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장애인 체육은 삶의 일부가 돼야 한다."…정이루리 교수가 말한 코리아오픈의 교육 가치

김종석 기자 2026. 4. 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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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 학생 13명 볼퍼슨·진행요원 파견…“사소한 자원봉사 아닌 진로를 바꾸는 현장”
- “장애 이해가 특수체육의 출발점”…코리아오픈, 체육대생에게 가장 살아 있는 교육 무대
- “가장 큰 장벽은 시설과 지도자”…고령 장애인 시대, 생활체육 중심 전환 필요
서울 코리아오픈 휠체어테니스 국제대회에서 국민대 자원봉사 활동을 이끈 정이루리 교수. 정이루리 교수 제공

정이루리 국민대 스포츠교육학과 교수(48)에게 최근 막을 내린 국제테니스연맹(ITF) 유니클로 휠체어테니스투어(WT) 500 서울 코리아오픈은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최정상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겨루는 무대이자 정 교수의 제자들에게는 장애인 스포츠를 가장 가까이서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 '섭외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실질적으로 해온 역할은 더 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마다 국민대 학생들을 볼 퍼슨과 진행요원으로 파견해 대회 운영을 돕고, 그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장애인 체육을 몸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대 스포츠교육학과 학생 13명이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열리는 대회 현장에 1주일 가까이 투입됐습니다. 학생들은 경기 중 볼퍼슨 역할을 맡고, 시합에 배치되지 않을 때는 선수 장비 이동과 대회장 정리, 각종 현장 지원 업무를 도왔습니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이상 고온현상으로 낮 기온이 최대 30도 가까이 올라가 자원봉사 학생들도 더위에 지칠 만했지만 굵은 땀방울과 함께 코트를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정 교수는 "매우 많은 일을 하게 돼 신체적으로는 고되지만, 실제 선수들과 대화하고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봉사 시간이 아니라, 책과 강의실 밖에서 장애인 스포츠를 실제로 배우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서울 코리아오픈을 빛낸 국민대 자원봉사 학생과 정이루리 교수. 테니스코리아 박상욱 기자

정 교수가 이 대회를 학생 교육에 의미 있는 무대로 보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그가 전공하는 특수체육은 결국 장애인에게 체육을 지도할 역량을 기르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제대로 지도하려면 먼저 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 교수는 "장애인 스포츠 분야에서는 대회 외에는 실질적으로 같이할 기회가 거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 코리아오픈은 접근성이 좋은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가장 규모 있는 대회이고, 학생들에게는 장애인 스포츠 현장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입니다.

 정 교수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적 의미로 '인식의 변화'를 꼽았습니다. 그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체육대학 학생들이 장애인 체육 분야를 진로의 한 축으로 인식하도록 견문을 넓혀주는 효과도 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그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과거 코리아오픈에서 볼퍼슨으로 활동했던 졸업생이 이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됐고, 결국 특수체육을 진로로 선택해 지금은 대한장애인체육회와 서울시장애인체육회 등 핵심 행정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 교수는 이 사례를 떠올리며 "이번 대회 참가가 결코 사소한 자원봉사 이상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 자신도 처음부터 이 길을 예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특수체육 수업을 들으며 학기 말 현장실습에 참여했고, 그 경험이 진로를 바꿨다고 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체육이 얼마나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 그때 처음 깊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체육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사회로 다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 분야가 꼭 필요한 영역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친 그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다운증후군, 자폐성 장애 아동의 신체활동 측정에 관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정 교수는 "다운증후군, 자폐성 장애인 신체활동이 중요해서 측정이 필요한데 비장애인 신체활동 측정은 7일 동안 측정해야 해서 장애인 대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체활동 측정 기준을 7일보다 짧게 설정하기 위해서 신뢰도, 타당도 등 다양한 변인을 조사한 연구"라고 설명했습니다. 2013년부터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며 발달장애와 행동 관리 분야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대 자원봉사 학생이 볼 퍼슨으로 활동하고 있다. 테니스코리아

정 교수의 시선은 대회 운영이나 학생 교육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가 보는 장애인 체육의 핵심 과제는 더 넓은 데 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장애인들에게 체육은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수 육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생활체육의 비중을 높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합니다. 신체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의 비율이 높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애인 체육은 일부 엘리트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와 연결된 영역이라는 시각입니다.

 이 대목에서 정 교수는 지도자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짚었습니다. 장애인 스포츠는 비장애인 스포츠보다 지도자 1명이 맡을 수 있는 인원이 적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만으로는 부족하고, 비장애인 스포츠 지도자들도 장애인 스포츠를 이해하고 지도할 수 있도록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시에 지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가 많이 배출될수록 장애인 스포츠가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특수체육이 별도 영역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한국 체육 전체 중 일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 교수의 문제의식은 더 선명해집니다. 그는 우리나라 등록장애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이라는 점을 짚으며, 이제 고령과 장애는 따로 떼어 볼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건강과 재활, 여가, 사회적 고립 예방, 평생체육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특히 고령 장애인에게는 적극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는 "건강과 여가, 사회통합 측면에서 체육이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했습니다.

서울 코리아오픈 시상식에서 한자리에 모인 대회 관계자. 입상 선수, 협회 집행부, 자원봉사자들의 표정이 모두 밝다. 테니스코리아

결국 정 교수가 보는 한국 장애인 체육의 가장 큰 장벽도 분명합니다. "시설과 지도자"입니다. 장애인 전용체육관인 반다비 체육관이 전국적으로 더 늘어나야 하고, 장애인들이 실제로 편하게 접근하고 양질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수 육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누구나 쉽게 체육을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장애인 체육을 단순히 성적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스포츠 참여가 삶에 어떤 효과를 주는지 여러모로 분석하는 연구가 더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서울 코리아오픈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정이루리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은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대회 운영을 돕는 며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장애인 체육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출발점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정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장애인 체육이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면, 그 삶을 이해하려는 교육도 결국 현장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코트 안을 뜨겁게 달굴 서울 코리아오픈은 끝났지만, 코트 밖의 승부는 이제부터입니다. 마침,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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