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물에 잠긴다? "떠나기 싫으면 당장 줄여라"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해마다 2200만 명 이상이 찾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장기 존속을 둘러싼 질문이 커지고 있다. 실제 유럽에서는 이에 대응해 계획적으로 공동체와 자산을 옮기는 사례도 있다.
16일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연구에서 해수면 상승이 계속될 경우 현재 베네치아를 지키는 방식만으로는 장기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구진은 도시를 지킬 수 있는 방법보다 해수면이 오를수록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금 가능한 해법이 미래에는 통하지 않을 수 있고, 임계점을 지나면 도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선택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 막으면서 버티는 도시
베네치아가 침수 위험에 직면한 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수면 상승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150년 동안 침수 위험이 커졌고, 도시 60% 이상이 잠기는 극한 침수 사건 28건 중 18건이 최근 23년 사이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해 베네치아는 '모세(MoSE)'라는 이동식 방조제를 운용하고 있다. 폭풍해일이 오면 바다와 연결된 석호 입구를 닫아 바닷물이 도시로 밀려드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평상시에는 바닷물이 흐르도록 열어두고, 위험할 때만 닫는다. 이 방식으로 2022년부터 침수를 막아왔지만, 연구진은 영구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봤다.
해수면이 계속 높아지면 방조제를 닫아야 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난다. 연구에 따르면 2100년까지 베네치아 해수면은 온실가스 저배출 시나리오에서 약 0.42m, 고배출 시나리오에서 0.81m 상승할 수 있다. 더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는 1.8m까지 오르는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방어시설이 없을 경우 천문조 기준으로 도시 중심부 침수 면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방조제를 자주 닫을수록 부작용도 커진다는 점이다. 배가 드나드는 항만 운영이 차질을 빚을 수 있고, 바닷물 순환이 줄면서 석호 생태계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폐쇄가 며칠씩 길어질 경우 하수처리와 대규모 배수 시스템도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는 현재 개방형 석호 전략을 유지하되 보완 조치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도시 지반을 높이거나 건물 기초를 올리는 방식이 포함된다. 연구진은 석호 아래 지층에 바닷물을 주입해 지반을 최대 30cm 높이는 방안도 검토했다. 비용은 약 3억~4억 유로 수준으로 추정했다.
두 번째는 도시를 거대한 제방으로 둘러싸는 '링 다이크(ring-diking)' 전략이다. 비용은 약 5억~45억 유로 수준으로 제시된다. 다만 도시와 석호의 물리적 연결이 약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 번째는 석호를 바다와 차단하는 폐쇄형 석호 전략이다. 이 방식은 도시와 관광 기능을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지만, 석호 생태계 손실이 불가피할 수 있다. 비용은 최대 200억 유로 이상, 초대형 제방을 포함하면 300억 유로를 넘길 가능성도 제시됐다.
네 번째는 떠나는 선택지다. 일부 문화유산 이전과 주민 이주, 도시 일부 포기를 포함하는 극단적 시나리오다. 연구진은 현재 기후정책 수준과 극단적 빙상 붕괴 시나리오가 겹칠 경우 장기적으로 이런 선택이 불가피해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다만 베네치아가 곧 사라진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연구 핵심은 정반대에 있다.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도시를 얼마나 더 오래 지킬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대형 방어시설이 설계부터 완공까지 수십 년 걸릴 수 있어, 이러한 대규모 전환에 필요한 준비기간을 30~50년으로 예상했다.
즉, 눈앞에 현실이 닥쳤을 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베네치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네덜란드, 몰디브 등 다른 저지대 해안 도시들도 장기적으로 유사한 선택을 마주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네치아는 해수면 상승 시대 해안 도시 적응 경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제시된다.
연구진은 베네치아를 떠나야 하는 장기 시나리오를 피할 방법으로 빠른 온실가스 감축을 강조했다. 기후적응도 필요하지만, 감축 없이 적응만으로는 도시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계획적으로 떠나는 유럽의 기후적응
실제 떠나는 선택지는 유럽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계획적으로 선택하는 '이주'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Earth's Future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이미 11개국에서 최소 44건의 '계획적 이주' 사례가 시행됐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난 뒤 주민이 흩어지는 자연발생적 이동과는 다르다. 홍수, 해안침식, 해수면 상승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동체와 자산 이전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91개 학술·정부·언론 자료를 검토해 35건의 시행 사례와 9건의 계획 사례를 확인했다. 이미 최소 4002가구가 이전했고, 추가로 4700가구가 계획 단계에 포함돼 있다.
대표 사례로 프랑스 방데(Vendée)가 있다. 2010년 폭풍 신시아(Xynthia) 이후 1510가구가 이전 대상이 됐다. 폴란드 니에보초비(Nieboczowy)에선 마을 단위 이주가 추진됐고, 네덜란드 누르트바르트(Noordwaard)에선 일부 주민이 다시 정착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이주하려면 성공 조건이 있다. 보상, 주민 참여, 추진 시점, 정부 리더십, 이주 이후 토지 활용이 꼽힌다. 충분한 보상과 주민 참여가 확보된 사례는 수용성이 높았고, 재난 직후는 정책 추진 계기가 됐다.
기후위기 시대 해수면 상승을 대비하기 위한 적응은 제방을 높여서만도 안 되고, 경우에 따라 떠나는 선택지까지 논의되고 있다. 베네치아가 당장 떠나야 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끝까지 지키는 시나리오부터 옮기는 선택지까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장면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