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모순점

조중연 2026. 4. 2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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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 장편소설 ‘남방여왕-괴물의 탄생’] ⑪두 개의 모순점

<연재 순서>

1 프롤로그_이성로 변호사
2 어두움의 끝_유령
3 육짓것의 시간
4 '게메'란 말은….
5 심층취재부
6 제주도판 '그것이 알고 싶다'
7 제주도 3대 영구 미제 사건
8 관덕정 살인 사건
9 유력 용의자의 등장
10 새벽의 루트
11 두 개의 모순점
12 나보다 더 센 놈이 나타났다
13 신탁의 밤

다음 날 오전 내내 김수남은 뭔가 빠졌다는 느낌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이대로 관덕정 살인 사건에서 손 떼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정확한 누수 지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수도 파이프를 덮은 느낌이었다. 

수사 첫 단계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이 사건은 유의미한 증거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진범을 유추할 만한 수사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김신덕의 행적이나 증언을 차근차근 되작거려 보면 루트 외에도 수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예를 들어 경찰은 김신덕이 자백하기 전까지 살해 도구가 벽돌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 

"현씨의 가방을 태우고 펜스를 넘어갔는데, 봉고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그 위로 뛰어내렸다는 얘기도 꽤 설득력 있게 들리죠." 

강경식이 추임새를 넣었다. 

"김신덕은 이 사실들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자기가 한 짓도 아닌데 쇠파이프로 때렸는지 벽돌로 찍었는지 어떻게 알았느냐 이 말이지. 이게 상상만으로 가능할까?" 

"부검의도 쇠파이프보다는 벽돌이 살해 도구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죠. 신문 기사들을 참조하여 상상력을 발휘했다기에는 모든 진술이 너무 구체적이에요." 

첫 연재를 앞둔 화요일 아침, 사무실에서 둘만의 회의가 열렸다. 그사이 조사한 바를 밝히고 소견을 첨부한 뒤, 논리의 빈틈을 메워가는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김신덕의 진술에 디테일이 너무나 살아 있다는 점이 앞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핵심 쟁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집착이란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긴 해도, 그리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는 아니었어. 이 사건은 김신덕이 자백한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실타래가 꼬였고. 진범이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지 않는 한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 거야." 

"저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있어요. 사건 현장에서 없어진 물품이 두 개 있었죠. 하나는 단란주점 주인 현씨의 손가방, 또 하나는 고춘자의 휴대폰. 현씨의 손가방은 목관아지 북동쪽 구석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었죠. 반면 휴대폰은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해요. 그런데도 김신덕의 자백에서 고춘자의 휴대폰에 대한 진술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어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 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춘자의 휴대폰이 용담 대학동에서 마지막으로 꺼졌다고 밝혀졌지." 

"그렇다면 다른 진술들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했던 것과 달리 휴대폰 이야기만 누락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장 강유찬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간 태도와 성향으로 볼 때 협조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고춧가루를 뿌리면 뿌렸지, 팔 걷어붙이고 도와줄 캐릭터는 아니었다. 이 기사가 나가면 또 심술깨나 부릴 터였다. 

"설사 김신덕이 얘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경찰은 휴대폰에 대해서 집중 추궁해야 했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유류품이었으니까." 

"김신덕은 수배해보셨어요?" 

"완전히 사라졌어. 그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다방면으로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제주도 내 연고가 전무하다시피 했어. 꼭 증발한 것 같았지. 2005년 출소 이후 생활반응이 전혀 안 잡힌단 말이야. 이 정도면 제주도를 완전히 떴단 얘기지."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쉬엄쉬엄하지. 뭐가 좋을까?" 

오전 내내 두 개의 모순점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강경식 역시 미소카페 살인 사건 파일에 코를 박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사건 일지와 현장 사진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아무거라도 괜찮아요." 

"그래도 강 기자가 있어서 다행이야. 심층취재부가 신설되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함께 밥 먹을 사람도 없었는데. 저쪽 기사 뷔페 식당으로 가자구. 밑반찬이 다양하고 국도 두 종류 매일 바뀌어 나오는데, 동태찌개 국물이 끝내주거든. 여름에는 냉국 맛도 좋고. 무생채도 아삭아삭 시큼한 게 먹을 만해." 

뷔페 식당 안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제주도로 원정 훈련을 온 학생들이었다. 식당은 다량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좌석이 많아서 항상 단체 손님들로 붐볐다. 거기다 양껏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한창 많이 먹고 격렬하게 운동하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부터 기사 식당 콘셉트로 개업했기 때문에 혼밥 손님을 타박하는 법도 없었다. 

음식을 담아 식탁에 앉았는데 한 사내가 지나갔다. 둥그런 접시 위에는 잡채와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볶음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오른손에 든 휴대폰 액정에만 집중한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바람막이 점퍼에, 몸에 달라붙는 기능성 스포츠웨어 바지 차림이었다. 작은 가방을 사선으로 걸쳐 메고 다이얼 끈 조절 방식의 메이커 워킹화를 신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리송했으나 다시 한번 사내가 음식을 가져갔을 때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소고기뭇국과 보리밥을 담은 두 개의 작은 그릇을 왼손 엄지와 검지 집게로 맞잡고 있어서 국물이 넘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반면 오른손은 스마트폰을 고이 받쳐 들고 있었다. 시선 역시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었다. 눈치가 이상했는지 사내가 힐끗 쳐다보았다. 

"이 시간에 대리기사가 웬일이지?" 

강경식이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듯 김수남에게로 눈을 돌렸다. 

"누구 말하는 거예요?" 

"내 뒤에 앉은 남자 말이야. 대리기사가 틀림없는데……." 

"저 사람이 대리기사인 걸 어떻게 알아요?" 

"대리기사끼리는 쉽게 상대방을 알아보거든. 옷차림이나 뒤통수만 봐도 말이야."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나도 밤마다 운동 삼아 대리운전을 조금씩 하고 있거든."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보통 전업 대리기사는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므로 낮 12시는 신새벽일 가능성이 높다. 아르바이트 기사라면 직장에 있을 시각이었다. 벌써 주간 콜을 탄 것일까? 아니면 일찌감치 점심 먹고 장거리 콜이라도 노리려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등 뒤에서 딩동, 하고 대리운전 앱 리플래시 효과음이 들렸다. 사내의 스마트폰에서 난 소리였다. 

"희한하게 길에서 스치기만 해도 그가 대리기사인지 아닌지 구분되더라구.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대리기사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닌데." 

"하, 혓바닥 더럽게 기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잖아요." 

"대리기사들이 콜을 받으면 전속력으로 걸어가니까 그럴 수도 있는데. 길거리에 앉아서 쉬다가 보면 옆 사람이 대리기사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어. 어떤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대리기사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느냐니까요?" 

"감이 있다니까. 냄새가 난다고! 나도 콜을 잡아야 하고, 상대방도 같은 상황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 서로를 알아보게 되더라고. 자꾸만 신경이 쓰여. 내색은 안 해도 서로 경계하면서 콜 경쟁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 순간 강경식이 하, 하고 탄성을 질렀다. 특유의 편집광적인 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주변 손님들의 시선을 싹쓸이해버릴 만큼 큰 소리였다. 

"그거였어. 관심사가 같은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조중연.

조중연

2008년 계간『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탐라의 사생활』,『사월꽃비』가 있다.

kalito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