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부터 현대까지…700년 미술사의 숨결 고스란히

광주일보 2026. 4. 21. 12: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4>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시민들의 공공재로 만들어 달라”
은행가 슈테델의 유언으로 탄생
재산·회화 500여점 등 수천점 기부
2층 고전예술·1층 근대예술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 남쪽 기슭에 자리한 슈테델 미술관은 왕실의 컬렉션을 모태로 한 유럽의 유명 미술관과 달리, 막대한 부를 일군 은행가의 기부로 탄생했다. <슈테델 미술관 제공>
“프랑크푸르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재산을 시민을 위한 예술전당을 건립하는 데 사용해달라.”

지난 1816년 은행가인 요안 프리드리히 슈테델(Johnan Friedrich Stadel·1728~1816)은 세상을 떠나기 전 프랑크푸르트 시민 앞으로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장에는 단순히 재산을 기부한다는 수준을 넘어 시민들의 미적 안목을 높이는 교육을 촉구하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은행가이자 상인으로 재력을 쌓은 그는 거액의 현금과 자택, 평생 수집한 500여 점의 회화, 수천 여점의 드로잉·판화를 사회에 환원해 화제를 모았다. 번듯한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문화소양을 높이고 예술가들을 양성하는 학교를 세우라는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자신의 유산이 특정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공공재가 되길 꿈꿨던 것이다. 이는 당시 유럽의 주요 미술관들이 왕실이나 귀족의 컬렉션을 근간으로 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근대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슈테델 미술관은 14세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00년에 걸친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14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장.
슈테델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마치 기품있는 저택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고풍스런 석조건물과 화려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로비에 서면 곳곳에 내걸린 명작들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그도 그럴것이 슈테델은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700년 전의 붓질이 살아 있는 예술품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든홀(Garden Halls) 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슈테델 미술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건물로 중세시대의 종교화에서부터 21세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3000여 점의 회화와 10만 여점의 드로잉·판화를 소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층의 고전예술(Old Masters, 14세기~18세기), 1층의 근대예술(Modern Art, 19세기~20세기 초)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바로크, 근대 컬렉션은 700년 예술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직역하면 ‘옛 거장들’인 고전예술 전시실에서는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메르, 산드로 보티첼리, 얀 반 에이크, 알브레히트 뒤러, 클로드 모네 등 대가들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이 슈테델 미술관의 아이콘인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의 ‘로마 캄파냐에서의 괴테’(Goethe in the Roman Campagna)를 감상하고 있다.
이 곳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슈테델 미술관의 아이콘인 ‘로마 캄파냐에서의 괴테’(Goethe in the Roman Campagna, 1786)다. 독일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이 이탈리아를 여행중인 괴테를 고전주의적 이상향으로 묘사한 기념비적 초상화다. 괴테가 고대 유적(오벨리스크, 원형 무덤)이 있는 캄파냐 평원에 흰 옷을 입고 명상하듯 비스듬히 앉아 있는 모습은 관람객들을 따뜻하게 반기는 듯 하다. 단순한 개인 초상화를 넘어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괴테라는 지성인이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이상에 동화되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슈테델 미술관은 물론 독일을 상징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슈테델 미술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작품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지리학자’(The Geographer·1669년작)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풍속화가인 그는 지리학자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지구본, 지도 들에 둘러싸여 학문에 몰두한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베르메르 특유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빛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은 당시 해양무역과 과학탐구가 활발했던 네덜란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 전 세계에 3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베르메르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 20세기 이후 미술계로부터 재조명을 받았다.

‘옛 거장들’전시실에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도 관람할 수 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의 ‘이상적인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n Idealized Woman, 1480~1485년)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불렸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보석 세공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특한 헤어 스타일링과 진주장식 등을 통해 여성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미술관 1층으로 내려가면 인상주의와 독일 표현주의,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클로드 모테의 ‘오찬회’(The Luncheon·1868), 오귀스트 르누와르의 ‘피아노 치는 두 소녀’(Young Girls at the Piano),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 위의 무용수들’과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의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유대교 회당’(1919),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 모자를 쓴 누드’(1911)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클로드 모네의 초기작인 ‘오찬회’는 일상적인 식사 풍경을 빛의 변화와 함께 담아낸 걸작으로 인상주의 거장의 진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슈테델 미술관의 지하 1층에 자리한 현대미술 전시장. 천장의 195개 채광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이 곳은 1945년 이후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슈테델 미술관의 지하층은 ‘가든 홀’(Garden Halls)이라 불리는 현대미술(Contemporary Art) 전용 공간이다. 천장의 195개 원형 채광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이 곳에는 194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작품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 내걸린 앤디 워홀의 ‘괴테’(1982)로 슈테델 미술관의 소장품인 ‘로마 캄파냐의 괴테’에서 영감을 받아 팝아트 형식으로 재해석한 초상화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또 다른 볼거리가 기다린다. 슈테델 미술관의 ‘이웃’인 박물관 거리다. 마인강을 따라 늘어선 1.5km의 구간에는 수공예 박물관, 영화박물관, 세계민속박물관, 건축박물관, 통신박물관, 현대미술관, 리비히 하우스(Liebieghaus·조각박물관) 등 10개의 박물관이 늘어서 있다. 독일의 경제수도로 통하는 프랑크푸르트가 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관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1970년대부터. 헤센주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힐마르 호프만(Hilmar Hoffmann)이 1977년 선거공약으로 미술관 거리를 추켜들면서 1984년 시작됐다. 지난 2007년부터 는 ‘프랑크푸르트 강변의 미술관들’이라는 뜻의 ‘뮤지엄우퍼 프랑크푸르트’를 로고로 제작해 마인강을 가로지는 철교에 현수막을 내거는 등 도심 축제로 키워가고 있다. 슈테델 미술관의 연간 방문객 70만 명을 포함해 매년 전 세계에서 300여 만 명이 이곳을 다녀간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광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