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착취하고 알면 해고하는 회사

키가 껑충 큰 샘(가명)은 상담실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의 입가에는 수줍은 웃음이 번졌다.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인 그는 한국어가 서툰 대신 영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동료 노무사에게 통역을 맡겼다. 샘은 며칠 전 홀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접수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회사쪽에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요구를 거듭하다가 해고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샘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난민인권센터에서 받은 노동법 교육 이야기로 말을 이었다. 그때 강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은 대목은 근로계약서의 중요성이다. 임금이 얼마인지, 근로시간은 몇 시간인지 등 노동조건을 문서로 남겨 두지 않으면, 분쟁이 생겼을 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걸 마음 깊이 새겼다. 샘은 이 회사에 입사한 첫날부터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회사쪽은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근로계약서는 3~4개월 후에 쓰는 거야."
그렇게 입사 17일째 되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12시간의 야간노동을 막 마치고 나와 녹초가 된 그를 회사 대표가 불렀다. 대표의 첫마디는 이랬다. "너 일하면서 직원들하고 화합이 잘 안 돼. 오늘까지 일하고, 어디 다른 일자리 알아봐. 알겠지?" 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표의 부인은 계산기를 꺼냈다. 샘이 흘린 17일간의 땀방울은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 끝에 차가운 숫자로 바뀌었다. "총 175만4천400원에서 이불값 7만원, 청소비 7만원, 방세 4만5천600원, 전기세 5천원 공제하고…"
샘은 회사 대표가 자신을 해고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근로계약서 작성 요구가 회사 대표의 비위를 건드렸을 거라는 짐작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샘이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던 '비닐하우스'가 고용노동부의 점검 이후 철거됐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어느 이주노동자의 신고가 발단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듭 요구하는 샘의 모습이 회사 대표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샘이 자신이 해고당한 과정을 담담히 들려주다가 꺼낸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They are afraid of my knowledge.(그들은 내가 아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아요.)" 회사 대표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뒤 사정을 고려하면 짐작은 어렵지 않다. 회사 대표는 기초 노동법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는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분란의 씨앗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하루빨리 샘을 내보내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으리라.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은 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이야기된다. 임금체불, 폭언, 열악한 숙소. 그러나 그 모든 부당한 대우의 밑바탕에는 차별과 이들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한국인도 아닌데 뭐 어때' '한국말이 서투니 잘 모를 거야' '미등록 상태이니 신고하지 못하겠지.' 이런 생각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만드는 뿌리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말한다. "이주노동자가 떠나온 본국보다는 그래도 한국의 노동조건이 훨씬 더 낫지 않나." 이 말이 맞다 치자. 그러면 문제 될 게 없나. 샘은 근로계약서 작성이라는 정당한 요구를 거듭하다가 해고됐다. 이주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모르면 착취하고 알면 해고하는 풍경은 정상이 아니다. 샘이 내게 말한 "They are afraid of my knowledge"라는 말을 한 개인의 푸념으로 치부할 순 없다. 이 말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겪는 부당한 현실을 찌르는 비수다. 그 비수가 향하는 곳은 샘을 해고한 회사만이 아니다. 이런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우리 모두다. 샘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한 개인의 권리 회복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동료'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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