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묻는다”…‘한국현대목판화협회 2026 회원전’ 목판화의 현재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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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파내는 자리마다 이미지가 남는다.
덜어냄과 비움을 통해 완성되는 목판화는, 류연복 작가의 말처럼 '시의 언어'에 가깝다.
"목판화는 시의 언어가 아닐까요." 연꽃이 돋보이는 작품 앞에서 만난 류연복 작가는 한국 목판화의 한 축을 형성해온 인물이다.
40여년간 20차례 개인전, 200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한국목판화협회의 초기를 이끌어온 김억 작가는 오랜 시간 국토의 풍경과 그 안에 스민 사람들의 삶을 목판에 새겨온 국내 목판화의 대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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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손기환·안정민·류연복·김억 등 중견부터 신진까지, 전통과 실험 넘나들어

나무를 파내는 자리마다 이미지가 남는다. 덜어냄과 비움을 통해 완성되는 목판화는, 류연복 작가의 말처럼 ‘시의 언어’에 가깝다. 판을 깎고 다시 찍어내는 작업의 결과는 온전히 작가의 의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칼과 목판, 나무의 결, 손의 힘이 겹쳐지며 비로소 장면이 드러난다. 2026 한국현대목판화협회 회원전 ‘나무에게 묻는다’는 나무에게 건네는 질문이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읽힌다.
해움미술관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작가 50여 명이 참여해 70여 점의 작품을 내걸었다. 김상구, 손기환, 안정민, 류연복, 김억 등 한국 목판화를 이끌어온 작가들과 젊은 신진 작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다양한 판화 기법이 공존하는 이번 전시는 목판화의 현재를 수도권에서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로 마련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선으로 단단히 새겨진 화면 옆에는 색이 겹겹이 쌓인 판화가 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재료 자체를 바꿔버린 실험이 이어진다. 서로 다른 속도와 결을 지닌 작업들이 한 공간에서 맞물린다. 한때 1980년대 민중미술의 강한 이미지로 기억되던 목판화는, 이제 다양한 기법과 재료, 주제를 통해 훨씬 넓은 스펙트럼으로 확장되고 있다.
“목판화는 시의 언어가 아닐까요.” 연꽃이 돋보이는 작품 앞에서 만난 류연복 작가는 한국 목판화의 한 축을 형성해온 인물이다. 1980~90년대 민중의 저항정신을 담은 벽화운동과 걸개그림을 거쳐, 이후 자연과 생명, 인간의 삶을 목판 위에 새겨왔다. 그는 “나무를 판다는 건 형상을 남기고 비워내는 시와 닮아 있다”고 비유했다. 그의 작품 ‘꽃한송이’에는 바위 위 연꽃과 함께, 그 아래 단면 속에 사람의 얼굴들이 겹겹이 숨어 있다. 시대와 생명, 풍경과 사람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 보인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서로 다른 결의 작업들이 한 공간에서 교차해 더욱 뜻깊었다. 신진 작가부터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온 중견 작가들까지 참여해 세대의 흐름을 함께 드러냈다. 서울과 경기, 울산, 부산, 제주 등 각 지역에서 출발한 시선은 해녀의 삶, 도시의 풍경, 추상적 이미지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된다. 전통적인 흑백 목판부터 색을 겹겹이 쌓거나 재료를 결합한 작업까지, 목판화의 표현 방식 또한 폭넓게 펼쳐졌다.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안정민 작가는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 무대에서도 활동하며 목판화의 확장을 시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 위에 실리콘을 캐스팅한 신작 ‘해인31’을 선보이며 목판을 순백의 설원처럼 표현했다. 그는 “프레스 기계 없이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다”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방식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색채를 통해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도 공개됐다. 40여년간 20차례 개인전, 200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하며 한국목판화협회의 초기를 이끌어온 김억 작가는 오랜 시간 국토의 풍경과 그 안에 스민 사람들의 삶을 목판에 새겨온 국내 목판화의 대표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평소의 작업과 색다르게 붉은 색감이 돋보이는 ‘홍매’ 시리즈를 선보였다. 작품은 분홍과 붉은 색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마치 꽃향기가 번지듯 봄의 기운을 전한다. 그는 “봄을 맞이해 밝고 명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며 “보는 이들이 기분 좋은 감상을 가져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한지를 활용해 볼륨감과 함께 부드럽고 정겨움이 돋보이는 작품 ‘화조’를 출품한 손기환 한국현대목판화협회장은 목판화가 나아갈 길에 관한 고민도 함께 전했다. “디지털화되는 시대 속에서 목판화의 정체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전시가 마련됐다”라고.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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