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球)로부터 원초적인 생명 이미지를 표현하는 윤솔의 도자

아르떼 2026. 4. 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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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홍지수의 공예 완상
'탄생에서 소멸, 그리고 다시 탄생'
토구(土球)를 조각하여 재구성하는 작가 윤솔

우주로 나간 우주인이 바라본 지구, 달은 둥근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원보다는 원에 가까운 타원일 확률이 높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 운동법칙에 따르면,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두고 타원 궤도로 공전한다. 수많은 행성이 회전운동하는 우주조차 빅뱅 이후 구형으로 팽창 중이다. 최초의 우주. 암흑 속에서 시공간을 이루는 물질과 에너지가 한 위치에 모여들면 인력이 형성된다. 존재가 모이고 응집될수록 그 자리는 다른 시공간보다 훨씬 더 빼곡한 시공간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물질과 물질 사이의 인력은 곧 힘의 균형이 기울며 움직임을 만들고 시공간 형태가 왜곡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질량과 에너지의 뭉침은 중력을 발생시킨다.

에너지가 뭉치면서 힘을 발산하면 물질은 더욱 단단히 내부의 힘을 수축시키면서 응집한다. 내부로 모이는 에너지는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물질 에너지의 흡수와 발산이 서로 반대로 작용하면서 형태와 움직임을 만든다. 어느 시점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부합하여 공존하는 상태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우주로 나가 지구, 달을 볼 수는 없더라도, 작업실에서 손으로 흙을 만지고 흙덩어리를 옮기고 들고 형태를 두 팔로 껴안길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두 손에 물질 고유의 에너지와 질량, 부피가 오롯이 느껴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가늠하게 된다. 흙물을 석고 몰드에 부어 만든 다양한 흙구(土球)를 크기, 접합 방법 등을 바꾸어 붙이거나 표면을 자르고 결합해 작업하는 작가 윤솔 역시 마찬가지다.

윤솔은 모든 생명의 근원인 자연물의 탄생과 진화의 출발점을 구(球)로 인식한다. 중심에 위치한 핵과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지각층이 서로 중력으로 뭉쳐 구의 형태를 이루듯, 자연 속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한껏 움켜쥔 식물 껍질의 유기적 형태도 닮았다. 조형 작업에서부터 용기(用器) 작업을 구분하기보다 거듭된 입체 드로잉 속에서 그는 조형과 그릇의 요소를 재발견하고 성취해 나간다.

그는 슬립캐스팅(slip casting) 기법으로 기본 형태를 제작한다. 석고로 제작한 원형 틀에 슬립 상태의 흙물을 투입하고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틀을 분리해 적당히 마른(leader hard) 상태의 토구(土球)-원형을 얻는다. 이후 형상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칼을 소묘하듯 표면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곡선으로 잘라낸다. 같은 크기, 형태의 구라도 작가가 어느 지점에서 자르기 시작해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서 매번 다른 조각이 나온다. 앞서 잘라낸 조각의 선형을 조건으로 다음 조각은 귀납적으로 생성된다. 구의 표면을 유영하듯 몸을 쓰며 칼로 곡선을 그리는 것은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라는 감각기관으로 에너지의 길, 형태의 갖춰진 결을 찾는 과정과 유사하다. 마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곡선이 그어지고 조각이 생성된다. 그리고 종당 형태가 해체된다.

그는 자른 조각을 재구성하여 맞춘다. 조각 퍼즐을 맞추어 원 상태로 회복하는 귀납적 순서가 아니라 시공간에 모종의 중심을 잡고 그로부터 주변으로 새로운 질서, 힘의 균형을 찾아 진행한다. 마치 나무가 성장할 때 중심 줄기에서 가지 쪽으로 진행되는 자연 생장의 이치와도 유사하다. 각기 다른 모양, 무게의 돌을 거듭 쌓아 중심을 잡는 놀이와도 비슷하다. 정치(定置)한 구의 표면에 예상치 못한 방향과 동세로 잘라낸 조각들, 구가 지닌 기하학적 특성 즉 본형 그대로의 기록이 있음에도 그들은 각자의 에너지, 방향성도 가지고 있다. 형태, 무게, 운동성이 다른 유기적 형태를 이리저리 쌓아 층층 겹쳐 형태를 잡아나간다. 조각과 조각을 맞물리는 것은 물질과 물질의 결합이 아니라 새로운 힘, 동세,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같은 원형에서 시작했어도 매번 다른 형태, 운동감, 리듬이 만들어진다.

도자기는 1,200∼1,300℃에서 그 이상의 온도로 구워야 본연의 색과 선, 형태가 나온다. 고온에 구울수록 얇고 가볍다. 고온 소성 후에 사포질로 조각의 표면을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작가가 선호하는 강물에 씻긴 부드러운 조약돌의 표면과 같은 광택과 질감. 나아가 마치 나비의 날개짓마냥 공기 중에 부유할듯한 가벼움, 동세가 느껴진다.


윤솔의 작업은 정주한, 숨이 없는 사물이지만 보고 있으면 카오스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동하는 생물체 같다. 바라보는 눈이 움찔거리고 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평정에서 혼돈으로, 탄생에서 소멸로 그리고 다시 탄생’이라는 순환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공감각으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치 봄날 공원과 가로수 길을 지나다 귓가에 벚꽃 피우려고 영그는 소리, 저 뒷골목 집 마당의 자목련이 거세게 땅속 물 빨아들이는 소리, 집 앞 공터 개나리가 노란 색깔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생명의 진동 속으로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을 때, 진동은 단순한 흔들림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리듬이라는 것이 체감된다.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세계는 진동의 조화 위에 놓여 있지 않나.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