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혼자 가기 겁나요"…장애인에 문턱 높은 광주·전남 공공병원

박건우 기자 2026. 4. 2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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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울한 장애인의 날
점자블록 끊기고 음성안내 먹통
접근 막는 형식적 편의시설 설치
적정 설치율도 고작 30%대 그쳐
"불편 여전…사후관리 강화해야"
20일 오전 10시 '장애인의 날'을 맞아 찾은 전남대학교병원 본관 출입구. 휠체어를 이용한 환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보호자와 직원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박건우 기자

"점자 안내판이나 음성 안내가 있어도 위치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제46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병원. 외래 진료가 시작되자 병원 로비는 환자와 보호자로 빠르게 붐볐다. 접수창구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고, 진료실을 알리는 전광판 숫자도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대형병원과 다르지 않았지만, 시각장애인과 이동약자의 시선에서 따라가 본 병원 안팎의 편의시설은 '있지만 제대로 쓰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병원 입구와 내부 곳곳에는 점자블록과 점자안내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일부 구간에서는 점자블록이 마모되거나 끊긴 흔적이 눈에 띄었다.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대기 줄과 이동 동선이 점자블록 위로 겹치면서 안내 기능도 떨어졌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령 환자 상당수는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고 있었고, 병원 입구 일부 구간은 혼자 오르내리기에 부담을 느낄 만했다.

빛고을전남대학교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형 안내도는 입구에서 바로 찾기 어려운 벽면 쪽에 설치돼 있었고, 일부 승강기 내부에서는 점자 표기가 미흡하거나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보호자는 "기본적인 시설은 갖춰져 있지만 실제 이용 상황까지 따져보면 아직 보완할 부분이 적지 않다"며 "혼자 이동하기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특정 병원만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전국 공공의료기관 111곳 대상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법적 기준에 맞게 정확히 설치된 편의시설의 적정 설치율은 43.5%에 그쳤다. 절반이 넘는 시설이 기준에 미달하거나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광주와 전남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광주지역 공공의료기관 5곳의 편의시설 95개 가운데 적정 설치는 35개(36.8%)에 불과했다. 부적정 설치는 53개(55.8%)로 전국 평균(36.4%)을 크게 웃돌았고, 미설치는 7개(7.4%)였다.

전남지역 공공의료기관 8곳도 점검 대상 165개 시설 중 적정 설치는 52개(31.5%)에 그쳤다. 부적정 설치는 79개(47.9%), 미설치는 34개(20.6%)다. 제대로 설치된 시설보다 잘못 설치됐거나 아예 없는 시설이 더 많았다.
 
2025년 전국공공의료기관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제공

세부 항목을 보면 왜 불편이 반복되는지 더 분명해진다. 주출입구에서 접수창구와 진료 공간까지 이어져야 할 점자블록이 중간에 끊기거나 방향이 어긋난 사례가 확인됐다. 계단이나 경사로 시작과 끝에 설치돼야 할 점형블록이 빠진 곳도 적지 않았다. 점자표지판이 문 손잡이 위치와 맞지 않거나 높이가 기준에서 벗어나 촉지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일부 기관에서는 승강기 버튼에 점자 표기가 있더라도 음성안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호출 버튼 주변 점형블록이 없어 위치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이처럼 병원 입구에서 접수, 검사, 진료실로 이어지는 안내가 곳곳에서 끊기면서 시각장애인이 혼자 공공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편의시설이 '설치 여부'만 충족한 채 실제 이용 가능성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형식적 설치'에서 찾는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관련 법에 따라 편의시설이 설치돼도 사후관리와 기준 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실제 이용에는 큰 불편이 따른다"며 "시설을 갖췄다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용자 관점에서 동선과 작동 여부를 상시 점검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병원은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라며 "장애인의 날 하루만 강조할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쓸 수 있는 편의시설이 되도록 관리 기준을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건우 기자 pg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