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산행기 ] 부부 애정으로 산을 오른 것이 아닌, 서로의 인생을 올랐다.
남덕유산의 강풍 : 50대 부부가 등산 포기하고 하산
[<사람과 산> 이용석, 이영숙 독자 ] 정상 약 500m를 앞둔 구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암릉 구간으로, 바람이 더욱 거세져 균형을 잡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때, 제 앞에 가던 50대 부부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산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으세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입니다!"
간곡히 등정을 권유했지만, 부부는 안전상의 이유로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잠시 망설였으나, 이 거친 바람 속에서 정상에 서고 싶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습니다.
철계단을 오르는 순간순간, 몸이 바람에 밀려 휘청거렸지만, 난간을 꽉 붙잡고 한 발 한 발 끈기 있게 전진했습니다.
마침내 남덕유산 정상(1,507m)에 섰습니다. 정상석 주변의 칼바람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백두대간의 파노라마는 모든 고통을 잊게 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6시간 30분 동안의 산행 중 산행을 포기한 부부를 제외하고 단 1명의 산우만 조우하였습니다.
산은 때로 위대한 용기를 요구합니다. 영동 천태산의 약 30m 높이 암벽길은 남자 산우들조차 회피하는 험난한 코스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주저하지 않고 "한 번 도전해 보겠다"라며 로프를 움켜쥐었습니다. 땀방울이 빛나는 얼굴, 거친 숨결 속에서도 아내는 흔들림 없이 암벽 끝까지 올라섰습니다.
그 순간, 저는 산을 오르는 아내의 모습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강인하고 아름다운 '산악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벅찬 감동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지만, 아내의 빛나는 투지는 제 가슴속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팔봉산 해산굴의 격려 : 가장 좁은 통로에서 찾은 유대
홍천 팔봉산의 하이라이트인 해산굴(狹山窟)은 한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기어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좁은 암굴이었습니다. 좁은 통로를 통과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아', '조금만 더 힘내' 라고 격려했습니다. 그 순간의 따뜻한 격려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으며, 우리 부부가 어떤 좁고 힘든 길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천주산의 눈물 : 가장 아팠던 순간
모든 산행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었습니다. 창원 천주산 하산 종료 직전, 불과 5m를 남기고 아내에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습니 다. 자갈길 미끄러짐으로 왼쪽 손목에 금과 인대 파손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산이 준 고통이자, 저희 부부에게 강제된 1년 6개월의 길고 고통스러운 쉼표였습니다. 산을 향한 열정이 잠시 멈추었지만, 이 시간은 우리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는 재활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사고는 산을 더욱 경외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재기에 성공한 후 다시 산을 찾았을 때, 저희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계방산에서 만난 맨발 스리퍼의 산우를 향한 안타까움
계방산 마지막 눈꽃 산행 중,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도 추운데 어떤 40대 남자 산우가 맨발 슬리퍼로 등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등산화를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안타까웠지만, 하산 중이라 임시 조치를 해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동상은 안 걸렸는지?" 지금도 걱정되는 마음은, 산을 오르는 모든 이들에 대한 저희의 깊은 애정을 반영합니다.
독도 입도의 황홀함
산행을 통해 저희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들을 넘어, 우리 영토의 끝까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울릉도 성인봉 정상 산행을 마치고, 날씨 관계로 이틀 후에 독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독도 입도는 그 자체로 벅찬 전율이었습니다.
"독도야! 내가 왔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독도에 서자 "내가 지금 조국의 최동단에 있다"라는 벅찬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이 땅을 지켜온 선조들과 현재 독도를 수호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아!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독도여! 영원하라!"
울릉도에서 후포항까지 파도가 높아 멀미로 몸은 천근만근 괴로웠지만, 독도에서 느낀 민족적 자긍심은 모든 고통을 상쇄시키고도 남았습니다.

산악인으로서의 헌신은 단순한 등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대암산 정상에 인증 표지석이나 표지목 등 아무런 표지가 없어 휴지로 글자를 만들어 붙인 후 인증사진을 찍었던 경험은 저희에게 큰 안타까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몇 개월 전 다른 산우의 산행기에도 표지가 없었다는 기록을 보고, "지금까지도 설치를 안 했다니!"라는 마음에 양구군 홈페이지 '양구군수에게 바란다'에 정식으로 표지석 설치를 요청하는 건의를 올렸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산을 가꾸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인증지는 마대산이었습니다. 특히 존경하는 김삿갓의 주거지이자 묘가 있는, 저의 예명(이삿갓)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마대산에서 마지막 인증을 하였습니다.
2024년 5월 18일, 마대산 정상. 세속의 무게를 벗고, 마음의 산맥 위에 섰던 그날 산이 우리 부부를 품었고, 부부는 산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100대 명산 그랜드 슬램'을 부부동반으로 등정한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서로를 마주보며 흘린 땀과 고통, 그리고 1년 6개월의 쉼표까지 포함된, 그 모든 여정의 보상이었습니다.
백두산, 민족의 영산에서 완성된 150개봉
149개봉 등정의 영광을 뒤로하고, 저희는 최종 150개봉의 목표,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했습니다. 백두산은 단순한 봉우리가 아닌, 우리 민족의 시원과 웅장한 기상이 담긴 성지였기에, 이 곳에서의 등정은 역사적 의미가 컸습니다. 2024년 8월 12일, 첫날 도전한 서파 코스는 1,442개의 계단만큼이나 혹독한 시련을 안겼습니다. 정상 5호 경계비 앞에 섰지만, 짙은 안개는 천지의 푸른 물빛을 단 한 순간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대산에서의 비처럼, 백두의 신령은 끈기를 시험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8월 13일 북파 코스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천문봉 조망대에 서자 눈앞에 펼쳐진 천지(天池) 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푸른 비취색 물빛이 화산 절벽에 둘러싸여 영롱하게 빛나는 광경은, 지난 모든 고생을 한 순간에 씻어주었습니다.
"그 감동과 감격은 이루 말로 다하지 못 한다"는 고백처럼, 우리 민족의 영산에서 이용석, 이영숙 부부가 함께 150개봉의 인증 사진을 찍는 순간, 그랜드슬램은 마침내 마무리 었습니다. 백두산 산행은 일반적인 산행을 넘어선 역사적, 민족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150개봉 등정을 백두산에서 이룬 것에 대해 저희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산은 저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절정의 아름다움과 극한의 고통, 서로를 향한 믿음과 인내, 그리고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우리는 산을 통해 인내와 도전, 산처럼 굳건한 삶을 살기로 다짐합니다. 산이 준 고통까지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저희 부부는 하나의 산이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 두 발로 쓴 부부의 인생 지도
8여 년간의 발자국이 지도 위에 그려졌습니다. 지리산에서의 결심, 설악산의 시련, 남덕유산의 강풍, 그 모든 산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올랐습니다."
그 여정의 끝에는 정상석이 아닌,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두 사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 위로, 산의 바람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글과 사진 이용석, 이영숙 ㅣ 필자는 산림청과 <사람과산>이 선정한 한국 최초 '100대 명산'과 그를 아류로 여러 단체에서 선정한 소위 '100대명산'을 합하여 149개봉을 60대에 부부 동반으로 올라 금슬이 더욱 좋아졌다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절대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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