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었는데...퀄컴을 구한 '한 달의 기적'
퀄컴의 전쟁<5>
퀄컴은 자체 개발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인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의 확산을 위해 3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를 지원하는 통신용 반도체, 기지국과 교환기 등 통신장비, 그리고 휴대폰이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해 줄 휴대폰 및 통신장비업체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장비업체들은 이미 미국에서 2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으로 결정된 시분할 다중접속(TDMA) 방식을 제쳐 두고 성공 가능성을 알 수 없는 CDMA용 휴대폰과 장비 개발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통신업체들이 CDMA를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은 한 가지였다. 퀄컴이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다. 그렇게 퀄컴은 통신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반도체와 통신장비,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로 변신했다.

적수에게 맡긴 반도체, 효자가 되다
처음부터 퀄컴은 CDMA에 필요한 반도체를 주문형 반도체 방식으로 만들었다. 주문형 반도체란 설계를 내부에서 하고 생산을 외부업체에 맡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면서 막대한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어 퀄컴 같은 신생기업(스타트업)에 유리했다.
그렇게 퀄컴은 1990년 CDMA 기술을 구현할 반도체 개발팀을 꾸렸다. 개발팀은 불과 한 달 만에 주문형 반도체의 기본 설계를 마쳤다. 과거 군과 정부기관, 방산업체 휴즈항공 등과 일하면서 반도체를 설계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덕분에 퀄컴은 필요한 통신용 반도체를 입맛대로 만들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에 퀄컴이 설계한 반도체를 주문 받아 생산한 곳이 경쟁업체인 모토로라였다는 점이다. 모토로라는 휴대폰과 통신장비 뿐 아니라 반도체를 주문 받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도 수행했다. 그런데 모토로라는 CDMA의 적수인 TDMA 장비를 만드는 업체였다. 하지만 퀄컴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에 적수인 모토로라가 CDMA용 반도체와 통신장비를 만들면 CDMA 기술에 회의적인 업체들을 설득하기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이렇게 만든 통신용 반도체가 휴대폰에 들어가는 'MSD'(mobile station digital)다. MSD는 음성을 디지털 신호로 바꾼 뒤 여기에 암호를 붙여 전송하고, 수신한 디지털 신호를 음성으로 복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운영체제(OS)처럼 배터리 관리, 자판 입력, 화면 표시 등 휴대폰을 제어했다. 요즘 스마트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응용 프로세서(AP)인 셈이다.
MSD는 훗날 퀄컴에게 효자 노릇을 하는 스마트폰용 반도체 '스냅드래곤'으로 발전했다. 퀄컴이 발표한 회계연도 기준 2025년 4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스냅드래곤 등 휴대폰용 반도체는 분기 전체 매출 95억 달러(약 13조8,200억 원) 가운데 60억 달러(약 8조7,300억 원) 매출을 올려 63% 비중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수익원이다. 그런 점에서 퀄컴이 직접 반도체를 개발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삼성전자와 애플도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사용한다.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실적 발표 때 "삼성전자의 '갤럭시S26' 스마트폰 중 스냅드래곤을 장착한 제품이 75%"라고 밝혔다. 나머지 25%는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엑시노스 2600' AP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상장으로 이어진 장비 개발...절묘한 타이밍
퀄컴은 자체 개발한 CDMA용 반도체를 모토로라, AT&T 등 통신장비 업체들에게 공급해 장비 제작 비용을 떨어뜨리겠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장비 개발에 필요한 기술도 지원했다. 그런데도 장비업체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장비를 구입할 이동통신업체를 먼저 데려와야 기지국 등에 필요한 통신장비를 만들겠다고 맞섰다. 판매처까지 퀄컴이 찾아오라는 요구였다.
결국 퀄컴은 1990년 이동통신업체 아메리테크가 아직 만들지도 않은 AT&T의 CDMA 장비를 구입하도록 주선했다. 이 계약이 성사되자 다른 장비업체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때 퀄컴의 CDMA 장비를 만들었던 AT&T 장비사업부문은 1996년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로 분사했다가 2006년 프랑스 장비업체 알카텔과 합병했으며 다시 핀란드 장비업체 노키아에 흡수됐다.
반도체와 달리 퀄컴이 직접 통신장비를 개발하지 않고,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장비업체들을 설득한 이면에는 이동통신업체들의 견제가 있었다. 이동통신업체들은 CDMA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이 통신장비마저 독점 공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장비 공급업체들이 많아야 경쟁을 통해 구입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통신장비 개발은 뜻하지 않게 퀄컴의 주식 상장으로 이어졌다. 퀄컴은 개발비용으로 자금이 급속히 소진되며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금난을 해소하려면 증시에 상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1991년 12월, 퀄컴은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그 시점이 절묘했다. 퀄컴이 상장하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는 2세대 이동통신의 기술 표준으로 TDMA 방식을 결정했다. CTIA는 CDMA가 장비 공급이 늦어져 상용화 하기 힘들다고 봤다. 만약 퀄컴의 상장 일정이 한 달만 늦었어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증시 상장 후 모토로라, AT&T, 노던텔레콤과 CDMA 상용화를 결정한 한국의 삼성전자,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이 CDMA 통신장비를 제조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결국 퀄컴도 장비 생산에 직접 뛰어들었다. 장비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퀄컴은 1994년 장비업체 노던텔레콤과 공동생산 계약을 맺었다. 퀄컴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제공하고 노던텔레콤은 제조 시설, 인력과 공장을 보탰다. 그러면서 퀄컴도 한때 CDMA의 주요 통신장비 업체로 부상했다.
지금은 퀄컴이 통신장비를 생산하지 않는다. 퀄컴은 1999년 스웨덴 업체 에릭슨과 벌였던 특허 소송을 마무리하는 대가로 장비 사업을 스웨덴 업체 에릭슨에 넘겼다.

약이 되고 독이 된 휴대폰 사업
마지막 남은 난제는 휴대폰이었다. 퀄컴은 전 세계 휴대폰 업체들을 상대로 CDMA 휴대폰 생산을 협의했지만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 휴대폰 업체들은 TDMA와 유럽의 GSM 방식의 휴대폰을 생산하느라 여력이 없었다.
결국 퀄컴은 휴대폰까지 직접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1994년 일본 소니와 손잡고 휴대폰 제작을 위한 합작사 퀄컴 퍼스널 일렉트로닉스(QPE)를 설립했다. 퀄컴과 소니가 합작사 지분을 각각 51%, 49% 나눠 가졌다.
퀄컴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휴대폰 공장을 지었고, 여기에 소니는 전설적인 인물 사토 유타카를 보냈다. 사토 유타카는 전 세계 휴대용 오디오 기기 바람을 일으킨 '워크맨'을 만든 인물이다.
QPE는 1995년 첫 번째 제품을 내놓은 이래 1999년까지 누적 1,500만 대의 휴대폰을 생산했다. 미국의 이동통신업체 US웨스트를 비롯해 스프린트, 벨 애틀란틱, 홍콩의 허치슨텔레콤과 한국의 SK텔레콤 등이 퀄컴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퀄컴의 휴대폰 사업은 1997년 상반기까지 실적이 괜찮았다. 당시 QPE는 미국에서 CDMA용 휴대폰을 공급하는 유일한 업체였다. 그러나 퀄컴의 휴대폰 사업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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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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