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이 내 돈이 되는 마법”…종신보험의 유혹

'비영리',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영리' 장기 요양기관은 수익이 아닌 '돌봄'이 목적으로, 나랏돈인 공공 재원으로 운영됩니다.
당연히 일반 사업장보다 훨씬 엄격한 회계 기준이 적용됩니다.

<장기 요양기관 재무ㆍ회계 규칙 제3조 2>
장기 요양기관의 예산은 세출예산에서 정한 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이 '엄격함'을, 일부 보험 영업 조직은 역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규제 때문에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시설 운영비를 '개인 자산'으로 빼돌릴 수 있다는 은밀한 제안...
이른바 '현금 흐름의 마법'을 강의하기 시작한 겁니다.
KBS가 입수한 이들의 내부 교육 자료에는 비영리 기관의 공공성을 무력화하는 적나라한 수법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 수법 1 : "나랏돈으로 차 사고, 소유권은 내가"
요양원 운영에 필수적인 차량.
나랏돈(운영비)으로 할부금을 내면 차는 시설의 자산이 되지만, 폐업 시 지자체에 반납해야 합니다.
보험 조직은 여기서 '소유권의 세탁'을 가르칩니다.
"요양원으로 들어온 돈은 나랏돈입니다. 나랏돈 가지고 차량 할부금을 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차에 대한 권리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니죠.
몇 년 지나서 그 차를 팔려고 한다면, 찻값을 누가 가져갈 수 있어요?
만약 폐업한다면 그 차는 지자체에 반납한 뒤 경·공매 처분을 통해 자금이 회수됩니다.
하지만 차량 할부금을 개인 돈으로 납부했다면 그 차량 권리는 나한테 있겠죠?
그러면 중고로 팔아도 그 돈이 내 것이겠죠."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여기까지는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왜 시설 운영에 필요한 차량을 굳이 개인 돈으로 내라고 하는 걸까요.
이들이 강조하는 건 '현금의 흐름'입니다.
요양기관 운영에 쓰라고 준 돈을 원장 개인 통장으로 흘러가게 하자는 겁니다.
"개인 통장에서 (차량 할부금으로) 100만 원을 내고, 요양원에 있는 100만 원으로 적립금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이 적립금을 내가 개인화시킬 수 있다면, 이 돈 어차피 내 거잖아요. (개인 자금) 잔액 변동 없이 차에 대한 권리가 생긴 거니, 나중에 차를 팔더라도 몇천만 원은 될 텐데 현금 흐름만 달라지는 것뿐이면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개인 돈으로 차량 할부금을 내는 대신, 원래 지출해야 했을 운영비(차량 할부금 몫)를 적립금으로 쌓으라는 겁니다.
이렇게 쌓은 적립금, 결국 종신보험에 납입한 뒤 수익자 변경을 통해 원장 개인 자금으로 빼돌릴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현금의 흐름을 바꾸면 나랏돈으로 차도 쓰고 소유권도 챙길 수 있다며, 사실상의 부정 수급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 수법 2: "시설 보수는 미루고, 보험 대출로 건물 증축"
어르신들을 위해 쓰여야 할 환경 개선비도 이들에게는 '보험료'를 뽑아낼 먹잇감에 불과했습니다.
요양기관의 시설을 고치는 비용 역시 정당한 운영비로 처리할 수 있는 항목입니다.
그런데 보험 영업 조직은 시설 개·보수를 위해 모아둔 돈을 쓰지 못하게 압박합니다.
실제로 시설 개·보수를 위해 환경개선 준비금을 적립하고 있는 원장에게는 '지자체의 점검 리스크'를 강조하라고 당부합니다.
"어떤 원장님이 정말로 개·보수 하려고 모아두고 있다고 얘기를 하면 어떤 부분을 짚어야 할까요?
'원장님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개·보수하는 건 결국 지출인데,
이왕이면 좀 천천히 하시던가 금액을 줄여서 하세요'라고 말해야 하고,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는데, 다른 것들 걸리면 원장님 좋은 사업 하시면서 힘드시지 않겠느냐, 스트레스받지 않겠냐?'라고 말할 수 있겠죠."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시설 노후화는 방치하게 만들면서, 대신 그 돈을 보험에 넣어 '약관 대출'을 받으라고 권유합니다.
보험은 통장이 없어 입출금 흔적이 남지 않으니, 나랏돈을 보험으로 '한 번 걸러서' 대출 형식으로 빼 쓰면 원장의 개인 건물 증축비로 써도 무관하다는 탈법적 논리입니다.
"요양원 돈으로 4층짜리 건물을 7층으로 올리겠다고 하면 인정이 안 돼요.
이 건물은 원장 건물인데 증축하고 싶어 한다면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해야죠.
요양원 통장에 있는 건 표면적으로는 나랏돈이니까 '쓰실 거면 한 번 걸러서 쓰시면 됩니다.'
적립금을 쌓았다가 '약관 대출', 우리가 판매하는 (종신보험) 상품은 약관 대출이 됩니다'…."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보험 상품은 통장이 없어요. 납입 증명서라는 게 나옵니다.
여기에는 매월 적립하고 있는 금액과 총합계 금액만 나와 있어요.
중도 인출이나 약관 대출받아도 흔적이 안 남습니다.
(적립금은) 어차피 안 쓰는 돈이잖아.
그걸 (보험으로) 쌓아놨다가 약관 대출을 받든 중도 인출을 받아서 내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내 개인 돈 갖고 증축하는 건 문제가 안 되겠죠?"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 수법 3: "직원 퇴직금은 은행 대신 보험으로…권리는 원장에게"
가장 심각한 대목은 인건비 중 하나인 '퇴직 적립금'입니다.
정부는 요양기관 종류에 따라 최대 87%(방문요양)까지의 의무 비율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기관 특성상 직원 퇴사 시 목돈이 나가야 하는 상황을 대비해 미리 퇴직금을 적립금으로 쌓아두라는 취지입니다.
법적으로 퇴직연금은 직원의 권리지만, 이들은 이를 원장의 권리가 보장되는 '보험'으로 돌리라고 유혹합니다.
"은행 예금 통장에다 퇴직금을 적립하면 비용 처리는 되지만 뭐가 단점이라고요?
은행은 통장이 있기 때문에 입출금 내역이 투명하잖아요. 근본적인 문제가 뭐다? 못 빼 씁니다."
"퇴직금 적립 제도와 퇴직 연금 제도를 통해 퇴직금을 준비할 수 있는데,
퇴직연금의 권리는 직원에게 있고, 적립금은 권리가 대표한테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회사에서 돈만 내주는 것뿐, 직원 각각의 이름으로 들어가요.
하지만 퇴직금 적립 제도를 이용한 보험으로 하면 계약자인 원장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은행은 입출금 내역이 투명해서 원장 마음대로 빼서 사용할 수 없고, 퇴직연금은 권리가 직원에게 있으니, 모든 권한이 원장에게 주어지는 '보험'으로 퇴직금 적립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설득하라는 겁니다.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제일 중요한 게 현금 흐름이거든요.
퇴직금 통장에 1억이 모여 있는데, 당장 5천만 원이 필요해.
(중략)퇴직연금은 못 건드리지만, 보험은 먼저 써도 됩니다."
- 보험판매업체 대표 직원 강의 中 -
심지어 이미 안전한 금융권 퇴직연금에 가입해 납입하고 있는 원장들에게는 기존 연금 납입을 중단하도록 유도하는 수법까지 교육합니다.
기존 퇴직연금을 해약하려면 직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꼼수를 쓰라는 겁니다.
연금 이체용 통장의 잔고를 비워버리거나 계좌를 변경해 자동 납입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그 돈으로 자신들의 종신보험에 납입하라는 식입니다.
퇴직자가 발생해 돈이 부족해지면 원장 개인 돈으로 메우고, 나중에 보험금을 수령하는 식의 '자금 세탁' 모델을 완성한 겁니다.

■ "나랏돈은 눈먼 돈인가?"…정부, '지정 취소' 등 강력 대응 예고
이들의 방법대로 하면 정말 나랏돈을 내 돈처럼 쓸 수 있는 걸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요양기관 원장들은 "직원 퇴직금 용도로 가입했다", "긴급한 돈이 필요할 때 약관 대출받을 목적으로 가입했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요양기관 운영비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며, 이는 부당수급 환수를 넘어 '시설 지정 취소'까지 가능한 중대 범죄입니다.
보험 조직이 강조한 '현금 흐름의 마법'은 결국 공공 재원으로 운영되는 돌봄 체계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비영리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해, 보험을 도구로 한 나랏돈 사유화의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단독] “요양기관이 왜 종신보험을…” 신종 부정수급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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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원 기자 (hey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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