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코이 교수 “제국의 쇠퇴가 늘 그랬듯이…불안정하고 허영심 넘치는 지도자가 미 패권 붕괴 앞당겨”

2010년 12월, 미국의 한 역사학자는 이후 두고두고 회자될 글을 남겼다. 그는 비영리 독립언론 매체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이 초강대국 지위를 잃는 시기를 당시 주류 견해였던 2050년보다 훨씬 빠른 2025년쯤으로 예측하면서 “정치적 환멸과 절망의 흐름을 타고, 우렁찬 수사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극우 애국주의자가 미국의 권위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군사적 보복이나 경제적 제재를 위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문제는 미국이 패권을 잃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 쇠퇴가 얼마나 급격하고 고통스러울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미국의 현재 모습을 정확히 예측한 듯한 이 글을 쓴 주인공은 앨프리드 매코이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석좌교수다. 제국의 부상과 쇠퇴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그는 지난 3월 대영제국의 무덤이 된 1956년 수에즈 운하 사태와 미·이란 전쟁이 초래한 호르무즈 해협 사태를 비교하면서, 둘 다 쇠락해 가는 제국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미시적 군사주의’(Micro-militarism)의 공통점을 보인다고 분석해 주목을 받았다.
매코이 교수는 지난 15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역사를 돌아보면 제국의 쇠퇴는 감정적·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일으키는 군사 작전의 실패로 가속화되곤 했다”며 미·이란이 합의해 전쟁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앨프리드 매코이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 역사학 석좌교수는 근·현대 제국의 역사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해 온 권위자다. 1977년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여 온 비밀 작전,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감시와 사찰, 마약 카르텔과의 유착 등을 연구했다. 그의 저서 <고문의 문제: CIA 심문, 냉전 시대부터 테러와의 전쟁까지>는 2008년 오스카상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한 영화 <택시 투 더 다크 사이드>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미국의 패권 붕괴에 대해 전망한 저서 <미국 세기의 그림자 속에서>는 국내에도 <대전환>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그의 부친이 직접 찍은 전쟁 당시 한국의 사진도 실려 있다. 그가 최근작 <5개 대륙의 냉전>에서 다룬 1956년 수에즈 운하 사태는 미국의 대이란 전쟁이 야기한 호르무즈 해협 사태와의 유사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 미국의 쇠퇴가 2025년쯤부터 시작될 수 있고, 극우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출현할 것이란 예측을 16년 전에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4개 대륙 역사학자 140명이 참여한 ‘전환기의 제국들’이란 프로젝트를 이끌며 수많은 제국의 부상과 쇠퇴를 연구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지만 동시에 가장 연구가 덜 된 제국이다. 냉전 기간 소련과 중국,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국을 ‘제국주의’라 비판했다. 이 때문에 미국 학자들에게 제국 연구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나는 당시 미국의 패권을 이해하기 위해 제국의 패러다임을 적용했고, 그 결과 패권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다만 당시엔 부족해 보였던 것 중 하나가 대안 세력 혹은 도전 세력이었는데,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2014년 4조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등 패권에 도전할 경제적 역량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보다 명확해졌다. 그때 나는 도발적으로 들릴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의 패권 쇠퇴 시나리오 중 하나로 ‘세계가 미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결국 미 제국은 조용히 막을 내릴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후 벌어진 여러 일이 그 예측의 타당성을 확인해 줬다고 생각한다.”
- 제국 쇠퇴의 징후이자 실제 원인으로 꼽은 ‘미시적 군사주의’에 대해 설명해달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도 이에 해당하는가.
“미시적 군사주의는 고대 아테네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소련에 이르기까지 쇠퇴하는 제국들이 빛바랜 영광을 되찾기 위해 종종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군사력을 동원했던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제국 권력 쇠퇴의 가속화로 이어졌다. 1956년 영국의 수에즈 운하 개입이 그러한 사례였다. 당시 인도를 잃은 대영제국은 영향력이 중동 지역에 국한된 상태였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분노한 영국은 프랑스와 공모해 6척의 항공모함으로 이집트 군사력을 사실상 궤멸시켰다. 그때 이집트는 매우 단순하지만 탁월한 지정학적 묘수를 뒀다. 돌을 가득 채운 낡은 유조선으로 수에즈 운하를 봉쇄해 유럽의 페르시아만 원유 생명선을 끊어버린 것이다. 파운드화가 붕괴 직전에 몰리자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대영제국의 위엄은 순식간에 증발했고, 이후 완전히 해체되는 길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에서 하고 있는 일은 당시와 충격적일 정도로 유사하다. 미국은 군사적 대승을 거뒀지만, 이란은 돌 대신 2만달러짜리 샤헤드 드론을 사용해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막았다.”

- 트럼프는 당신이 예측했던 극우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특성과 일치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한 그가 미시적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제국 권력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미시적 군사 작전은 하나같이 자신이 특별한 사명을 갖고 있다고 믿는 불안정하고 허영심 넘치는 지도자에 의해 이뤄졌다. 기원전 414년 시라쿠사를 공격한 아테네의 니키아스부터 1578년 모로코를 침공한 포르투갈의 젊은 국왕 세바스티앙, 1920년 모로코 정복에 나선 스페인의 알폰소 13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 1956년 이집트를 공격한 앤서니 이든 영국 총리도 당시 영국 외무부로부터 감정적으로 불안정하단 평가를 받았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그에게 ‘제정신이냐’고 묻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취임사에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사명을 위해 신이 (암살 위험에서) 자신을 구해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특유의 성격과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자의식이 이 재앙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과 전쟁을 벌이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는 알폰소 13세처럼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누구도 이 터무니없는 계획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뽐냈으나, 동시에 요격미사일 재고 부족과 비대칭적 공격에 취약함을 드러냈다. 미국의 패권 유지에 군사력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미국은 전술적으로 여전히 우월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세계 주요 지역을 지배할 능력을 상실했다. 냉전 기간에는 세 개의 함대와 동맹국에 있는 수백 개의 공군 기지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포위하는 성공적인 지정학적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은 ‘철의 장막’ 뒤에 있는 공산국가를 봉쇄했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려 할 때 한국과 베트남에서 두 차례의 재래식 전쟁을 치렀다. 소련이 ‘미시적 군사주의’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도 미국은 중앙정보국(CIA) 작전으로 소련군의 패배를 유도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요격 미사일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한국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 일부를 반출해야 했다. 이는 미국이 본질적으로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란과 같은 3등급(제한적) 강국을 상대로 한 작전은 감당할 수 있지만, 두 개의 중간 규모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거나, 어쩌면 중국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 한 대규모 작전은 한 개도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아마 산업 스파이 활동을 통해 미국이 보유한 요격 미사일 수를 매우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미국이 한 발씩 발사할 때마다 숫자를 세고 있을 것이다.”

- 이번 전쟁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동맹 중 아무도 미국과 함께 싸우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80년간 단독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물론 일본, 한국, 필리핀, 호주 등과 맺은 일련의 양자 협약들이 미국 지정학 권력의 근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위대한 연합 전쟁이었고 한국전쟁은 20개국 이상의 동맹들이 병력과 군수 물자를 제공했다. 베트남 전쟁 때는 한국도 5만 명의 한국군을 파병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많은 동맹국이 참전했다. 미국은 항상 동맹과 신중하게 사전 협의를 하고, 그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정보 공유, 기지 접근권, 경제·병력 지원을 받기 위해선 동맹의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선 동맹 중 단 한 나라도 미국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는 동지와 적을 가리지 않고 강압적 전술을 구사한 트럼프 외교정책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는 오랜 무역 파트너들에게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80년에 걸쳐 구축한 미국의 동맹 자산을 함부로 훼손했다. 그 결과 동맹들은 자신들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음에도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이는 미국 리더십의 소멸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심지어 북반구 농부들에게 비료가 공급돼야 할 봄 파종 시기에 호르무즈 해협을 위험에 빠뜨려 세계 식량 공급을 차단했다. 그 극도로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중국이 훨씬 안정된 세계 강국처럼 보일 정도다.”
- 당신은 패권의 전환이 늘 새로운 에너지 혁명과 함께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석 에너지 회귀 역시 미국의 영향력 쇠퇴에 일조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500년을 돌이켜보면, 새로 부상하는 모든 제국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혁명을 주도함으로써 권력을 얻었다. 이베리아 제국은 대서양 노예무역과 플랜테이션 시스템을 발명했는데, 이는 인체의 칼로리 출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들은 아프리카 노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근대 초기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다음 강대국인 네덜란드는 풍력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적은 선원으로도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플류트 선박을 개발해 인도네시아부터 미국 맨해튼 섬까지 누비고 다니며 글로벌 제국을 건설했다. 이후 대영제국은 석탄 에너지로 산업혁명을 주도했으며, 그 뒤를 이은 미국은 석탄에서 석유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그리고 현재 대체 에너지 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중국이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녹색 에너지 혁명을 위해 1조달러 규모의 이니셔티브를 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모두 폐기했다. 이는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사실상 경제적 자살행위다. 미국에 남은 마지막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까지 (전기차 경쟁에서) 도태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태양광 에너지는 가장 싼 화석연료보다 40%가량 저렴하며 기술 혁신은 앞으로 그 격차를 더욱 벌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 모든 측면의 생산 비용을 높이는 낡은 에너지 인프라에 계속 묶여 있게 될 것이다.”
- 미국의 패권이 없는 세상은 그 이전보다 나은 세상인가, 위험한 세상인가.
“미국의 패권 행사에 과잉과 위선이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미국이 운영한 제국은 이전의 식민 제국과 달랐다. 미국은 모든 국민이 자신의 국가를 가져야 하며, 그 국가는 불가침 주권을 지녀야 한다는 국제 체제를 구축했다. 또 빈곤과 질병을 완화하기 위해 유엔 기구와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해외 원조를 이끌었다. 우리는 (미국 주도 질서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면) 미국의 패권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가 사라지면 다극 체제가 될 것인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글로벌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그러한 역량이 약화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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