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신 전차…부활하는 獨 방산, ‘K-9·K-2’ 유럽 수출 위협
유럽 재무장·현지화 흐름
지리적 이점으로 K-방산에 변수
독일이 침체된 자동차 산업을 뒤로하고 방위산업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버릴 조짐이다. 유럽 재무장 흐름과 맞물려 독일 방산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면서, 최근 폴란드·루마니아 등에서 수주를 늘리고 있는 K-방산에는 위협요인이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이 주력인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경기가 침체하자 방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기 침체와 전기차 전환 지연,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주력 산업이 흔들리자 새로운 돌파구로 방산을 택한 것이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현재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독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달 약 1만5000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으며, 독일이 한때 지배했던 자동차 산업도 위기에 처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이익은 49% 줄었고, 포르쉐는 98% 급감했다. 폭스바겐 역시 영업이익이 44%나 감소했으며, 이 때문에 2030년까지 독일 내 일자리 5만개를 없애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독일은 기존 생산 인프라를 방산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가동이 중단된 공장은 무기 생산 시설로 재정비되고 해고된 숙련 인력은 방산 공정에 재투입되는 것이다.
카테리나 라이헤 독일 경제장관은 "유럽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하며 그건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탄탄한 안보·방위 산업을 구축하는 것도 의미한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자동차식 생산 방식'의 유입이다. 기존 방산 업체가 긴 개발 주기와 제한된 생산능력에 묶여 있는 것과 달리, 자동차 산업에서 단련된 독일 기업은 대량 생산과 공급망 관리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는 곧 무기 생산의 속도와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패트리엇 방공체계의 엄청난 수요에도 불구하고 한 해에 요격미사일 620기만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내연기관 전문업체 도이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패트리엇 방공체계에 필요한 동력 엔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인 체계와 장갑 차량을 공급하고 있다. 도이츠는 방산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방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본격적인 사업 전환에 나섰다. 폭스바겐은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 체계에 필요한 부품을 2027년까지 생산한다는 목표로 이스라엘 기업들과 대화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셰플러는 지난해 설립한 방산 부문에서 회사 전체 매출의 약 10%를 올리는 걸 목표로 설정했다. 유럽 정책 환경도 이 같은 전환을 뒷받침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은 재무장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유럽 국가들은 2035년까지 방위비를 1조유로(약 1735조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여기에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까지 겹치며 유럽산 무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최근 유럽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K-방산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은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폴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에 진출해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해왔다.
하지만 독일이 현지 생산능력과 공급망을 기반으로 방산 역량을 끌어올릴 경우 기존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이미 세계 최고의 방산 역량을 보여준 바 있는 저력 있는 국가다.
방산 경쟁이 성능과 가격을 넘어 공급망과 현지화로 이동하면서, 독일 업체들이 지리적 이점과 기존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서 구축한 공급망과 생산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유럽 방산의 블록화 흐름까지 맞물리며 현지 업체의 수주 경쟁력이 더 강화될 전망이다.
독일은 이미 방산 시장에서 K-방산과 경쟁 구도를 이루고 있다. K2 전차는 독일 레오파르트 2와 폴란드, 노르웨이 차세대 전차 도입 사업에서 붙었다.
폴란드는 K2 전차가 최종 선정됐으나, 노르웨이에선 레오파르트에 밀렸다. K9 자주포는 노르웨이, 핀란드 등 수주 경쟁에서 독일 라인메탈의 PzH 2000과 붙은 바 있다.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도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원팀 컨소시엄이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와 최종 경쟁 중이다.
김호성 국립창원대 GAST공학대학원장은 "독일이 자동차 산업의 생산라인을 방산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 K-방산의 가장 큰 장점인 '빠른 납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유럽 내 수요를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구조가 강화되면 한국 기업의 유럽 진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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