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장애인의날을 축하합니다?

김지우 작가·‘굴러라 구르님’대표 2026. 4. 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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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어린이는 선물을 받고 소풍을 가곤 한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에 어버이와 스승들은 깜짝 파티의 주인공이 된다. 여성의날 역시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은 커다란 행렬을 만들어내고 장미를 선물받는다.

그러면 장애인의날은? 그날이 가까워지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머쓱하고 민망한 마음이 된다. 학생 때는 ‘장애는 옮는 것이다’ 따위의 문장을 읽고 O, X를 적는 인식 개선 교육을 들었다. 그 교실의 모두가 나를 신경 쓰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느라 혼이 났다.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기념식이나 행사를 보아도 기쁜 마음보다는 괴로운 마음이 크다. 맞서 싸워야 할 차별과 자랑스러운 투쟁을 뒤로하고 시혜와 동정을 기반으로 한 누구도 화내지 않을 둥글둥글한 말을 쓰는 것이 질린다. ‘함께’ ‘행복’ ‘동행’ 같은 말을 행사에서 쓰면 수영장으로 날아가 버리는 플라잉 체어를 만들고 싶다.

동시에 마치 이날을 기념하는 것처럼 화나는 뉴스가 쏟아지기도 한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장애 차별 사례는 한두 개가 아닌데, 마치 이때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플랫폼이 떠들썩해진다. 사람들은 쉬운 선악의 구도에서 분노하고, ‘참교육’을 외치고, 그리고 금세 잊어버린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우리가 함께 개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애인의날은 그렇게 끝난다. 아무도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은 아닐까? 어린이날은 어린이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성의날 역시 여성 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과 지위 향상을 위해 투쟁한 역사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렇다면 장애인의날 역시 응당 장애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차별을 철폐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했을 것이다. 이날만큼은 어린이인 것이, 어버이인 것이, 스승인 것이, 여성인 것이 그런 것처럼, 장애인인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워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날을 지정하고 있는 법령을 찾아보았다.

‘장애인복지법 제14조(장애인의날) ①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4월20일을 장애인의날로 한다.’ 당혹스러웠다. 지정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의 어떤 부분에도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애인/국민의 이분법적인 명명에서는 마치 장애인이 국민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재활의욕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 역시 장애인에게 사용되는 ‘재활’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의료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치료 혹은 교정’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아까의 플라잉 체어 언급은 취소하겠다. 이러한 기조로 세워진 날에 국민들의 이해가 필요한 나와 ‘따뜻하게 동행’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장애인의날을 하루 앞두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궁금해졌다. 전제부터 어긋난 이날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까? 주인공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고 서로의 ‘장애인-됨’을 축하할 수 있을까? 동정이나 분노의 문법에서 벗어나, 해방과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장애인 친구들을 모아 떠들썩한 파티를 여는 상상을 한다. 서로를 축하하며 선물도 주고받을 것이다. 부산스럽고 엉망일 테지만, 시끄럽고 정신없을 것이지만, 그렇기에 재미있을 것만 같다.

김지우 작가·‘굴러라 구르님’대표

김지우 작가·‘굴러라 구르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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