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법인격 부여 ‘생태법인’, 보류 아니라 설계가 필요하다 [왜냐면]


박태현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4년 12월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특정 생태계나 생물종 등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는 법제인 ‘생태법인’을 도입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위성곤 의원안’)을 발의하였다. 이는 2022년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를 도정 비전으로 채택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생태법인 도입 논의를 위해 구성한 워킹그룹(의장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서 마련한 제주특별법 개정안과 조례제정안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정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출하면서 위성곤 의원안의 심의는 보류되었다. 정부는 위성곤 의원안에 대하여 환경보호제도와의 관계, 현행 법체계와의 조화 여부, 지역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충분한 공론화를 선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검토 의견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는지 따져보자. 먼저 생태법인과 환경보호제도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생태법인은 기존 환경보호제도를 보완하는 기능을 가진다. 생태법인 후보군 1호로 종종 거론되는 남방큰돌고래의 생존과 자유로운 이동을 위협하는 요인은 서식지, 먹이, 소음, 관광, 어업 등 복합적이다. 그런데 이를 보호하기 위한 서식지 보호, 해양 공간 관리, 어업 및 관광 규제가 서로 분절된 채 따로 작동한다면 보호의 효과성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법인격은 그 대상을 단순한 보호 객체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법률 집행과 권리 구제의 독자적 기준점’으로 세워 줌으로써 환경보호제도의 통합적 집행력을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연물의 권리를 대리 행사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그 조직과 운영에 지역사회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한다면, 민주적 거버넌스를 통해 기존 보호제도의 관료주의적 한계를 보완할 수도 있다. 콜롬비아의 아트라토강 수호위원회나 아마존 생명을 위한 세대 간 협약은 이러한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법인격 부여만으로 자동적으로 환경보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실효성은 대표자 거버넌스의 합리적 운영과 행정기관의 재정·조직적 지원 그리고 건전한 감시 체계에 달려 있다.
둘째, 현행 법체계와의 부조화 우려 역시 법인격의 인정 범위를 합리적으로 한정함으로써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생태법인은 전통적으로 사람을 권리 주체로 상정해 온 기존 법체계에서는 낯선 제도적 발상이다. 그러나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한다고 하여 곧바로 자연인이나 회사법인과 동일한 정도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 법에서 법인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되며, 권리 능력 역시 법인격 부여의 목적과 범위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 회사법인의 권리 능력이 무한정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공법인, 재단법인, 비영리법인의 권리 능력도 각각 다르다. 따라서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더라도, 그 법인격은 생존, 서식, 번식, 이동, 건강한 해양 환경의 보전에 관한 권리 행사와 그 집행의 목적에 한정하여 재산권, 계약 능력 같은 일반 사법상 능력은 부정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다. 법인격을 절차·구제적 도구로 한정하고, 특정 수호자나 대표자가 권리 행사를 대리하도록 설계한다면 민법, 행정법, 환경법과 충돌할 가능성은 상당 부분 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현행 법체계와의 조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당 부분은 제도 설계의 문제로 흡수 가능하다.
셋째, 지역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권리 충돌의 문제는 새로운 권리제도를 도입할수록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입법 과정의 일부다. 권리 간 충돌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법질서 안에서 늘 발생해 온 문제이며, 법체계는 그러한 충돌을 이유로 권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조정 원리를 발전시켜 왔다. 비인간의 권리 또한 마찬가지다. 비인간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와 긴장, 충돌, 보완의 관계를 모두 가질 수 있으며, 핵심은 그 충돌을 어떻게 합리적인 기준과 절차에 따라 조정할 것인가에 있다.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선박 속도 제한, 특정 구역·시기의 접근 제한, 혼획 방지 장치 의무화, 핵심 서식지 절대보호구역 지정 등은 어업권이나 관광업과의 관계에서 단계적이고 비례적인 조정을 필요로할 것이다.
정부의 검토 의견에 내재한 우려는 무의미하지 않다. 그러나 그 우려는 제도 도입 반대의 논거가 아니라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제도의 보류가 아니라 한정적 법인격 모델, 대표 기구의 설계, 권리 충돌 조정 기준, 산업 영향 분석을 포함한 구체적 입법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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