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농사철, 척추 주의보] 내 몸보다 농사, 허리는 ‘곡소리’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경남의 농촌 지역에서는 모내기 준비부터 각종 작물 파종, 하우스 작업까지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농업인들의 일손은 쉴 틈 없이 돌아간다. 하지만 풍성한 수확을 향한 의욕이 앞선 영농 활동은 때로 척추에 예기치 못한 적신호를 켜기도 한다. 논과 밭을 오가며 장시간 허리를 숙이거나 바닥에 쪼그려 앉는 동작, 무거운 농기자재를 반복적으로 나르는 작업은 연령을 불문하고 농업인들의 허리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복병이다.
◇척추를 짓누르는 농사일, 척추관 협착증과 허리디스크 주의= 농사일에서 피할 수 없는 쪼그려 앉는 자세와 허리 굽히기는 척추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무너뜨리고, 요추(허리뼈) 내부에 가해지는 압력을 서 있을 때보다 2~3배 이상 급격히 상승시킨다. 이러한 작업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농업인들은 크게 두 가지 대표적인 척추 질환에 취약해진다.
첫째는 흔히 허리디스크로 불리는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다. 허리를 굽힌 채 무거운 비료 포대나 수확물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면 척추뼈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하는 디스크(추간판)가 강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 나오거나 파열될 수 있다. 밀려 나온 디스크가 주변 신경을 누르면서 염증과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둘째는 척추관 협착증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간 반복적인 영농 작업으로 인해 척추에 퇴행성 변화가 누적되면, 척추관 주변의 황색 인대가 두꺼워지고 관절 부위의 뼈가 자라나면서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 자체가 좁아지게 된다.

/클립아트코리아/
◇초기에 발견하면 비수술적 치료로 충분한 회복 기대= 모든 치료는 정확한 검사와 진단으로부터 시작된다.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살피고 영상 검사를 통해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이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눌려 있는지, 염증과 유착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MRI 검사를 통해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마비 증상이나 대소변 장애가 없는 초기 및 중기의 척추 질환은 대부분 비수술적 방법으로 호전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시술의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인 내시경적 경막외 신경성형술(EEN)이 주목받고 있다. 꼬리뼈 부위를 통해 지름 1~3㎜ 내외의 가느다란 초소형 내시경 카테터를 삽입해, 척추 내부를 실시간 고화질 영상으로 직접 들여다보며 치료하는 방식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김종근 김해 the큰병원 병원장은 “전문의가 내시경을 통해 신경 유착 부위를 확인하며 섬세하게 박리하고, 정확한 위치에 염증 제거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에 시술 성공률과 치료 만족도가 높다”며 “국소마취하에 30분 내외면 모든 과정이 종료돼 오랜 기간 병원을 찾기 힘든 농업인들이나 전신마취가 부담스러운 고령 환자에게도 적합한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불가피한 수술적 치료는 양방향 척추 내시경술= 김종근 병원장은 “보존적, 비수술적 치료를 충분히 시행했음에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극심하거나 신경 손상이 진행되는 중증 환자라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며 “과거 척추 수술은 피부와 근육을 넓게 절개해야 해 신체적 부담이 컸지만, 최근에는 양방향 척추 내시경술(UBE)을 통해 이런 걱정을 크게 덜게 됐다”고 말했다.
UBE는 등 부위에 약 5㎜ 정도의 작은 구멍 두 개만 내 수술을 진행한다. 한쪽 구멍으로는 수술 부위를 확대해 보여주는 고화질 내시경을, 다른 한쪽으로는 정밀 수술 기구를 삽입해 신경을 압박하는 디스크나 두꺼워진 인대만 선택적으로 제거한다. 척추를 지지하는 정상적인 근육과 인대, 뼈의 손상을 최소화하므로 수술 후 통증과 출혈이 적다. 회복 속도 역시 매우 빨라 수술 다음 날부터 보행이 가능하며, 짧은 입원 기간을 거쳐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척추 질환 예방의 첫걸음, 농작업 환경 개선과 스트레칭 생활화=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질환이 발생하거나 재발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농사일은 고된 작업이지만, 척추를 보호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바닥에 직접 쪼그려 앉아 작업하는 자세는 되도록 피하고,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이동식 작업 의자(일명 쪼그리)를 사용해 무릎과 허리로 가는 하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또한, 바닥에 있는 무거운 수확물이나 농기구를 들 때는 선 채로 허리만 굽히지 말고, 무릎을 굽히고 앉아 물건을 몸에 최대한 밀착시킨 상태에서 하체의 힘을 이용해 들어올려야 한다. 작업 중 1시간에 한 번씩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가볍게 뒤로 젖혀주는 스트레칭을 통해 경직된 척추 주변 근육을 틈틈이 풀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종근 병원장은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은 훈장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다급한 구조 신호다. 이를 고된 농사일로 인한 당연한 통증으로 여기며 병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숙련된 전문의와 상의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다면,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나 활기차고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도움말= 김해 the큰병원 김종근 병원장(신경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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