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늑구 신드롬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 함자가 ‘봉구’였다. 아홉 구(九)를 썼는데, 종종 자신의 이름으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다른 숫자보단 낫지 않으냐는 것이다. 봉칠이 봉팔이, 봉삼이 봉사보다 봉구가 매력적이라고 말이다. 대전 동물원 탈출과 귀환으로 화제가 된 늑대 이름이 ‘늑구’다. 그곳 늑대 스무 마리는 관리번호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맞다. 늑칠이, 늑팔이보다 늑구가 더 사랑스럽다.
▶늑대는 무서운 맹수다. 늑대의 무는 힘은 대형견 셰퍼드의 6배를 훌쩍 넘는다. 늑대 어금니는 위아래가 맞물릴 때 가위처럼 작동한다. 한 번 물면 체중을 실어 흔들기 때문에 상처 부위가 수평으로 찢겨나간다. 개에게 물린 자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한 압박으로 뼈를 부수고 가위 같은 치아로 조직을 통째로 잘라 뜯어낸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늑대 무리 공격을 받는 영화를 보면 몸서리를 치게 된다.
▶예전 같으면 신문 사회면 재난 뉴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늑구를 길 잃은 강아지나 돌아온 반려동물처럼 소비한다. 대전의 유명 빵집은 ‘늑구빵’을 내놨고, 전광판에는 “돌아와 고맙다”는 문구가 걸렸다. 온라인은 더 뜨겁다. AI로 합성한 ‘늑구 대전 마라톤’ ‘늑구 시티투어’ ‘늑구 탈출로 트래킹’ 이미지가 광범위하게 공유된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팬들은 팀 이름을 ‘한화 울브스(늑대들)’로 바꾸자고도 했다. 늑구가 돌아온 다음 날, 연패 중이던 한화는 5대0 승리를 거뒀다. 9일 만의 승리였다.
▶개와 늑대의 유전자는 99.96% 일치한다. 늑대는 ‘산에 사는 개’, 개는 ‘집에 사는 늑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단 0.04%의 차이가 야생의 맹수와 인간의 동반자를 가른다. 다만 동물원에서 나고 자란 늑대는 조금 다르다. 몽골에서 야생 늑대를 취재하고 ‘늑대가 온다’를 쓴 최현명 청주대 교수는 “야생 늑대가 동물원에 잡혀 오면 발작을 일으켜 결국 죽는다”고 했다. 지금 세계 각국 동물원의 거의 모든 늑대들은 이미 부모도 조부모도 ‘동물원 출신’이다.
▶‘늑구 신드롬’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현대인이 늑구의 탈출에서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반려 동물을 기르는 인구 1500만 시대, 늑대를 맹수가 아닌 인생의 짝처럼 감정 이입했다는 해석도 있다. “죽이지 말고 생포해달라”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배경이다. 어쨌든 늑구는 돌아왔고, 한화는 연패를 끊었으며, 도심은 다시 평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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