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0만~500만 원 준단 말에 혹해…한국 오니 빚더미 앉아 있었다”
E-7-3 비자 발급 20대 방글라데시 남성 칸 씨
브로커 SNS 선전에 속아 빚더미 앉은 채 입국
입국 후에는 불법파견·계약해지 위협 시달려
도움 요청하자 브로커 “가족 해치겠다” 협박
결국 계속 강제·불법노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주노동자들은 기회의 땅이라 여기며 한국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송출입 브로커' 장밋빛 선전에 거금 중개비를 지불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현실은 브로커가 보여준 장밋빛과 다릅니다. 이들은 입국 전부터 수천만 원대 송출 비용을 저당 잡히고, 입국 후에는 비자라는 약점을 쥐고 있는 브로커 협박에 시달립니다. 그 현실을 2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 고향에 가족이 가진 땅을 팔아서 중개비를 마련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1년 만에 해고 위기에 놓였다.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브로커는 내게 왜 도움을 청하냐며 협박했다."
방글라데시 국적 20대 청년 칸(가명) 씨는 경남지역 한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지 브로커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서 어렵게 한국에 왔지만 장밋빛 현실은 없었다.
고향 땅 판 돈, 브로커 주머니에
칸 씨는 2023년 4월 누리소통망(SNS)에서 한 게시물을 봤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면 한달에 400만~500만 원을 벌 수 있고, 돈만 주면 교육·비자 발급·한국 취업까지 챙겨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칸 씨는 부모님, 남동생, 그리고 2년 전 결혼한 아내를 두고 있다. 그는 가족을 위해 한국에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2023년 9월 즈음 SNS를 통해 브로커 조직에 연락했다. 2023년 10월 20일, 방글라데시 이쉬와르디 지역에서 브로커 ㄱ 씨를 만날 수 있었다. ㄱ 씨는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으로 현지에 머물며 브로커 역할을 했다.
그는 칸 씨에게 한국에 입국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사진을 보여주며 달콤한 말을 전했다.
"내가 지금까지 방글라데시 노동자 70명을 키워 한국에 보냈어. 1000만 원을 주면 교육 받고 한국으로 갈 수 있는 자리를 너에게도 구해줄게. 한국에서는 40만 타카(480만여 원) 수준 급여를 받게 될 거야. 날 믿어도 돼."
ㄱ 씨는 센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센터는 '비자 문제 해결', '외국인 체류·절차 도움' 등을 안내하는 곳이었다. 한국 등의 취업 비자를 받을수 있게끔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사전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센터에는 칸 씨처럼 취업비자를 받고자 훈련하는 훈련생들이 수십 명 있었다.
ㄱ 씨는 칸 씨에게 송출·입 비용과 절차를 이야기했다. 처음엔 10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3개월 이내에 한국으로 보내줄 수 있어. 그런데 내 센터에 등록해야 하고 비자 문제 해결, 훈련 비용 등 1000만 원이 필요해."
1000만 원. 칸 씨는 한국에 간다면 3개월만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라 생각했다. 급한 마음에 칸 씨는 가족들에게 돈을 빌렸다. 처음엔 350만 원을 지급하고 센터에서 용접기술을 배웠다.
브로커 조직 SNS에는 칸 씨를 제외한 다른 청년들이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칸 씨도 조만간 갈 수 있을 거란 꿈에 부풀었다.
브로커는 잔금을 빨리 달라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칸, 다음 달에 용접 시험이 있으니 남은 돈을 한 번에 빨리 내도록 해."
칸 씨는 가족들에게 재차 도움을 요청했고, 가족은 급매 가격으로 땅을 팔아 잔금을 마련했다. 브로커 조직에 총 1000만 원을 지급했다.
칸 씨는 교육 3개월 만에 센터 용접 시험에 합격했다. 곧 비자 발급 소식이 있겠거니 싶었지만, 합격 5개월이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칸 씨는 답답한 마음에 ㄱ 씨를 찾았다. ㄱ 씨는 추가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칸, 용접시험을 다시 봐야할 것 같아. 시험 비용을 더 내도록 해. 그리고 한국에 가는 비용이 이전보다 인상됐어. 2000만 원을 더 보내야 돼."
칸 씨는 브로커에게 조심스럽게 항의했다.
"형님, 저는 1000만 원을 지급했고 용접 시험에도 이미 합격했으며 약속한 3개월도 이미 지났지 않습니까."
ㄱ 씨는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칸, 네 말은 지금 돈을 못 주겠다는 거지. 그렇다면 한국에 갈 수 없어. 지금까지 지급한 돈 1000만 원도 환불하지 않을 거고."
칸 씨는 계속된 추가금 요구에 ㄱ 씨와 브로커 동료들에게 더 이상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고 간청했다. ㄱ 씨는 두 손 모아 요구하는 칸 씨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칸, 일자리 쿼터를 사오는 데 뒷돈이 들었어. 추가금을 주면 다음달 한국에 보내줄게. 안 주면 송출 명단에서 널 빼고 다른 사람을 넣을 수 밖에 없어. 너 말고도 한국에 가고 싶은 사람이 내게 돈을 지급하려고 줄을 서있다고."
칸 씨는 급한대로 누나에게 돈을 빌려 ㄱ 씨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칸 씨가 야금야금 브로커에게 중개비 명목으로 지급한 액수는 총 3000만 원에 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칸 씨는 중개비를 낸지 2년 후인 2025년 3월께 E-7-3(조선소 용접) 비자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칸 씨는 경남 한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1년간 근무한다는 내용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는 200만 원 남짓 수준의 첫 급여를 받고, 현지 브로커가 SNS 올린 게시물이 과대포장됐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설상가상 회사는 칸 씨에게 근로계약서에 적힌대로 업무를 지시하지 않았다.
칸 씨는 계약서에 적힌 사업장 소재지 대신 다른 소재지에 파견돼 일했다. 묵묵히 일했지만, 성실함을 보상받지 못했다. 입국 1년, 회사가 이적동의서를 내밀었다. E-7-3 비자는 업종, 지역, 업무 제한이 걸려 쉽게 이직할 수 없다. 칸 씨는 거부했으나 회사는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칸 씨는 ㄱ 씨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거금 3000만 원을 지급한만큼, 브로커가 상황을 중재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형님, 저는 한국에 오기 위해 큰 금액을 썼습니다. 회사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고 있는데, 만약 지금 방글라데시로 돌아간다면 제 인생은 망가질 겁니다."
ㄱ 씨는 차갑게 대답했다.
"칸,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어. 만약 네 회사에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네가 다른 회사에 일을 찾아야지. 네가 나한테 한국에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보내줬잖아. 내가 널 나쁜 회사, 나쁜 일자리로 보낸 게 아니잖아."
칸 씨는 절박함에 지역 노동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칸 씨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지원으로 지난달 30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고용노동부에 상담도 요청했다.
며칠 지난 이달 3일 오후 10시께, 브로커 조직은 칸 씨 방글라데시 집을 찾아가 협박하기 시작했다. 칸 씨가 송출입 업무 대행을 위해 브로커에 개인 신상 등을 모두 넘겨준 게 화근이 됐다. ㄱ 씨는 칸 씨에게 가족을 언급하며 위협했다.
"칸, 한국에서 문제 일으키지마. 구제신청 같은 거 취소하지 않으면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들한테 해를 끼칠거야. 방글라데시에 있는 부모님한테도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 할거고."
칸 씨는 불안에 떨었다. 그럼에도 빚을 갚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서 계속 일해야 했다. 지난 10일, 칸 씨는 노동단체·이주노동자 자원활동가 등과 동행해 고용노동부 중재 아래 회사와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
이미 빚을 떠안고 온 칸 씨에게 선택지란 없었다. E-7-3 비자 한계와 이직 불투명성 때문에 자신을 내친 회사에 다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막대한 빚을 지고 온 한국에서 다시 떠나고 싶지 않다. 브로커들에게 협박 받지 않고 단지 원래 일터로 돌아가 성실히 일해 돈을 벌고 싶을뿐이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