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독주가 끝나고 찾아오는 자동차·유통· 화장품을 준비하라

윤지호 경제평론가는 시장의 성격 변화를 지목했다. 상반기 한국 증시는 불안이 큰 시장이었다. 전쟁 리스크가 겹쳤고 금리 경로에 대한 확신도 약했다. 유가 역시 안정됐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는 숫자가 명확한 기업으로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시장이 선택한 것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였다. 여기에 일부 증권주가 더해졌을 뿐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쉬운 전략은 실적이 선명하게 보이는 종목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불안한 장에서는 확실성이 곧 프리미엄이 되기 때문이다.

윤지호 평론가가 하반기를 조심스럽게 보는 이유는 거시 환경이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가장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조건은 저금리 저유가 저물가다. 이른바 3저 환경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하나도 확신하기 어렵다. 금리는 낮지 않다. 유가는 지정학 변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또 비용 상승이 기업의 판매가 인상으로 전가되기 시작하면 이는 결국 물가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수요 견인형 인플레이션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공급발 인플레이션이 섞이는 상황이다. 비용이 먼저 오르고 기업들이 이를 가격에 전가하는 흐름은 경기에는 부담인데 물가는 쉽게 안 내려가는 조합을 만든다. 시장 입장에서는 가장 다루기 불편한 국면이다.

그의 진단은 냉정했다. 과거 미국 빅테크는 막대한 영업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투자하고도 주주환원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설비투자가 너무 커지면서 잉여현금흐름이 급격히 줄고 있다. 돈을 벌기는 벌지만 그보다 더 많이 써야 하는 구조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기업은 채권 발행까지 거론된다. AI가 분명 거대한 기회인 것은 맞지만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핵심 기업들조차 재무 부담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은 가볍지 않다. 반도체를 사주는 고객이 무한정 강한 현금 창출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반도체 주가 역시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논리는 최근 시장의 열광과도 부딪힌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분명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마진 구조도 좋아졌다. 예전처럼 성장률이 꺾이자마자 적자로 추락하는 구조와는 다르다. 윤지호 경제평론가도 이 점은 인정했다. 지금의 메모리 산업은 과거 사이클보다 훨씬 견고하다. 장기 공급 계약도 늘고 있다. 다만 그는 이 장기 계약을 영원한 고성장 보증서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장기 계약은 공급 부족이 계속될 때 가격을 무한정 올리기보다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장치에 가깝다. 다시 말해 시장만 믿고 단가를 밀어 올리는 대신 일정한 가격과 물량의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꺾인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성장률과 마진의 조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윤지호 경제평론가가 강조한 단어가 분산이다. 지금까지의 승자는 집중 투자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생태계에 포트폴리오를 몰아넣는 방식이 통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같은 AI 내러티브 안에서도 수혜의 층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하드웨어 그 자체보다 수요와 응용의 영역이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눈에 띄는 후보로 피지컬 AI와 로봇을 꼽았다. AI가 서버와 메모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과 생활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새로운 수혜 기업군이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중소형 성장 테마를 찾자는 접근이 아니었다. 한국 증시가 점점 선진국형 구조로 바뀌면서 큰 자금은 결국 대형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인덱스 자금과 연기금 자금 그리고 부동산에서 이동하는 자금까지 생각하면 앞으로는 대형주의 프리미엄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분산도 무작정 여기저기 흩뿌리는 분산이 아니라 대형주 안에서의 정밀한 재배치에 가깝다.
증권주가 대표적이다. 이미 많이 오른 종목만 볼 것이 아니라 아직 밸류에이션이 덜 반영된 대형사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논리는 다른 업종으로도 확장된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았지만 실적과 수출이 돌아서고 있는 업종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백화점과 유통주를 사례로 들었다. 한국 내수는 안 된다는 인식이 워낙 강했지만 반도체 호황의 낙수 효과와 소비 회복이 맞물리면서 예상보다 좋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화장품 역시 같은 맥락이다. 시장은 반도체만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업종 확산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 시장의 중심이다. 그러나 중심이라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더구나 중심 산업의 성장률이 둔화될 가능성이 보이는 국면에서는 나머지 영역으로의 온기 확산을 읽어내는 능력이 훨씬 중요해진다. 윤지호 경제평론가는 시장 전체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수는 더 열릴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그 길이 과거처럼 소수 종목의 독주로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으로의 시장은 올라가도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버는 장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는 지수 전망보다 먼저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여전히 과거의 승리 공식에만 갇혀 있지 않은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한국 증시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다. 반도체 초강세가 만든 자신감은 유효하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반도체만 보면 된다는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 시장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방이 제한적이고 상방이 열려 있는 새로운 대형주를 찾는 작업. 반도체를 기본축으로 두되 수요와 응용과 확산의 영역으로 시야를 넓히는 작업. 윤지호 경제평론가가 말한 분산의 시대는 결국 이런 의미다. 지금은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쪽에 몰입하지 않는 투자자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