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톡커] 기름난에 항공사들 절규, 빚 내거나 망하거나
“항공유 부족 사상 최악...아시아 가장 취약”
“복구까지 최대 2년”...유럽 이미 노선 감축
전쟁으로 74조원 원유 증발...러만 반사이익
美서도 파산 위기, 실적 전망 포기, 합병 시도
종전 뒤에도 당분간 고유가...물류대란 불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특히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권 항공사들의 타격이 가장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권은 벌써부터 노선을 줄이기 시작했다. 나아가 미국 항공사들도 파산설에 휩싸여 실적 전망을 포기하고 정부에 손을 내밀거나, 합종연횡을 노리는 등 심상찮은 위기 신호를 발신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당장 종전 합의를 하더라도 유가가 쉽게 내려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만큼 항공주들의 주가도 한동안 부진할 공산이 커졌다. 나아가 원유 공급난 상황이 심각해질 경우 글로벌 물류대란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월시 사무총장은 또 항공유 공급 부족 위험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아시아를 꼽았다. 이어 아프리카, 유럽 순으로 위험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날 로이터통신도 소득이 낮고 수입 항공유 의존도가 높은 베트남, 미얀마, 파키스탄 등의 항공 업계가 중국, 태국, 한국보다 항공유 수출량 축소로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짚었다.
같은 행사에서 차이 앰시리 타이항공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유가 충격이 내 40여 년 항공 업계 경력에서 최악”이라며 “모든 공급 시설, 정유 시설, 기반 시설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사루딘 바카르 말레이시아 항공 CEO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가격이 안정되기까지는 몇 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이달초 유럽의 항공유 가격은 전쟁 직전 1톤당 800달러대에서 1838달러로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운 데이터 제공업체 보텍사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전쟁 전 호르무즈 해협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유럽행 항공유 운반선이 지난 6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10일 영국 BBC·가디언 등에 따르면 국제공항협의회(ACI) 유럽지부의 올리비에 얀코벡 사무총장 역시 최근 유럽연합(EU) 에너지·관광 담당 집행위원들에게 서한을 보내고 “3주 안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안정적 방식으로 재개되지 않을 경우 구조적인 항공유 부족 사태가 EU에서 현실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얀코벡 사무총장은 “항공유 부족 사태가 지역 내 공항 운영과 항공 연결성을 심각하게 교란할 것”이라며 “유럽 전반에 혹독한 경제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항공유 부족 사태를 더는 시장에만 맡겨 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EU가 항공유 공동 구매에 나서고 항공유 수입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정책적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은 북해 등에 유전은 있지만, 탄소중립 전환 시도와 환경 규제 강화로 정유 시설을 줄인 탓에 항공유 같은 석유 제품은 중동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항공유의 경우는 60% 이상을 걸프 지역(페르시아만)의 정유 시설에서 수입한다. 한국은 반대로 에너지는 대부분 수입하지만, 원유 가공·정제 산업의 발달로 석유 제품은 대량으로 수출한다. 대한석유협회(KP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약 684억 달러어치의 원유를 도입해 407억 달러 규모의 휘발유·항공유 등을 수출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모임인 OPEC+의 생산량은 하루 940만 배럴 감소한 4240만 배럴에 그쳤다. OPEC+가 아닌 나라들의 경우는 브라질과 미국의 생산 증가에도 카타르의 감산으로 하루 77만 배럴 줄어든 5470만 배럴에 머물렀다.
올해 세계 석유 수요도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8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달 보고서에서는 지난해보다 하루 64만 배럴 증가한다고 전망했다가 관측을 바꿨다. 특히 올 2분기의 글로벌 수요는 지난해 동기보다 하루 15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으로 연료 소비가 급감했던 2020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IEA는 “초기 수요 감소는 주로 중동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프타, 액화석유가스(LPG), 항공유에 대해 나타났지만 공급 부족과 높은 가격 지속으로 수요 파괴가 확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달 초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석유 제품 물동량은 하루 380만 배럴로 전쟁 전 2000만 배럴의 약 20% 수준에 그쳤다. 세계 석유 재고도 지난달 8500만 배럴 감소했다. 해협 폐쇄로 중동의 해상 재고는 1억 배럴, 육상 재고는 2000만 배럴이 더 늘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원유 선물 가격이 위기 상황을 모두 반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3월 러시아의 석유 수출은 중동 전쟁의 반사이익에 힘입어 금액 기준 190억 달러로 거의 두 배로 급증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앞서 지난달 12일 러시아산 원유의 판매를 30일간 승인했다. 이후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이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지난 18일 이 기간을 5월 16일까지 한 달 더 늘렸다
비롤 총장은 16일 AP통신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차단은 우리가 겪은 최대 규모의 에너지 위기”라며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을 열 수 없어 정유소 가동이 중단되면 유럽 내 항공편 일부가 항공유 부족으로 취소된다는 소식을 곧 듣게 될 것”이라며 “5월 말까지 호르무즈가 열리지 않는다면 경제가 취약한 국가를 시작으로 많은 나라가 높은 물가상승률, 성장 둔화, 경기 침체까지 엄청난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일본, 한국, 인도, 중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타격을 받는 최전선은 아시아 국가이고, 그 다음은 유럽과 미주”라며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면역력 있는 국가는 없다”고 강조했다.
비롤 총장은 현재 걸프 해역에서 대기 중인 유조선은 110여 척, LNG 운반선은 15척 이상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과정은 점진적일 것이고 최대 2년은 걸릴 것”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체계를 만들면 이를 적용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5억 배럴은 미국의 약 한 달 원유 수요, 유럽 전체의 한 달 이상 원유 수요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또 전 세계 글로벌 해운 산업이 약 4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연료량과 맞먹는 규모로 표현했다.
걸프 국가들은 지난달 하루 약 80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잃었다. 이는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엑손모빌과 셰브런의 생산량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바레인·오만의 항공유 수출은 2월 약 1960만 배럴에서 3~4월 약 410만 배럴로 급감했다. 뉴욕 JFK국제공항과 런던 히스로국제공항을 2만 번 왕복 운항할 수 있는 물량이 사라진 셈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유가 상승에 따라 항공사들의 항공편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항공유 가격은 120% 이상 상승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16일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와 네덜란드 항공사 KLM이 항공편 감축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루프트한자는 계열사인 시티라인이 보유한 항공기 27대 모두의 운항을 중단할 계획이다. 시티라인은 유럽 내 공항 간 비즈니스 항공편을 운영한다. 루프트한자는 또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국제선 항공기 6대를 최대 겨울까지 운항 계획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네덜란드 KLM은 내달 160편의 운항을 줄이기로 했다. 루프트한자의 틸 슈트라이헤르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정학적 불안전성과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운항 감축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14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연방 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한 뒤 첫 정책으로 유류세의 한시적 중단 정책을 꺼내들었다. 휘발유와 항공유에 부과되는 연방 소비세를 노동절인 9월 7일까지 중단하는 조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제트블루의 조안나 게라티 CEO도 20일 직원들의 동요를 차단하는 움직임에 나섰다. 앞서 14일 X(옛 트위터)·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제트블루의 창업자 데이비드 닐먼이 회사의 파산 가능성을 논의하는 회의 영상이 급속하게 퍼진 데 따른 조치였다. 게라티 CEO는 직원들에게 제트블루가 최근 항공기를 담보로 5억 달러를 대출받았고, 추가로 2억 5000만 달러를 빌릴 수 있는 여력도 있다고 알렸다.
알래스카항공은 20일 1분기 실적 발표 과정에서 연간 수익 전망치 제시를 거부하기도 했다. 2분기 손실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알래스카항공은 이날 실적발표회에서 “상황이 안정되고 이후의 실적을 더 잘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연간 전망치 제시를 중단한다”며 “연료가 단기 불확실성의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이들뿐 아니라 사우스웨스트항공을 포함한 다른 미국 항공사들도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고조되다 보니 미국 내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은 3위 항공사 아메리칸항공과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1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나이티드항공의 스콧 커비 CEO는 2월 25일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 재단장 계획을 논의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양사 합병안을 직접 제안했다. 이들은 델타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과 함께 미국 4대 항공사로 꼽히는 공룡 기업이다. 이들이 합병할 경우 단숨에 세계 최대 항공사가 될 수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운항 노선 기준으로 유나이티드와 아메리칸항공의 미국 국내선 좌석 수 점유율은 약 40%에 달한다.
커비 CEO는 2013~2016년 아메리칸항공의 사장을 맡았던 인물로 2016년부터 유나이티드항공을 이끌고 있다. 이번 합병 추진과 관련해서는 2016년 아메리칸항공에서 밀려날 당시 남은 감정적 앙금이 기폭제가 된 게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커비 CEO는 지난달 직원들에게 메모를 보내고 “고유가로 인한 업계의 구조조정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며 “잠재적인 인수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두 회사의 합병은 글로벌 반독점 규제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미국 내에서도 교통부와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메리칸항공은 17일 이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어떠한 관심도 없으며 논의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다”며 “유나이티드항공과 통합은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해군도 대(對)이란 해상 봉쇄를 뚫으려던 이란 화물선을 나포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란 항구와 해안 지역을 출입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지난 13일 해상봉쇄를 시작한 이래 27척의 선박이 회항하거나 이란 항구로 돌아갔다고 20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휴전 합의 때만 해도 그 기한이 21일까지라고 했다가 20일에 갑자기 시한이 22일 저녁이라고 말을 바꿨다. 협상 자체를 21일 시작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20일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5.64%, 뉴욕상품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6.87% 재급등해 95.48달러, 89.61달러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31일부터 13일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던 나스닥종합지수도 이날은 0.26% 하락했고 유나이티드항공(-2.84%), 아메리칸항공(-4.23%), 델타항공(-0.71%), 사우스웨스트항공(-2.06%), 알래스카항공(-4.10%), 제트블루(-2.04%), 스카이웨스트항공(-3.43%) 등 상당수 항공주는 그 이상으로 약세를 보였다.
항공 업계의 위기는 곧 글로벌 물류의 마비로 이어져 세계 경제에 크나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과 이란이 당장 뭔가 합의를 하더라도 유가를 완전히 원위치시킬 만한 조치를 끌어내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높다. 유가 상승의 연쇄 효과가 어디까지 가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느낄 부담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쟁 직전인 2월 27일 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67.02달러, 브렌트유는 71.32달러였다. 심지어 이조차 이란 위기 고조로 많이 상승한 가격이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 새 ‘500억→9000억’ 폭발…미국 주식 던진 개미들 ‘우르르’ 몰린 계좌는
- 靑 “李 대통령 집요함+韓 기업 역량”…‘한국-인도 달라진다’
- 저무는 연탄 시대…연탄값, 이르면 다음 달부터 ‘100원’ 인상
- ‘호박’ 팔아 무려 45억원 벌고서는 “세금은 못 내겠다”…법원 판단은
- AI 때문에 다 잘리는 줄 알았는데…“실제 사라지는 일자리는 10%뿐”
- 40% 급감한 디딤돌대출...투기수요 꺾었지만 실수요자 ‘발동동’
- 선물 투기꾼 배불리는 바닷길 기싸움 며칠까지
- “우리 아들 의대 보내기 참 힘드네요”…올해 의대 신입생 내신 합격선 ‘3년새 최고’
- 어쩐지 너무 오래 걸리더라…사람 항상 몰리는 인천공항, ‘신속성’ 평가 등급 떨어졌다
- “통장만 빌려주면 돈 줍니다” 혹했다간 피눈물…금감원, 가상계좌 사기 ‘주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