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부터 현대까지…700년 미술사의 숨결 고스란히
“시민들의 공공재로 만들어 달라”
은행가 슈테델의 유언으로 탄생
재산·회화 500여점 등 수천점 기부
2층 고전예술·1층 근대예술

지난 1816년 은행가인 요안 프리드리히 슈테델(Johnan Friedrich Stadel·1728~1816)은 세상을 떠나기 전 프랑크푸르트 시민 앞으로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장에는 단순히 재산을 기부한다는 수준을 넘어 시민들의 미적 안목을 높이는 교육을 촉구하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은행가이자 상인으로 재력을 쌓은 그는 거액의 현금과 자택, 평생 수집한 500여 점의 회화, 수천 여점의 드로잉·판화를 사회에 환원해 화제를 모았다. 번듯한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문화소양을 높이고 예술가들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라는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자신의 유산이 특정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공공재가 되길 꿈꿨던 것이다. 이는 당시 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이 왕실이나 귀족의 컬렉션을 근간으로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근대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슈테델 미술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건물로 중세시대의 종교화에서부터 21세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3000여 점의 회화와 10만 여점의 드로잉·판화를 소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층의 고전예술(Old Masters, 14세기~18세기), 1층의 근대예술(Modern Art, 19세기~20세기 초)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바로크, 근대 컬렉션은 700년 예술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직역하면 ‘옛 거장들’인 고전예술 전시실에서는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메르, 산드로 보티첼리, 얀 반 에이크, 알브레히트 뒤러, 클로드 모네 등 대가들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슈테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작품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지리학자’(The Geographer·1669년작)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풍속화가인 그는 지리학자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지구본, 지도 들에 둘러싸여 학문에 몰두한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베르메르 특유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빛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은 당시 해양무역과 과학탐구가 활발했던 네덜란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 전 세계에 3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베르메르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 20세기 이후 미술계로부터 재조명을 받았다.
‘옛 거장들’전시실에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상적인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n Idealized Woman, 1480~1485년)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보석 세공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특한 헤어 스타일링과 진주장식 등을 통해 여성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미술관 1층으로 내려가면 인상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클로드 모테의 ‘오찬회’(The Luncheon·1868), 오귀스트 르누와르의 ‘피아노 치는 두 소녀’(Young Girls at the Piano),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 위의 무용수들’과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유대교 회당’(1919),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 모자를 쓴 누드’(1911)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클로드 모네의 초기작인 ‘오찬회’는 일상적인 식사 풍경을 빛의 변화와 함께 담아낸 걸작으로 인상주의 거장의 진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또 다른 볼거리가 기다린다. 슈테델 미술관의 ‘이웃’인 박물관 거리다. 마인강을 따라 늘어선 1.5km의 구간에는 수공예 박물관, 영화박물관, 세계민속박물관, 건축박물관, 통신박물관, 현대미술관, 리비히 하우스(Liebieghaus·조각박물관) 등 10개의 박물관이 늘어서 있다. 독일의 경제수도로 통하는 프랑크푸르트가 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관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1970년대부터. 헤센주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힐마르 호프만(Hilmar Hoffmann)이 1977년 선거공약으로 미술관 거리를 추켜들면서 1984년 시작됐다. 지난 2007년부터 는 ‘프랑크푸르트 강변의 미술관들’이라는 뜻의 ‘뮤지엄우퍼 프랑크푸르트’를 로고로 제작해 마인강을 가로지는 철교에 현수막을 내거는 등 도심 축제로 키워가고 있다. 슈테델 미술관의 연간 방문객 70만 명을 포함해 매년 전 세계에서 300여 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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