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나는 전능하다’는 망상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질 것이다.”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 말을 듣고 지난 1월 찾았던 그린란드국립박물관을 떠올렸다. 생후 6개월 남자아이를 비롯한 15세기 이누이트 미라 4구가 있었다. 미라를 일반 유물과 함께 전시하는 서구의 여느 박물관과 달리, 무덤(Iliveq)이라고 적힌 별도의 방으로 입장해야 했다. 인간의 신체엔 물건과는 다른 존엄이 깃들어 있다고 밝히는, 문명(文明)의 선언으로 들렸다. 당시 그린란드 침공을 위협하던 그 대통령은 3개월 뒤 이란 문명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전쟁을 ‘문명 파괴’로 규정하면 이제 미국은 어떻게 도덕적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느냐?” 미합중국 대통령이 문명 파괴자를 자처하는 모습에 경악하는 미국의 비명이었다. 세기말 할리우드가 묘사한 미 대통령들은 문명 수호자였다. 외계인 침공과 소행성 충돌을 맞닥뜨린 그들은 인류 문명 전체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졌다. “우리는 지금 멸망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인디펜던스 데이) “존엄과 인내로 끝까지 헤쳐나갑시다.”(아마겟돈) “우리의 행성, 우리의 집입니다.”(딥임팩트)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보여주는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수많은 사람의 생사여탈은 물론, 문명의 존속·멸망까지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미 대통령의 도취감은 그래서 과학적·논리적으로는 합당해 보인다.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에 빗댄 행위 역시 같은 선상에 있을 것이다. 레오 14세는 그 심리를 ‘전능하다는 망상(Delusion of omnipotence)’이라고 지적했다. 진영이 열광할수록 망상은 커진다. 백악관 부활절 행사에서 한 목사는 트럼프가 예수와 같은 고난을 당했다며 “배신당하고 체포됐고 누명을 쓰셨다”고 했다.
전능감의 스케일은 다르겠지만 수많은 자리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최근 심리도 비슷해 보인다. 글로벌 소셜미디어에서 홀로코스트 논쟁에 가세해 국제 이목을 단번에 끌었다. ‘계곡 철거’를 연상시키는 호통조의 화법, 특정 국가 사안에 눈을 감아 왔음에도 주장하는 ‘보편 인권’은 한국 대통령의 세계사 담론 데뷔 무대에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친여 진영에선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까지 동원해 대통령의 인권 감수성을 극찬했다. 백악관에서 울려 퍼진 ‘대통령 찬가’와 닮아 있었다.
“세상의 영광이 이처럼 덧없이 지나갑니다(Sic transit gloria mundi).” 과거 교황 대관식마다 낭독되던 이 문장은 권력자만을 향한 경고가 아니었을 것이다. 500년 전 숨을 거둔 아기를 전시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우하고, 전시실을 굳이 ‘무덤’이라 부르는 마음. 그 연약한 문명의 빛을, 망상에 빠진 권력자와 유한한 인간을 우상으로 섬기는 군중이 함께 끄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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