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터 F&B 기업까지 상환 비상등…FI와 법적 분쟁 불씨도 [시그널]
그룹사마다 투자금 반환 압박 가중
자체 자금·배당 확대로 조달 한계
PRS 활용땐 건전성 숨은 뇌관 우려
IPO 달성 위한 노력 등 다툼 여지
상환 여부와 별개로 소송전 갈수도
이 기사는 2026년 4월 21일 17:25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대기업들이 자회사 기업공개(IPO)를 담보로 받은 투자금을 조기 상환하는 흐름은 중복상장 금지 원칙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중복상장 허용의 대전제로 꼽히는 ‘모회사 주주 동의’는 모호하다는 공감대 속에 예외로 분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사실상 접으면서 반환해야 할 투자금이 불어나기 전에 정리하겠다는 움직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상장 무산에 따른 책임 여부를 놓고 기업과 재무적투자자(FI) 사이에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IPO 시장에서 대어가 실종되면서 전체 상장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와 재계에 따르면 상장 실패 시 주요 대기업들이 상환해야 할 투자금을 합하면 약 1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표적으로 일본 금융사 소프트뱅크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이 좌절될 경우 현대차그룹에 약 8억 8000만 달러 규모의 지분을 되사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한화그룹(한화에너지·한화첨단소재), 카카오그룹(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재팬), HD현대그룹(HD현대로보틱스), 신세계그룹(SSG닷컴·SCK컴퍼니), GS그룹(GS엔텍), DN그룹(DN솔루션즈), KT(KT클라우드) 등 주요 그룹사들도 조달 환경 변화에 따른 재무적 대응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IPO가 어려워지면 모회사가 자금을 마련해 해결해주거나 아예 매각하는 방안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상장 불발 시 갚아야 할 투자금만 수천억 원을 웃도는 만큼 신규 자금 조달을 타진하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LS MnM은 상환 재원을 마련하고자 연초 회사채 발행을 검토했지만 최근에는 증권사 외의 조달 창구로 시선을 옮겼다. SK에코플랜트의 IPO 불발을 보상해야 하는 SK㈜는 자체 보유 자금을 활용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빅딜 기회를 감지한 대형 증권사들은 투자금 마련 목적의 자금 조달 옵션을 앞다퉈 제안했다. 이들 모두 약속한 상장 기한을 준수하기 어려워지자 모회사들이 투자사들과 접촉해 상환 방식과 시기 등을 조율 중이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단순 대출보다 신용도가 우량한 대기업 계열사의 지분을 담보로 설정하거나 주가수익스와프(PRS) 등 구조화 금융 형태로 조달 제안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원리금 상환 리스크를 낮추면서 안정적인 이자 수익과 담보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한편, 기업들도 드래그얼롱(동반매각요청권) 등 경영권 간섭 위험을 해소하면서 재무 구조를 재정비할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물린다는 평가다.
다만 그룹사마다 자금 사정이 제각각이라 상환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IB 업계 관계자는 “중복상장이 일괄 금지돼도 실적이 견고하고 성장성이 뚜렷한 계열사라 판단되면 FI들도 목표 수익률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기다릴 여지가 있다”면서 “이 경우 모회사들은 자체 자금으로 투자금을 갚거나 배당금을 늘려 대응하거나 여건이 되지 않으면 상환 협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했다.
한화첨단소재가 대표적인 예시로 꼽힌다. 2022년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소재 사업부가 물적 분할해 설립된 한화첨단소재는 글랜우드크레딧으로부터 6800억 원을 투자 받는 대신 2028년 말까지 증시 입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계약 주체인 한화솔루션은 사업 부진과 대규모 유상증자가 촉발한 시장의 반발을 겪고 있다. 한화솔루션도 이를 감안해 “외부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언급했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과 SCK컴퍼니의 실적 하락세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9년 출범한 SSG닷컴은 2021년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며 IPO에 도전했지만 흑자 전환이 지연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1178억 원으로 전년(-727억 원) 대비 확대됐다.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 SCK컴퍼니도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투자를 유치 받았던 2021년(2393억 원) 대비 영업이익이 1700억 원대로 떨어졌다.
상환 여부와 별개로 기존 투자자들과의 법적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중복상장 금지 규제는 적격 상장 요건(Q-IPO)상 불가항력적 이벤트로 인정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에도 IPO 달성을 위한 노력 여하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SK에코플랜트·LS이브이코리아 등은 투자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FI로부터 IPO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신규 상장이 줄어들면서 IPO 시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5년 동안 코스피에 입성한 대기업 계열사는 평균 두 곳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대규모 공모를 단행했기 때문에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요소로 꼽혔다. 기술성장기업들의 상장도 까다로워진 흐름과 맞물리면서 연간 IPO 건수는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가운데 기술특례 심사 강화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신규 상장 기업 수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감소될 것”이라며 “최근 대형 증권사 IPO 실무진이 투자 직종으로 잇따라 커리어를 옮기는 것도 급변한 시장 환경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순철 기자 kssunchul@sedaily.com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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