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공급 안 되는 용인 반도체 공장 불가능…지방으로 옮겨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분산해야”

반도체 전문가인 이봉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지난 7일 귀국했다. 한국을 떠난 지 20여년 만에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의 일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이 기자는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모토롤라, 디비(DB)하이텍, 에스티엠 등 반도체 회사에서 계속 일해왔다. 2022년 6월부터 오마이뉴스에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라는 제목으로 반도체와 관련한 기사를 연재했다. 특히 이 기사에서 용인의 반도체 산업단지를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그는 용인의 반도체 산단이 불가능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로 용인은 생산 과정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수도권은 땅이 부족하고 비싸고 주민 수용성도 낮아서 충분한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다. 삼성이 엘엔지(액화석유가스) 발전소를 짓는다는데, 이것은 2030년 이후 무역 장벽이 된다. 올해부터 유럽연합에서 부과하는 탄소관세는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메모리 반도체엔 치명적이다. 지방에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해서 용인으로 가져오겠다는 발상도 지방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단을 지방으로 옮겨야 하는 둘째 이유는 리스크 관리다. 이 기자는 “한국의 반도체 공장은 충북 청주 정도를 빼면 기흥, 화성, 평택, 이천, 용인 등 모두 수도권에 몰려있다. 전체 반도체 생산량의 90%를 넘는다. 같은 지역에 반도체 공장이 몰려 있으면 군사 공격, 테러, 정전, 화재, 태풍, 홍수, 지진, 가뭄, 땅꺼짐 등 리스크에 매우 취약해진다”고 말했다. 더욱이 지난 1분기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5.8%에 이르렀다. 수도권 반도체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은 즉시 한국 경제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 기자는 지리적 리스크를 분산한 외국 사례를 소개했다. “티에스엠시(TSMC)의 대만 공장은 신주,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등 네 군데 분산돼 있고, 미국, 일본에도 공장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마이크론도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 공장이 있고, 미국 안에서도 버지니아, 뉴욕, 아이다호 등에 공장이 흩어져있다.”

이 기자는 용인 반도체 산단에서 아직 짓지 않은 공장들을 지방, 그중에서도 호남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왜 호남일까? 그는 재생에너지 생산을 강조했다.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알이100 산단을 해야 하는데, 호남은 땅이 넓고, 땅값이 싸고, 주민 수용성이 높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들어가기 유리하다.” 실제로 전북과 전남은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이 2023년 전국 1~2위로 가장 많고, 전남의 솔라시도나 전북의 새만금 등 터가 넉넉하다.
그러면 영남이나 강원, 충청 등 다른 지역은 어려울까? 이 기자는 다른 지역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공단이 있는 경북 구미나 발전소가 있는 강원 삼척 같은 곳도 좋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느냐다. 현재는 호남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면서 그는 밀림 가운데 반도체 공장을 지은 말레이시아 쿠칭, 고립되고 낙후한 섬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반도체 공장을 소개했다. 다만, 그는 충청 지역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었다. “이미 반도체 관련 패키징 공장이 있지만, 수도권에 너무 가까워 지역 균형 발전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골든 트라이앵글’이란 정책을 제안했다. 용인의 10개 반도체 공장 계획 가운데 2개는 용인에 그대로 짓고, 나머지 8개를 호남과 영남에 적절히 분산하자는 제안이다. 이 기자는 “바로 어제 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수도권에만 반도체 생태계가 있는데, 이렇게 한다면 전국에 3개의 반도체 생태계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기자의 주장과 달리, 알이100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단기간에 달성되기 어려우므로 한국의 기업들이 선도할 필요는 없다는 보수적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예를 들어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이미 재생에너지 사용이 90%를 넘겼고, 에스티엠도 80%를 넘겼다. 심지어 삼성도 공장이 주로 외국에 있는 가전 부문(DX)은 2024년 93.4%에 이르렀다. 공장이 주로 한국에 있는 반도체 부문(DS)만 24.8%에 머물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는 수도권에 반도체 공장이 몰려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으로 반도체 공장을 옮기는 경우, 전력과 함께 필수 자원인 물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 기자는 물은 큰 문제가 아니라며 “마이크론이나 인텔, 티에스엠시 등이 사막에 반도체 공장을 지은 사례를 보라”고 말했다. “현재 전세계의 반도체 공장들이 물의 재활용률을 60~90%까지 높여 물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공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부가 싸게 물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재 공급은 민감한 사안이다. 일부 기업이나 매체는 지방에선 고학력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남방한계선’을 거론했다. 이 기자는 “수도권 인재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호남 전체 인구가 500만명 정도 되는데, 이것은 여러 개의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싱가포르의 인구 600만명과 큰 차이가 없다. 특히 반도체 공장에선 주로 고교나 초급대 졸업자를 요구하므로 고학력 인재가 지방으로 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반도체 공장도 지역 인재 채용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업과 정부의 선택이다. 애초 수도권에 공장 부지를 요구한 것은 기업이었다. 수도권에 부지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큰소리쳤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 기자는 “기업들이 단순히 공장 부지가 아니라, 그 땅의 부동산 가치까지 노린 것 아닌가 의심된다. 외국으로 나간다는 이야기도 한국 공장의 비용·인재 경쟁력을 고려하면 사실이 아니다. 미국 공장에선 더 높은 임금으로도 3교대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제 정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용인의 반도체 산단은 정부가 수도권 공장 총량 제한을 무력화해서 만들어준 것이다. 또 수도권에 공장을 지어도 땅이나 전력, 물을 정부가 앞장서 공급해준다. 지역별 차등 전력 요금제 등 정상적인 비용을 부과하면 기업이 수도권에 공장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용인 국가 산단 결정 자체가 윤석열 정부에서 졸속으로 이뤄졌다. 원래 지방으로 가야 하는 반도체 공장인데, 특혜를 줘서 수도권에 짓게 했다. 헌법 122~123조의 지역 균형 발전 원칙에 따라 정부가 국가 산단 입지를 재검토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마지막으로 “지금 수도권에서 용인 반도체 공장을 지키겠다고 하는데, 반도체 공장이 환경 오염, 유해 시설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장은 꽤 위험하므로 인구 밀집 지역에 절대 들어서선 안 된다. 이것은 지방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 밀림이나 사막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이유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가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온 건 20여년 만이다. ‘한국에 돌아오니 어떠냐’는 물음에 그는 “좋아하는 맥줏값이 싸서 좋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맥주 500㎖ 한 잔에 2만원 정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 지난 열흘 동안 가족, 지인들과 많이 만나 입술이 다 터졌다”며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이 기자는 “1988년 고3 때 취업한 뒤 군 복무 등을 빼고 35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왔다. 이젠 조금 쉬면서 책 읽고, 글 쓰고, 부르는 곳에 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서도 뭔가 일을 하고 싶다. 싱가포르는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배달 일을 할 수 있는 나라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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