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없애려다 ‘5시간’ 만에 사지마비…장애 연금 준 ‘국가’도 무릎 꿇었다, 그날 대체 무슨 일?

고재우 2026. 4. 2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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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해당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계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불행은 한순간에 들이닥쳤다.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A 병원에서 후종인대골화증 및 척수병 진단을 받은 B 씨.

후종인대골화증이란 인대가 뼈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신경을 누르며 발생하는 통증 혹은 마비 증상을 말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를 넓혀주는 수술을 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흔히 ‘감압술’을 실시한다.

수술 전까지만 해도 양쪽 팔에 이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B 씨는 약 4시간 30분 후 딴사람이 됐다.

수술 후 진행한 신체검진 결과, 양쪽 손, 어깨, 무릎, 발의 감각 등 운동기능이 사라졌다. A 병원은 즉시 스테로이드 제제인 덱사메타손을 투여했고, 경추(목뼈)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시행해 경추 척수부 부종, 전척추동맥 영역의 척수 경색 의심 소견을 확인했다.

목뼈 안을 지나가는 핵심 신경인 척수가 부었다는 뜻이다. 뇌와 몸을 잇는 고속도로인 척수 부기로 신경이 눌리면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천추동맥 영역의 척수 경색은 척수 앞에 혈액을 공급하는 전천추동맥이 막히거나 혈류가 차단돼, 해당 부위 신경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을 말한다. 쉽게 말해 척수에 뇌경색이 발병한 것이다.

매우 긴박했던 상황, B 씨는 상급병원으로 전원 됐으나, 영구 사지마비 진단을 피하지 못했다.

국민연금공단까지 참전, 법원은 모두 ‘기각’
[123RF]

하루아침에 사지가 마비된 B 씨와 가족들은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 B 씨에게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장애연금 약 5760만원을 지급한 국민연금공단도 ‘원고승계참가인’으로 A 병원을 대상으로 한 소송에 참여했다.

이들은 ①A 병원이 수술 중 저혈압 발생에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은 점 ②수술 과정에서 신경 손상감시를 하지 않은 점 ③수술 중 기구로 인해 원고의 척수에 손상이 생기도록 한 점 ④원고의 척수 경색 진단 지연 및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또 ⑤수술 과정에서 감염 위험 인자를 조절하거나 무균술을 실시하지 않은 점 ⑥수술 후 척수 경색의 증상과 대처 방법에 대해 요양 방법 지도를 하지 않은 점 등을 덧붙였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 제14 민사부(판사 문현호)는 원고와 원고승계참가인의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세부적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 감정 촉탁 결과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B 씨 저혈압 확인 후 승압제 투여 및 혈압 정상 회복 ▷수술 중 신경계 감시 및 수술 후 MRI 등 영상 검사가 일반적으로 이뤄진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점 ▷‘수술이 별다른 이상 없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중재원의 견해 등을 들었다.

③, ④, ⑤, ⑥ 등에 대한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③에 대해 A 병원 과실 외의 원인에 따른 B 씨 척수손상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제출된 증거만으로 ‘수술 중 기구로 척수를 훼손한 과실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중재원도 수술 전후, 심하게 압박됐던 척수신경 압력이 풀리면서 척수에 ‘생리학적 변화’에 의해 이차적으로 신경에 나타날 수 있는 부종이란 감정 의견을 내놨다.

특히 재관류 손상이란 한동안 혈류가 차단된 상태에 있던 조직에 혈류가 공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염증 반응, 세포막 손상, 칼슘-이온 불균형 등으로 인한 세포 손상, 사멸, 기능 장애 등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수술 후 재관류 손상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의료진 과실이라 평가하지 않는다. 의료 과실보다는 신체적인 변화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수술 후 회복실 대기·병동 이동·마비 증상 확인 후 약물 처방·MRI 촬영 등 소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지연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수술 후 혈중 염증반응 단백 농도나 백혈구 수 증가, 발열 등 감염 관련 소견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⑥에 대해서도 A 병원이 B 씨에게 ‘신경 주변을 수술하기 때문에 신경 손상 발생 시 새로운 마비 발생, 통증 증가 및 새로운 통증 발생, 감각 변화 등이 생길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상하지 마비, 배뇨 장애, 성기능 장애 등 드물지만 영구 장애가 남는다는 보고도 있다’고 설명한 사실 등이 인정됐다.

조진석 변호사 “여러 과실 주장, 오히려 불리”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 [법무법인 오킴스 제공]

조진석 변호사는 원고와 원고승계참가인의 여러 주장이 소송 패배의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여러 주장 남발이 설득력 있는 주장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재판부에도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B 씨가 수술 여부를 결정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판례 중 환자의 ‘자기 결정권’ 혹은 ‘선택권’ 침해를 인정한 사례가 있는 만큼, 여기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조 변호사는 “여러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주요 쟁점에 집중해 효율적인 심리가 되지 않도록 한다”며 “이는 재판부에도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인정 가능성이 높은 과실 점만 집중해 주장하는 것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받기에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판례에 따르면 수술에 따른 위험성이 큰 수술일 경우, 환자에게 수술 여부를 결정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며 “B 씨의 경우 의료진이 수술에 따른 위험성을 수술 전날에야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았는데, 이는 환자 자기 결정권이나 선택권을 침해당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 변호사는 원고 입장에서 중재원 등 의료 감정 촉탁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되는 의료 감정을 할 수 있는 쪽은 사실상 의사에 한하기 때문이다. 원고 입장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 때문에 진료기록을 볼 수 있는 의료인이 재판 과정에 참여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조 변호사는 “의료과실에 관한 감정은 법리에 따라 동일 직종 종사자에게 받아야 한다”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및 대한한의사협회 등에 감정을 요청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에 대해 잘 안다면 감정촉탁신청서 작성 시 과실 입증, 인과관계 인정 등 쟁점에 맞는 감정 문항을 작성할 수 있다”며 “승소를 위해서는 의료 전문 변호사나 의료인 면허를 소지한 변호사 등 의료사건에 관한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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