 불경기에 극장으로 다시 관객을 불러들였다는 것만으로도 오롯이 칭찬받아 마땅할 작품이 되었다. 다음 천만 관객 영화가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 모두가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각 영화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26호(26.04.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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