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한 이들이 마지막 희망 품고 찾아와…지면서도 계속 싸웠죠”
‘민변 공익변론센터’ 10년

사건 접수되면 민변 변호사 중개
590여건 다루며 시민 6만명 대변
12·3 불법계엄 때 대중 관심 늘어
보안법 위반·혼인 평등 소송 등
구조적 인권침해 책임 범위 다퉈
헌법 관련 사건은 승소율 더 높아
이주노동자·개인정보 수집 관련
미래에 문제인식 커질 분야 주목
“생각해보니 이긴 것보다 진 게 많네요, 하하. 하지만 이렇게 지면서도 계속 싸워온 덕분에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아닐까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대행인 서채완 변호사가 지난 15일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센터는 21일로 활동 10년째를 맞았다. 서 변호사 말대로 센터는 그간 590여 사건에서 시민 6만명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대변했다. 서 변호사와 최새얀·김상헌 상근 변호사, 이수연 사무차장 등 센터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2016년부터 세상을 위해 싸워온 센터의 활동이 차별과 싸우고 연대하며 달려온 10년”이라고 입을 모았다.
창립 때부터 자리를 지킨 이 사무차장은 센터가 “당장 소송이 어렵거나 다른 곳에서 외면당한 분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민변에 공익사건 변론팀이 있었지만, 전담 인력과 역량이 부족해 간절한 목소리들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며 “센터가 출범한 뒤엔 시민들이 직접 공익소송을 제안하고, 실질적인 법적 구제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시민들을 도울 수 있는 상시적인 통로가 됐다”고 말했다.
센터는 공익사건이 접수됐을 때나 긴급한 권리 구제가 필요한 상황일 때 민변 변호사들을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 200명이 넘는 변호사가 각 분야에서 연결돼 있고, 센터를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에 함께 대응하며 힘을 실어준다.
그래서 사건 분야가 다양하다. 전통적인 인권 변론 사건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나 표현의 자유 침해 사건부터 ‘낙태죄’ 헌법소원, 성소수자 혼인 평등 소송,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국가배상 청구, 기숙사 사망 이주노동자 유가족 국가배상 청구 등 외면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의 의제’로 만들었다.
센터는 오랜 시간 국가에 의해 구조적으로 가해진 인권침해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 따져 물었다. 그중 하나가 1950년대 주한미군 기지촌 성매매 동원 여성들이 처음으로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다. 2022년 대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의 기지촌 조성·운영과 성매매 정당화 행위는 인권존중 의무 등을 위반한 것으로, 원고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피해자 117명에게 국가가 6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하고, 미군 기지촌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점을 70년 만에 확인했다.
법의 한계를 파고들고, 국가의 역할과 책임 범위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시도는 이길 가능성보다 질 가능성이 큰 싸움이다. 센터가 10년간 제기해 확정된 사건 298건을 뜯어보면, 피고인을 지원한 형사사건에선 유죄 40건 대 무죄 30건이었고, 민사사건은 패소 36건, 승소 25건이었다. 다만 헌법사건은 승소가 9건으로 패소(7건)보다 약간 많았다.

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이들은 사회의 편견, 국가폭력과 맞서 싸웠다. 2024년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사회복무요원 병역 처분을 취소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엔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형사재판 법률지원을 했다.
센터는 국가적 재난이나 참사 상황에서 국가 책임도 물었다.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등에서 유가족을 지원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2016년 가습기살균제 사망 피해자들을 대리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센터는 기업뿐 아니라 유해물질 사용 등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정부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후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도 인정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서 변호사는 “2017년 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재난이나 참사 관련 피해자 권리를 얘기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제는 참사가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책임자 처벌, 진실규명이 피해자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소수자 문제도 이제는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 것 같다”며 “공익센터 소송은 미래를 향한 것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국가 권력이 충돌하는 양상도 다양해졌다. 센터의 ‘1호 사건’이었던 전기통신사업법 83조 헌법소원 청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수사기관 등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수집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6년 만에 헌법불합치로 결정했고, 2023년 법이 개정됐다. 개정법에 따라 수사기관 등은 정보를 제공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정보를 제공받은 자와 날짜, 목적 등을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2024년에는 동성 배우자의 국민건강보험법상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결을 이끌어냈다. 소송에 참여한 박한희 변호사는 “동성 부부가 누리지 못하는 권리 중 ‘피부양자 지위 불인정’에 집중했다”며 “법원이 변화하는 가족 결합에 대해 공적 제도가 더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3 불법계엄을 선포한 뒤엔 센터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전국 곳곳에서 탄핵 촉구 집회·시위가 열릴 때 온라인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면 ‘노란 조끼’를 찾으세요”라는 문구가 ‘꿀팁’으로 퍼졌다. ‘인권침해 감시 변호인단’이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입은 민변 변호사들은 늘 광장을 지켰다.
이 사무차장은 “당시 8000만원 넘게 후원이 들어왔다. 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용돈을 보낸 것 같은 5000원, 1만원 등 소액 후원이 많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민변이 꾸준히 비슷한 활동을 해왔고 이번이라고 특별히 다른 소명감을 가진 건 아니었는데 시민들이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줬다”며 “그만큼 든든한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인공지능(AI)·정보기술(IT) 발달로 위협받는 정보주체 권리, 미래 세대의 환경권, 이주민 인권 등 센터가 마주하는 과제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늘고 있다. 최근엔 AI와 IT 발전에 필수인 개인정보 수집·이용 과정에서 정보주체인 시민이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인식이 커지고 있다. 자연스레 정부와 기업들의 AI 기술 활용을 견제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공익 변론이 늘고 있다.
2022년엔 법무부의 AI 식별추적 개발사업 관련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SKT 유심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선 지난해 6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피해자 3900여명을 대리해 집단분쟁조정신청을 내고 위원회로부터 ‘SKT가 1인당 30만원을 배상하라’는 권고를 받아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선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로부터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35% 이상 감축한다’고 정한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낸 점도 성과로 기록됐다.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는 지금도 뜨거운 현안이지만 미래엔 더 중요해질 문제다. 15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사업주의 갑질과 인권침해는 되풀이되고 있다. 법·제도와 당국의 감시가 충분치 못해 센터가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20년 12월 경기 포천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 숨진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씨 사건과 관련해 이주노동자의 주거권과 건강권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법원에서 인정받은 게 대표적이다. 센터는 이주노동자가 처한 위험한 노동환경과 함께 사업주 갑질에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실태 등 차별적 제도를 폐지하는 데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제 2년차인 김 변호사는 이주민 인권에 관심이 많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가 이주민 관련 법 자체가 부족해 이를 지적할 곳으로 민변을 생각하고 들어왔다. 그는 “이곳에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며 “참여하고 연대하고 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불편하지만 꼭 지켜야 할 인권의 영역에서 방패막이가 되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밝혔다.
김정화·임현경·최혜린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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