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AI의 심장'… 5500개 엔비디아 칩 쉴새없이 연산작업
건물 짓고 가동까지 14개월
될성부른 스타트업 무료 개방
차기 유니콘 인큐베이터 역할
직접 수랭식으로 폐열 재활용
환경과 공존하는 그린 AI 모델
"국가경쟁력, AI에서 갈릴 것"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기차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브리스틀 에머슨스 그린. 이곳에 위치한 국립복합재센터(NCC)는 영국 인공지능(AI) 핵심 인프라스트럭처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 11위 규모 슈퍼컴퓨터 '이점바드AI'가 자리하고 있어서다. 마크 이점바드는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19세기 공학자로 대서양 횡단 기선, 현수교 등이 모두 그가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최근 매일경제신문이 찾은 '이점바드AI' 내부는 여느 창고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서자 5500개에 달하는 엔비디아 GH200 그레이스 호퍼 칩이 쉼 없이 연산작업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연산량에도 이점바드AI에서는 거의 소음이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사이먼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AI용으로만 사용하는 슈퍼컴퓨터는 이점바드AI가 최초일 것"이라며 "여기에서 수없이 많은 혁신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점바드AI가 본격 가동된 것은 지난해 7월. 용지 조성부터 가동까지 걸린 시간은 14개월에 불과했다.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우리는 건물을 짓는 데 2~3년을 허비할 여유가 없었다"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AI 산업 생태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점바드AI는 컴퓨팅 연산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에 무료로 개방된다. 단, 보유한 기술력이 높은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한해서다. 이점바드AI가 낳은 최고의 자식 중 하나는 AI 신소재 설계 스타트업 '커스프(Cusp)AI'다. AI를 통해 신물질을 개발하는 업체로, 창업 1년 만에 14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우리나라 현대차와 삼성도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이 이 기업 고문이다.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AI는 인터넷만큼이나 파괴적일 것"이라며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빌려 쓰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설계하고 키워내는 나라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점바드AI가 차기 유니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셈.
이점바드AI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투자액 3억파운드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정부의 초기 투자는 3억 파운드 수준이지만, 알츠하이머 백신 개발 가속화, 고효율 풍력 발전기 터빈 설계, 중화학 및 조선업 등 전통 산업의 AI 접목 등 이 시스템을 통해 도출될 산업적·의학적 결과물들은 투자액의 20~30배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점바드AI의 또 다른 장점은 '친환경'이다. 슈퍼컴퓨터 내부에는 파이프를 흐르는 물소리가 계속 들렸다. 차가운 물이 프로세서 위 금속판을 직접 통과하며 열을 빼앗는 것이다. '직접 수랭식(Direct Liquid Cooling)' 시스템이다. 슈퍼컴퓨터에 냉각용으로 사용된 물은 난방용 온수로 재활용된다.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폐열 온수를 인접한 대학 건물의 겨울철 난방용 에너지로 전면 재활용하는 순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첨단 AI 기술 발전이 필연적으로 막대한 전력 소모와 탄소 배출을 동반한다는 우려 속에서 기술 발전과 환경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모색하는 '그린 AI(Green AI)'의 실증 모델을 구현한 셈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슈퍼컴퓨터가 수도 런던이 아닌 지방 브리스틀에 있는 것도 한국에 시사점을 준다. AI 인프라를 통해 지방 활성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은 "브리스틀은 영국에서 많은 젊은이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며 "첨단 테크 기술이 있는 지역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전국의 우수 인재와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브리스틀로 모여들고, 이는 다시 브리스틀대를 비롯한 지역 학계의 연구 역량 강화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AI에서 갈린다는 게 매킨토시 스미스 센터장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AI와 관련해 완전히 다른 리그에 있다"면서 "영국이나 한국과 같은 경제 규모의 나라에서는 보다 실용적이고 실속 있는 AI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래에는 AI 인프라에 투자한 국가와 그러지 않은 국가, 두 단계의 등급으로 나뉠 것"이면서 "영국은 가장 실용적인 방법으로 AI에 적극 투자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리스틀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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