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엔 기름보다 현금… ‘중동 부국’ UAE도 美 달러 구명줄 찾는다
이란戰 장기화에 유동성 확보 총력
S&P “걸프권 은행서 예금 450조원 이상 이탈 위험”
중동을 흔드는 이란 전쟁이 7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세계 6위 석유 매장량과 세계 3위 국부펀드를 자랑하는 중동 대표 부국(富國)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과 통화스와프 구축 논의에 나섰다.
막대한 유무형 자산을 보유한 부국도 전쟁 같은 극한 위기 상황에서는 장부에 적힌 자산 규모보다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달러 유동성 확보가 훨씬 절실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칼리드 모하메드 발라마 UAE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주 워싱턴을 방문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을 비롯한 연방준비제도(Fed) 및 재무부 고위 관계자들과 연쇄 회동을 갖고 통화스와프 체결 아이디어를 심도 있게 타진했다. UAE 고위 당국자들은 지금까지 이란전쟁으로 치명적인 경제적 타격은 피했지만, 앞으로 상황 전개 여부에 따라 금융 구명줄(financial lifeline)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고 미국 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구명줄은 심각한 경제적 위기나 자금난 상황에서 도산을 막아주는 최종 수단을 뜻한다. 개인으로 치면 저신용자 대출, 기업에는 전환사채(CB) 발행 등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국가 간에는 통화스와프가 주로 쓰인다. 통화스와프는 전시(戰時)나 금융 위기 같은 비상 상황에 두 나라가 약정한 환율에 따라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 쓰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개념이다. 금융시장에선 UAE가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필요할 때 언제든 기축 통화이자 상대적 안전 자산인 미국 달러를 신속하게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안전 신호로 작용한다.
UAE는 외환보유액만 2700억 달러(약 397조 원) 수준으로 중동 지역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여기에 UAE가 자랑하는 국부펀드 자산 규모 역시 세계 최상위권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약 1조 달러 안팎으로 추산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과 3850억 달러 자산을 굴리는 무바달라 등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총 규모로 3위 수준이다. 다만 국부펀드 자금은 대부분 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인프라 등에 묶여 있는 장기 투자자산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UAE 같은 부국도 환율 방어와 수입 대금 결제, 단기 외채 상환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미국 달러 현찰이 급해진다. 국부펀드들이 보유한 장기 투자자산은 이란전쟁 같은 위기 발생 시 곧바로 매각해 현금화하기가 물리적으로 까다롭다. 개인이 수십억원대 부동산과 주식을 소유하고 있어도 당장 이번 달 결제해야 할 막대한 대출 원리금이 몰리면 흑자 부도를 맞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위기 상황에서는 총재산 규모보다 당장 결제 가능한 현금성 달러가 경제 생명줄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UAE는 2월 28일 이란전 발발 이후 이란 측 공습으로 에너지 생산 인프라와 글로벌 물류망이 동시에 타격을 받았다. 림 알 하쉬미 UAE 국제협력부 장관은 19일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시작된 이후 자국 영토에 2800발이 넘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쏟아졌다“고 밝혔다.
에너지 시설은 UAE에 안정적인 달러를 벌어주던 국가 핵심 동력이다. 원유를 정상적으로 생산하더라도 이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 선박과 해상 보험, 항만 시설이 멈춰 서면 기름을 돈으로 바꾸는 통로가 막힌다. 로이터에 따르면 19일 기준 하루 1300만 배럴에 해당하는 걸프 지역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3억 입방미터가 바다에 발이 묶인 상태다.
UAE 특유의 경제 구조도 단기 유동성 압박을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UAE는 걸프 산유국 중에서도 전 세계 자본이 모이고 흩어지는 글로벌 금융·물류 허브를 자처했다.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글로벌 경제와 문화 거래 중심지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지정학적 불안감이 장기적으로 고조되면 관광과 항공, 부동산, 금융 거래처럼 외부 충격에 가장 민감한 부문 투자 심리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외국계 거대 자본과 글로벌 기업 투자자들 역시 앞다퉈 안전 자산인 달러를 챙겨 UAE를 빠져나가려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금융정보기업 S&P 글로벌은 최근 분석에서 “중동 전쟁이 길어질 경우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국가 은행권 전체에서 최대 3070억 달러(약 451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 예금이 이탈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UAE는 자국 통화 디르함화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하는 페그제를 운용한다. UAE 중앙은행이 시장 신뢰를 지키고, 뱅크런을 막으려면 달러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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