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우의 스톡피시] 외환은행이 키운 수재, 외환시장 구원투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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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한국외환은행이란 곳이 있었다.
1960년대 들어 경제 규모가 커지고 외환 업무도 늘어나자 정부는 1967년 한은 외환부를 확대 개편해 한국외환은행을 설립한다.
잘나가던 학자였던 신 총재가 한국의 정책라인으로 발탁된 과정도 외환은행과 관련이 있다.
외환은행에서 비롯된 한 세대의 경험이 한 경제학자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졌고, 그 문제의식의 시험대가 2026년 한국의 외환시장 위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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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관통하는 키워드는 '외환'
외환銀 행원 부친 따라 英유학
외환 관련 논문 학계 주목받아
금융위기때 건전성 규제 주도
원화값 1500원 위협받는 시대
위기 관리 능력 시험대에 올라

우리나라에 한국외환은행이란 곳이 있었다. 1967년에 만들어져 약 48년간 한국 외환업무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다가 2015년 하나은행에 흡수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은행이다. 외환은행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린 것은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 때문이다.
신현송이라는 사람의 이력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외환'이다. 시작은 그의 부친에게서 비롯된다. 신 총재 부친인 고 신철규 씨는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1957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엘리트 금융인이었다. 한은 입행 동기가 나웅배 전 부총리, 이경식· 김명호 전 한은 총재 등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쟁쟁한 멤버들이다. 이때 우리나라의 외환업무는 한은 '외환부'가 맡았다.
1960년대 들어 경제 규모가 커지고 외환 업무도 늘어나자 정부는 1967년 한은 외환부를 확대 개편해 한국외환은행을 설립한다. 신철규 씨는 이때 한은에서 외환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환은행은 설립 후 해외 지점을 본격적으로 늘렸다. 1968년 신철규 씨는 외환은행 런던 지점으로 발령이 나고 같은 시기 초등학생이었던 신 총재도 영국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니게 된다. 오늘날 신 총재를 세계적인 석학으로 만든 첫 단추는 그때 끼워졌다.
외환은행은 외환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면서도 조기유학이 무척 드물던 시절 아이들을 해외에서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던 몇 안 되는 기관이기도 했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은에서 외환은행으로 옮기길 희망한 사람들은 한은에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어느 정도 포기한 반면 아이 교육을 해외에서 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택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 총재는 한국 기준으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에서 공부했다. 유달리 똑똑했던 그는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영국 옥스퍼드대와 대학원 수석 장학생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학력을 자랑하며 글로벌 경제학계의 석학으로 발돋움했다.
신 총재를 스타로 만들어준 1998년 논문도 외환 문제에 대한 것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각국의 외환위기 발생 과정을 게임 이론적 방법론을 활용해 분석함으로써 경제학의 지평을 한층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잘나가던 학자였던 신 총재가 한국의 정책라인으로 발탁된 과정도 외환은행과 관련이 있다. 외환은행은 1970년대 현대그룹의 해외 진출과 맞물려 교류가 많았다. 이런 점이 인연이 돼 신철규 씨는 현대그룹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때 고대 상대 후배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돈독한 인연을 맺게 된다. 2008년 신 총재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임명된 배경에는 이런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재가 MB정부 시절 내놓은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거시건전성 규제 3종 세트'도 우리나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정부가 나서 외국은행 선물환 매입 한도를 정하고 단기 차입에 부담금을 물리며 외국인 채권투자에 과세를 부과해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불안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신임 한은 총재에 취임한 후 해결해야 할 중요 과제도 외환문제다. 1500원을 오르내리는 원·달러 환율은 국내 물가를 자극하고 한국 자본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가뜩이나 외환시장에서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한은과 신 총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환율 안정 문제는 신 총재의 능력을 평가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에서 비롯된 한 세대의 경험이 한 경제학자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졌고, 그 문제의식의 시험대가 2026년 한국의 외환시장 위에 놓여 있다. 그가 이끌 한은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노영우 부국장·디지털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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