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한 환자 웃게 만든 “한 번 해보죠”...뇌혈관수술 판 바꾼 이 남자 [MK닥터스 라운지]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6. 4. 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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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상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인터뷰]
‘머릿 속 시한폭탄’ 부르는 뇌동맥류 환자
두개골 절개 대신 ‘3cm 구멍’으로 수술
환자 부담 줄이고, 정확도 획기적으로 높여
TV만 틀면 나오는 유명한 의사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료실과 수술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은 기자들도 만나기 힘듭니다. ‘명의’라는 말조차 너무 흔한 시대, 진짜 의사들과 차 한 잔 나누는 ‘매경 닥터스 라운지’를 신설합니다.

첫 손님은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조원상 교수입니다. 조 교수는 ‘머릿 속 시한폭탄’이라 불리는 뇌동맥류 환자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병변을 다룹니다. 독보적인 ‘키홀 서저리(두개골 절개 없는 최소침습수술)’ 술기를 개발하게 된 뒷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조원상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환자들 사이에서 ‘다정한 선생님’으로 통한다. 숙련된 외과의도 엄두를 내기 힘든 뇌혈관 수술을 집도하는 그는 환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다. <심희진 기자>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한 번 해보죠.”

가는 곳마다 ‘수술 불가’라고 했다. 그렇게 10년, 경과만 관찰하며 머리에 거대 뇌동맥류를 안고 살았다. 실명 위기라는 벼랑 끝에 서 있던 A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원상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를 찾았다. 절박했던 그에게 조 교수는 묵직한 한 마디를 건넸다.

“한번 해보자”는 조 교수의 결단은 기적을 만들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A씨는 수 년간 의지해온 휠체어를 버리고 제 발로 걸어서 진료실에 들어왔다. 웃으면서 농담을 건네는 환자를 보며, 조 교수가 느낀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는 “365일 응급 콜을 대기하느라 피로가 켜켜이 쌓여도, 이런 순간 때문에 기꺼이 다시 수술실로 가게 된다”고 했다.

뇌동맥류는 약해진 뇌혈관 벽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파열되면 치명적인 뇌출혈을 일으켜 ‘머릿속 시한폭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파열 후 재출혈이 발생하면 사망률은 60~70%까지 치솟는다. 숙련된 외과의조차 좀처럼 엄두를 못 내는 수술, 환자들 입장에서 조 교수의 집도는 생존이 걸린 사실상 마지막 선택지다.

조 교수는 뇌혈관 수술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인물로 꼽힌다. 두개골을 크게 절개하는 전통적 방식 대신, 3cm 내외의 작은 구멍을 통해 고배율 미세 현미경으로 뇌 심부의 병변을 정밀하게 치료하는 ‘키홀 서저리’를 주로 한다. 이 최소 침습 기법은 현미경을 통해 혈관의 미세한 박동까지 확인하며 수술하기 때문에, 환자의 신체적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정확도는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키홀 서저리에 집중하게 된 스토리도 ‘운명’ 같다. 의료 자원이 부족했던 지역 병원 근무 시절, 조 교수는 혼자서 뇌혈관 조영술부터 시술과 수술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혈액 부족이었다. 수술 중 출혈이 발생하면 차로 200km이상 떨어진 인천까지 가서 피를 받아와야 했고 그 사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늘 뒤따랐다. 조 교수는 “개두술은 한 번 시작하면 반나절을 꼬박 서 있어야 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어떻게 하면 수술 시간을 줄이고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덜 나게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고 말했다.

카데바 실습으로 기술을 연마한 그는 2011년부터 임상에 본격 도입했다. 조 교수는 “그 결과 5시간이 기본이었던 수술은 평균 1~2시간으로 단축됐고, 수혈 가능성은 거의 제로(0)에 수렴하게 됐다”고 말했다.

AI 기반 실시간 뇌파 시스템 개발
1mm 이하 혈관 제어하는 로봇 연구 등
임상 경험을 미래 의료기술로 연결하고파
조원상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365일 응급 대기 상태로 ‘진료-수술-연구개발’에 시간을 쪼개 쓴다. 조 교수가 진료실에서 기억에 남는 환자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심희진 기자>
조 교수는 이 기술을 난도가 높은 다발성 뇌동맥류 수술까지 확장 적용했다. 여러 부위의 꽈리를 치료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가며 반복 수술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조 교수는 한 자세에서 수술대 각도만 조절하는 ‘테이블 틸팅’ 기법을 도입했다. 2021년에는 이와 관련한 임상 결과도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한 번의 수술로 무려 8개의 동맥류를 동시에 처리한 사례도 있다.

현재 조 교수가 집도하는 수술의 약 90%는 키홀 서저리로 진행된다. 부푼 혈관 입구를 클립으로 묶어 혈류를 차단하는 완벽 결찰 성공률은 97%, 합병증 발생률은 1.5% 수준이다. 미국 주요 대학병원의 합병증률(5~10%)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낮은 수치다. 빠른 회복 속도 덕분에 환자 대부분은 수술 후 중환자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일반 병실로 이송된다.

조 교수는 수술실에서 쌓은 임상 경험을 미래 의료 기술로 연결하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팀과 공동 개발 중인 ‘AI 기반 실시간 뇌파 분석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환자의 뇌파(EEG)를 AI가 분석해 가상 공간에 재현하는 이 ‘디지털 트윈’ 모델은 수술 결과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전간증을 동반한 뇌혈관 기형 환자의 수술 전 검사에서 이상 부위를 정밀하게 찾아내 수술 성공률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구자현 고려대 교수팀과는 생분해성 뇌압 센서도 개발 중이다. 체내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이 센서는 중환자실 환자의 뇌압과 혈류 상태를 실시간 데이터로 확인하기 위한 장치다. 조 교수는 “심장의 심전도처럼 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외에 포항공대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뇌동맥류의 새로운 발병 원인을 규명하는 기초중개연구를 진행 중이며, 산업계와는 1mm 이하의 혈관까지 정밀 제어할 수 있는 신경외과용 미세수술 로봇 개발을 논의 중이다.

조 교수는 “K의료의 숙련도는 이미 세계 정점이지만 국제무대에서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으려면 우리가 처음 내놓은 것이 있어야 한다”며 “원천 기술과 데이터를 구축해 후배 의사들이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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