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쓰레기 더미를 남겨둔 채 떠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최윤필 2026. 4. 2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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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어수선한 공간, 또 지하실처럼 넓은 공간부터 먼저 정리한 뒤 부엌과 책상 등 오래 머무는 친숙한 공간으로 순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행위가 되고, 자신과 서로의 죽음을 별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예비할 수 있게도 해준다.

"혹시 손주들을 못 만나게 되더라도 그 상자들을 남겨둠으로써 내 게으른(?) 아이들에게 내가 원한 바를 환기시킬 수도 있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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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 1933.12.31~2026.3.12)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세상을 떠나기 전 불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북유럽인들의 풍습 '데스테드닝(Döstädning), 즉 죽음청소(death Cleaning)'의 의미와 방법을 2017년 책으로 소개한 스웨덴 작가다. '현재의 나의 설렘'을 위한 일본 작가 곤도 마리에의 살림 정리법 '곤마리(KonMari)법'과 달리, 데스테드닝은 유족들이 감당해야 할 유품 정리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미니멀리즘 살림 정리 행위다. 망누손은 그 행위가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계기일 뿐 아니라 노년의 삶을 새롭고 풍성하게 재편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고 책에 썼다. selmastories.se

데스테드닝(되스테드닝, döstädning)’은 ‘죽음청소(Death Cleaning)’란 의미의 스웨덴어다. 동사 ‘죽다’의 어근 ‘데(dö)’와 청소·정리를 뜻하는 ‘스테드닝(städning)’의 합성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 불필요한 것들을 처분하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는 일.” 북유럽 여성 노인들에겐 그리 새로울 게 없다는 저 관습과 용어를 우리는 2017년 스웨덴의 한 무명 여성 작가가 쓴 책으로 배웠다.
그 작가가 당시 만 84세의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이고, 그 책이 아담한 문고본 ‘죽음청소: 슬프지 않은 이야기(Döstädning: Ingen sorglig historia 2017)’이다.(한국어판 제목은 ‘내가 내일 죽는다면: 삶을 정돈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 데스클리닝’이다.)
자신이 데스클리닝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의미, 요령 등을 담담하고도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그 책은 단숨에 유럽과 북미, 아시아 32개국에 번역 출간되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리얼리티 TV 시리즈로도 제작됐다. 2019년 영국 ‘콜린스(Collins) 딕셔너리’는 ‘데스테드닝’을 신조어로 등재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실존적 사건이자 과정으로서의 죽음을, 형이상학이 아닌 일상적 노동(사후 정리)과 사랑·배려의 관점에서 사유·수용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한 그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5남매를 모두 키워 독립시킨 뒤 남다를 것 없이 조용히 노년의 시간을 보내던 80대의 그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게 한 건 딸 야네(Jane)였다.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휴가를 내야 한다는 미국 뉴욕 친구의 푸념 어린 말에 야네가 자긴 그럴 일이 없다고, 어머니가 일찌감치 시작한 ‘데스테드닝’ 덕분이라고 했던 것. 출판사에 다니던 친구는 그 자리에서 책 출간을 제안했고, 딸의 전언에 응해 망누손이 단 석 달 만에 썼다는 게 그 책이었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산부인과 의사·간호사 부부의 딸로 태어난 망누손은 56년 스톡홀름의 베크만스(Beckmans) 디자인 칼리지를 졸업한 뒤 약 1년간 회사를 다니다 57년 산업 장비 제조·수출업체(ESAB)에서 일하던 남자(Lars Magnusson)와 결혼, 5남매를 낳았다. 아이들을 키운 뒤 다시 그림을 시작해 79년 예테보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고, 사이사이 남편 직장을 따라 5차례 해외 이주 등 평생 17차례 이사를 다녀야 했다. 이삿짐을 싸고 추리고 정리하는 데는 이골이 난 셈이었다.
1969년 여읜 어머니와 얼마 뒤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 2005년 사별한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도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독신이 된 그는 집을 줄여 이사하느라 또 살림을 줄여야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고 한다. “어차피 나도 언젠가 죽을 텐데, 내가 떠난 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힘들게 치워야 할 ‘쓰레기 더미’를 남겨둘 이유가 있을까.
그는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락과 지하실, 서랍장 속 잊힌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더러 추억도 하면서 버릴지 남겨둘지 따져보는 시간. “나는 자문해보곤 했다. 내가 이 물건을 남겨둬서 누군가가 조금이나마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 시간과 노동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이자 죽음 이후 그 공간에 있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시간을 사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물건이 그들에게도 유용할까?” “내게 감정적인 뭔가를 들려주는 물건인가” “그 감정의 가치는 나만의 것일까, 남겨진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등등. 그렇게 망누손은 자신의 공간을 비워갔다고 한다.

미국 유명 코미디언 겸 프로듀서 에이미 폴러가 망누손의 '데스테드닝'을 테마로 제작해 2023년 4월 스트리밍 플랫폼 '피코크(Peacock)'를 통해 방영한 8부작 리얼리티 시리즈 '스웨덴식 정리정돈의 기술' 스틸 사진. 세 명의 스웨덴인 '데스클리너(정리, 인테리어, 심리)'와 함께 의뢰인의 죽음 청소를 돕는 과정을 담은 그 프로그램은 그해 10월 스웨덴 공영방송 SVT로 역수출되기도 했다. svtplay.se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을 임상적 사건이 아니라 모든 현존재의 존재 방식으로 사유하며,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 정의했다. 그에게 죽음은 사회적 지위나 관계 등 거추장스러운 외피를 벗고 철저히 혼자(단독성) 대면해야 하는 실존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불가역성, 즉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경험으로 사유하고 인식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죽음에 대한 생각은 형이상학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기 쉽다. 인간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끝 모를 형이상학적 사유와 상상을 통해 병적으로 증폭되거나 가까스로 무마될 뿐이다. 물론 대개는 언젠가 맞닥뜨릴 그 사건·과정을 편의적으로 외면하며 산다.
망누손의 죽음청소는 저 어려운 실존적·형이상학적 미로를 유쾌하리만치 가볍게 우회하면서, 죽음-이후의 사건-과정을 이삿짐 정리와 같은 일상의 문제와 연결 지었다.

그는 가장 어수선한 공간, 또 지하실처럼 넓은 공간부터 먼저 정리한 뒤 부엌과 책상 등 오래 머무는 친숙한 공간으로 순서를 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감정적 동요가 클 수 있는 물건들, 예컨대 편지나 사진, 오래된 메모 등은 후순위로 밀쳐두라고도 했다.
각자 진행하는 죽음청소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리고 때로는 초대하는 것도 좋다고 권했다. 처분할 책과 가재도구 등을 한편에 모아두고 지인들에게 가지고 싶은 게 있는지 둘러보게 하라는 거였다. 어떤 물건이 어떻게 자신에게 왔고, 또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들려줄 수도 있고, 무거운 물건들을 함께 옮길 수도 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의 일부를 사랑하는 이들과 공유하는 행위가 되고, 자신과 서로의 죽음을 별 두려움 없이 생각하고 예비할 수 있게도 해준다. 그 시간 자체가 또 누군가에겐 값지고 애틋한 추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 이전 세대 여성들에겐 정서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익숙한 데스테드닝이란 행위에 세상이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여자들의 일은 주요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이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딸 야네도 한 인터뷰에서 “주로 부부 중 남편이 먼저 떠나기 때문에 유품 정리는 여성의 몫이기 쉽고, 나이 든 여성의 노동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저 행위들이 데스테드닝이라는 관습과 개념적 용어로 정립된 데는 북유럽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그들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북유럽 작가 욘 포세(‘아침 그리고 저녁’)나 프로데 그뤼텐(‘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이 여러 차례 글로 형상화한, 피오르 해안의 안개처럼 순하게 일상에 스미는 죽음의 이미지들. 스칸디나비아의 격렬한 바다와 모진 바람처럼 격렬하고도 비통했을 죽음의 다양한 양상에 대한 역설적 순응.
거친 조류와 변덕스러운 와류들이 곳곳에서 소용돌이친다는 피오르의 바다는 전근대의 어부와 그 가족들에겐 언제나 준 만큼 되가져가는 야멸찬 바다였다. 구불구불 아득히 솟은 해안 절벽들이 만들어내는 돌풍과 순식간에 체온을 앗아가는 바닷물의 냉기는 작은 목선의 어부들에겐 늘 죽음의 공포를 환기시켰을 것이고, 그 위협적인 환경 속에서 그들은 삶·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죽음·공포와 동거하며 순응하는 지혜와 관습을 길러야 했을 것이다. 옛 바이킹의 지혜서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명예로운 죽음’의 이면에 놓인 ‘비겁함·약함’에 대한 경계와 공동체에게 짐이 돼서는 안 된다는 순도 높은 책임·윤리의식이 또 ‘에테스투파(Ättestupa, 친족의 낭떠러지)’의 설화, 즉 절벽에서 스스로 투신하는 노인들의 자살·장례 설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들은 장남의 지게에 얹혀 ‘나라야마’의 후미진 골짜기로 보내졌다는 일본 작가 후카사와 시치로의 소설(‘나라야마 부시코’)과 동명의 영화 속 설화와 달리, 또 한국의 '고려장' 설화와 달리, 제 발로 벼랑 끝으로 나아갔다.
죽음청소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 '선제적 정리(Advanced Cleaning)'나 '생애 편집(Life Editing)' 등의 용어로 대체하자고 제안했지만, 썩 호응을 얻지 못한 까닭도 어쩌면 저런 맥락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생전에 자기 것들을 정리하는 에피소드는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928~1906)의 시적인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 1867)’에도 우화처럼 등장한다. ‘진정한 자아(be thyself)’를 찾는답시고 세상을 떠돌며 거짓과 환상으로 삶·욕망을 채우던 난봉꾼 페르는 노년의 귀향길에 폭풍을 만나 난파되면서 빈털터리로 해안에 표착한다. 그는 젊은 날 자신이 농락했던 한 여성의 장례식장에서 제가 가진 모든 걸 경매에 내놓는다. 빈털터리인 그가 팔고자 했던 건 전설 속의 궁전과 왕관 등 욕망의 껍데기들뿐이다. 페르의 ‘데스테드닝’은 조롱의 촌극으로 끝을 맺지만, 적어도 그에겐 헛된 삶을 정화하기 위한 일종의 자아 청소였을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절망한 그를 구원하는 것도 충직한 옛 연인 솔베이지, 즉 여성이었다.

망누손의 '데스테드닝'은 영원한 여행을 앞둔 고령자들, 아니 노소의 모든 사람이 언제일지 모를 각자의 순간을 앞두고 허둥지둥 여행가방을 싸는 일을 피하자는 조언이기도 할 것이다. 고령화가 심화하고 고독사가 빈발하면서 유품 정리업이라는 새로운 업종도 생겨났다. 50plus.or.kr

데스테드닝은 생전에 수의를 장만하는 한국의 노년 풍습과도 동기나 지향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족의 부담 일부를 덜어주는 면이 있긴 해도, 그건 수의를 미리 준비하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기반한 풍습이다. 즉 전자가 죽음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라면 후자는 죽음과의 대면을 회피·지연시키기 위한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에 가깝다. 독일 에를랑겐 뉘른베르크대 연구팀이 노인 다수를 대상으로 장기간 추적 조사한 바, 매사에 비관적이고 건강 등에 걱정이 많은 노인들이 미래를 낙관하는 노인들보다 장애를 겪거나 사망할 위험이 덜하더라는 게 방어적 비관주의의 요지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동반하기 쉬운 패배주의적 비관주의와 달리 방어적 비관주의는 건강에 대한 경계심과 위험 회피 행동, 예상치 못한 불행 등에 심리적으로 대비함으로써 위험과 스트레스 등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방어적 비관주의는 일종의 전략적 불안 통제 메커니즘이다.

망누손은 책 서문 제목을 ‘절대 슬프지 않은 작업, 데스클리닝’이라 달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그 과정이 신나고 흥미로운 과정이 되길 바라며, 또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데스테드닝은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그걸로 주변을 잘 정돈하면 훨씬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과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경험-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면 당신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삶과 경험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도 빠르게 흘러 “마치 아침 식사 시간이 15분마다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데스테드닝도, 처음엔 힘들지 몰라도, 습관이 되면 일상의 리듬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살다 보면 또 새로운 물건이 생길 수도 있고, 앞서 남겨뒀던 물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역시 데스테드닝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고 한다. “여전히 나는 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신도 결코 완벽한 데스테드닝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유년 시절 모은 조개껍데기 컬렉션은 간직했고, 이제는 어른이 된 자녀들의 유년기 옷들은 대부분 버렸다고 한다. 다만 자기 어머니가 손수 지어준 옷들은 혹시 손자·손녀들에게 입힐 수 있을지 몰라 간직했다. “혹시 손주들을 못 만나게 되더라도 그 상자들을 남겨둠으로써 내 게으른(?) 아이들에게 내가 원한 바를 환기시킬 수도 있겠기 때문”이었다. 그는 5남매에게서 7명의 손주를 얻었다.

만 84세의 망누손은 2017년 저 책(왼쪽)으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오른쪽은 한국어판 책 표지. albertbonniersforlag.se, yes24.com

데스테드닝으로 “정신적 육체적 짐”을 덜어낸 그는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젊은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나이 듦의 과정의 경이와 슬픔”에 대한 단상을 기록해 두 번째 책 ‘당신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주는 삶의 조언(Levnadsråd från någon som troligtvis kommer dö före dig, 2022)'을 출간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다.)
‘왓츠앱’ 같은 “놀랍고도 재미있는 기술”에 대한 노년의 바람직한 태도에서부터 지구(환경)와 미래(세대)에 대한 상념, 머리카락과 주름 관리, 손주 대하기 등등.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간식인 초콜릿에 대한 챕터 ‘초콜릿은 언제나 옳다’에 그는 이렇게 썼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영원히 살 것처럼 초콜릿 바를 먹겠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해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는 내 결정이 초콜릿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 것 같다. (…초콜릿 바를 먹을 때마다 재채기가 나오는 거였다. …) 하지만 재채기를 멈추자마자 나는 바로 한 입을 더 먹는다. 내 나이쯤 되면 가끔 이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만일 당신이 폭삭 늙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고, 또 젊은 소녀처럼 보이는 것도 쑥스럽다면 줄무늬 티셔츠가 멋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 무늬가 당신을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꽤 활기차고 조금은 스포티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예테보리의 한 요양시설에서 별세했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 “80세에서 100세 사이”라고 유쾌하게 응수하던 탓인지, 스웨덴과 유럽 매체들은 그를 33년생이라고 소개했고, 뉴욕타임스는 34년생으로 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다고 부고에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첫 책 말미에 그는 “데스테드닝을 얼추 마치고도(…) 곧장 죽지 않으면 다시 쇼핑을 나갈 생각”이라고 썼다. 딸 야네는 “다락방에도 지하실에도 어머니가 남긴 게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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