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늑구 루트’ 경험하자” 9살 아들을 꼬드겼다
늑구가 열흘 동안 헤맨 코스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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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구’가 놀이공원을 벗어난 건 지난 8일 오전이었다. 개장 직전인 9시께 울타리 밑 땅을 파서 늑대사파리를 벗어난 수컷 2살 늑대는 오월드 썰매장이 있는 남쪽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열흘 만인 지난 17일 새벽 놀이공원에서 남서쪽으로 1.9㎞ 떨어진 뿌리공원 너머 유등천 수로에서 무사히 구조됐다.
늑구 ‘무사귀환’ 이틀 뒤인 일요일(19일), 이 녀석의 모험 경로를 따라 걸어보았다. 놀이공원 경계를 넘어간 늑구는 가출 첫날 보문산 줄기를 타고 오월드 경계에서 북동쪽으로 0.5㎞ 떨어진 치유의숲까지 나아갔다. 그리곤 그날 밤 정신을 차려 빠져나간 오월드 남동쪽 경계로 다시 돌아왔다. 첫날부터 늑구는 가족 무리가 있는 동물원으로 돌아가려 애를 썼다.
그 시점에 늑구보다 더 당황한 건 ‘인간’이었다. ‘늑대 탈출’ 몇 시간 뒤 오월드 서쪽 산성동 도심 도로(오월드네거리)에 나타났다는 시민 제보가 사진과 함께 경찰에 접수됐다. 오월드에 대기하던 소방지휘본부 차량까지 근처 산성초등학교로 옮겨지고 대전시·소방·경찰에 언론까지 우왕좌왕 난리가 났다. 전국은 순식간에 ‘맹수 늑대가 시민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몇몇 언론은 “사살 검토”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제보 사진은 에이아이(AI)로 만들어진 가짜였다. 결론적으로 가출 뒤 늑구는 단 한 번도 도심 쪽으론 나가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늑대는 자연에 머물러 버티며 집(동물원)으로 향했다. 그런 늑구를 대전의 숲과 하천이 내내 보살핀듯했다.

열흘 간의 취재를 종합해 가늠한 ‘늑구 루트’(탐방 경로)의 시작점은 오월드 뒤편 산책로였다. 연패 늪에 빠진 한화이글스가 ‘늑구맞이 승리’를 연달아 기록한 지난 주말, “전세계 어린이 중 최초로 늑구 루트를 경험할 기회”라며 9살 아들을 꼬드겨 함께 길을 나섰다.

보문산 아래로 빙 둘린 길은 오월드-뿌리공원-유등천-산수공원-구완천-무수천하마을로 이어졌다. 동물원을 벗어난 늑구는 보문산 시루봉 기준 남동서쪽으로 2∼3㎞ 이상 벗어나지 않고 길을 헤맸다. 전문가들은 “개과인 늑대의 강한 ‘귀소 본능’이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늑구 가출 8일째인 지난 15일 처음 찾은 오월드 산책로 초입엔 생닭을 넣어놓은 트랩이 설치돼 있었다. 그날 거기서 마주친 어르신(70대 남성)은 “매일 아침 운동 코스여. 늑대가 나온들 뭐가 무서워”라며 가시던 길을 갔다.
오월드 뒤 야산을 타고 내려오니 유등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가 보였다. 하천 넘어 멀리 뿌리공원도 보였다. 늑구는 그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유등천 근처 수로에서 17일 새벽 구조됐다. 구조대가 가까이 다가가 쏜 마취총을 맞고 비틀거리며 이동하던 녀석은 하천가 도랑에 코를 박듯 쓰러졌다. 다급히 달려간 최진호 야생생물협회 전무이사는 혹시나 익사할까 재빨리 늑대의 머리부터 잡아 들어 올렸다. 대전시가 언론에 제공한 영상에는 구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뿌리공원 쪽에서 산수공원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참 아름다웠다. 보문산과 침산 사이로 유등천이 도도하게 흘렀다. 길에는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아 새소리가 잘 들렸다. 아직까진 생태환경이 잘 보전된 보문산에는 대전시 깃대종(지역을 대표하는 동식물)인 하늘다람쥐가 산다. 천연기념물 328호인 하늘다람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여러 수종이 뒤섞여 울창한 혼합림에 산다. 특히 대전에서는 둘레가 30m 이상인 고수령 나무가 많은 보문산과 식장산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문산에는 노란목도리담비와 삵(멸종위기야생생물 2급)도 산다. 집을 떠난 늑구는 이런 친구들이 있는 보문산을 헤매고 다녔다.
유등천에서 좁은 개울(구완천)로 연결되는 곳까지 다다르자 ‘치유의 숲’ 방향을 알리는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출 첫날 오후 늑구는 오월드 동쪽에 있는 치유의 숲 근처에서 시민에게 목격됐다가 사라졌다. 거기서 다시 동물원 동물병원 근처까지 이동한 늑구는 9일 새벽 산에 들어온 수색대에 겁을 먹고 도망쳐 다시 실종됐다.
이후 움직임이 전혀 포착되지 않던 늑구는 닷새 뒤(13일 저녁) 동물원에서 약 2㎞ 떨어진 무수천하마을에 모습을 드러냈다. ‘멧돼지도 잡곤 한다’는 내공의 마을 개들에게 몇 시간을 쫓기다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입구까지 뛰어 올라간 늑구는 쌩쌩 달리는 차에 놀라 다시 마을로 들어왔다. 그러다 고속도로와 구완천 사이 삼각형 섬처럼 놓인 야트막한 마을 야산까지 몰려 다음날 새벽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구완천을 따라 걸어 만난 ‘무수천하마을’ 초입에는 ‘하늘 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란 소개와 함께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이 서 있었다. 장승 옆에는 ‘마을과 하늘을 이어준다’는 새 모양 솟대도 자리를 지켰다. 이 마을 사람들은 생명이 움트는 매해 봄 뒷산(보문산 자락)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가장 안쪽에는 대전시 유형문화재인 ‘유회당’도 있다. 유회당은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 낙향해 마을 뒷산의 부모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공부하기 위해 1714년에 지은 것이다.


13일 저녁 뒷산을 돌아다니던 개들에게 쫓기다 마을까지 내려온 늑구는 산과 개울, 밭으로 둘어쌓인 야산에서 졸다 깨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다. 구조대는 늑구가 완전히 잠들 때를 기다리며 밤새 녀셕을 드론카메라로 지켜봤다. 기다리다 못해 동틀 무렵 살금살금 다가가 마취총을 쐈지만 빗겨나갔고, 놀란 늑구는 도망쳐 다시 사라졌다.
늑구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뒤 바라보는 그날의 마을과 산의 모습은 몹시 평화로웠다. 야산 쪽에서 보이는 구완천 넘어 맞은편 석태산 자락도 푸릇푸릇했다. 그런 잔잔한 풍경 위로 개울소리와 새소리가 스며들었다.
‘어쩌면 그 밤, 이 마을이 늑구를 품어주었구나.’
아이와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서성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기운에 열흘 동안 늑구 따라 지친 기자의 마음도 도닥거려지는 듯했다. 그때 정자에 걸어앉은 아이가 봄볕에 발개진 얼굴로 조잘거렸다. “엄마, 우리 다음엔 김밥 싸서 늑구 동네 소풍 오자!”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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