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광장/이상언]우리도 애쉬 카터가 필요하다

이상언 제도혁신연구소 소장 2026. 4.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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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기술에 벽을 친 한국 군수 관행
미국은 일찍이 '신속 획득' 제도 가동
카터 전 장관 같은 개혁 리더가 앞장
전쟁 실패 이유는 늘 "너무 늦었다!"
이상언 동행미디어 시대 제도혁신연구소장
"도대체 어디에 얘기를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죠. 너무, 너무, 답답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인텔리빅스의 최은수 대표가 말했다. 사연은 이렇다. 이 회사는 업력 26년의 '관제 시스템' 설치 회사다. CCTV를 진화시키는 데 노력해왔다. 카메라 영상 속의 '이상 현상'을 인공지능(AI)이 인식해 관제 시스템에 경고 메시지를 띄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산업 현장과 주요 시설물의 위험을 CCTV로 파악해 관리자에게 바로 알려준다. 그리고 수년 전에 폭설, 폭우, 짙은 안개 속에서도 200m 이내의 사물을 식별해 영상으로 표출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 업체는 이런 기술이 국방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악천후에도 특이 징후를 포착하는 전방과 해안의 감시 장비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년 전부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아직도 문 턱 주변에 있다.
"어렵사리 군수 관계자를 만나 설명했더니 군 품목 분류 체계 때문에 일반 CCTV만 조달 가능하고 우리 것 같은 특수 장비는 항목 자체가 없다고 했어요." 최 대표 말이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죠." 이 회사는 '방산혁신기업 100'이라는 제도가 있음을 알게 됐다. 방위사업청이 2022년부터 올해까지 한 해 20개씩 총 100개의 방산 분야 혁신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4년에 여기에 지원했다. 온갖 서류를 갖춰서. 그러나 탈락했다. 그리고 지난해 재수를 해 성공했다. 인텔리빅스는 지난해 가을 '서울 국제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회사 부스에 방문해 설명을 듣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민간 기술을 군에 접목해 첨단산업을 이끄는 촉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 10월 서울 국제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인텔리빅스의 AI 카메라 기술에 대해 설명을 듣는 이재명 대통령. 오른쪽에 손을 든 사람이 이 회사의 최은수 대표./사진=인텔리빅스
인텔리빅스의 AI 카메라가 국군에 쓰일 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최 대표에 따르면 '방산혁신기업 100'에 선정된 뒤 군에서 수개월째 성능 테스트 중이다. 시험을 통과해도 갈 길이 멀다. 까다로운 군납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군 예산 확보도 필요하다. 부지하세월이다. 민간에는 AI 카메라가 장착된 사족보행 로봇이 순찰을 도는 곳이 있다. 세상과 군의 기술 적응 속도 차가 크다. 최 대표는 지난해 10월 국회의 한 토론회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한국 군 획득 시스템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2000년대 중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조폭발물(IED)에 의한 미군 사망자가 급증했다. 군용 차량 아래에서 IED가 터지는 사건이 속출했다. 당시 미 국방부 군수 담당 차관이었던 애쉬 카터는 험비의 하부에 V자(충격 분산용) 형태의 장갑을 부착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일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방법을 찾다가 이미 그런 구조의 차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뢰 제거 작업에 쓰인 것이었다. 카터는 그 차량을 만든 회사가 곧바로 미군에 납품할 수 있도록 국방부 장관(로버트 게이츠)에게 '긴급 조달' 명령을 내려달라고 했다. '관료주의적 절차가 장병들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없었다.' 카터의 회고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애쉬 카터의 제안에 따라 이라크 등에 보급된 지뢰방호장갑차(MRAP). 차량과 지면의 간격을 넓히고 아래에 V자 형태의 장갑을 장착했다./사진=미국 국방부
그때로부터 약 1년 뒤 '쿠거'라는 이름의 지뢰방호장갑차(MRAP)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에 공수되기 시작했다. 그 뒤 5년간 약 2만7000대가 보급됐다. 2022년 애쉬 카터가 62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는 MRAP 보급에 대해 '미군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달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언론들이 "미군 수천 명을 살린 영웅"이라고 그를 기렸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에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카터는 곧바로 실리콘밸리 인근의 스탠퍼드대로 갔다. 연설에서 '국방혁신실험단(DIUx)' 창설을 선언했다. 스타트업 신기술 탐색과 지원이 이 조직의 임무라고 말했다. DIUx 사무실을 아예 실리콘밸리에 뒀다. 이 조직의 첫 작품이 '공중급유 앱' 제작이었다. 수작업이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면서 급유 계획이 정밀해졌다. 한 해 수천억원의 비용이 절감됐다. 스타트업과 계약을 맺어 북한의 KN-08 탄도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위성 정찰 시스템도 마련했다. 초기 2년에만 약 50개의 민간 기술 활용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 과정은 최근 출간된 책 '실리콘밸리와 펜타곤의 비밀 전략실 유닛X'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개혁가 카터는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국방부가 서류의 속도에 갇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5년 11월 방한한 애쉬 카터 전 미국 국방부 장관./사진=뉴스1
동행미디어 시대가 주최한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포럼이 지난 16일 열렸다. 방산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 군 획득 시스템 개혁을 주문했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서 지는 이유를 단 두 단어로 요약했다. '너무 늦었다(Too late)!' 우리에겐 청의 기마술과 왜의 조총 같은 신기술에 강토를 유린당한 역사가 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죄가 산더미'라고 썼다. 지금 우리는 애쉬 카터처럼 틀을 깨는 혁신 리더가 몹시 필요하다.

이상언 제도혁신연구소 소장 selee@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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