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 수술 실손보험금 심사에서 ‘의료자문의견 왜곡’ 의혹

이재원 기자 2026. 4. 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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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의 원문 “입원 적정”에서 통지문 “입원 불필요”...정반대 내용 전달 논란
중개업체 개입 구조 속 문서 변형 가능성 제기...보험사 포함 책임 주체 규명 쟁점
정맥학회 “실손보험 4000만 가입자 신뢰 문제”…법 개정·독립 심사기구 도입 요구
[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하지정맥류 수술 이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의료자문의견 왜곡' 의혹이 제기되면서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왼쪽부터 김태식 정맥학회 이사장, 안상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실손보험 관련 피해 소비자, 강정화 소비자연맹 회장,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대한정맥학회는 20일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홀에서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의 의료자문 결과가 원문과 다르게 환자에게 전달된 정황을 공개하며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번 논란은 한 하지정맥류 수술 환자의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불거졌다. 학회에 따르면, 2025년 11월 A 환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은 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보험사는 의료자문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환자에게 전달된 결과 통지문에는 보험금 일부 부지급 결정이 포함됐다.

문제는 자문을 수행한 의사가 해당 통지문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2026년 2월, 자문의였던 C 교수는 본인이 작성한 의료자문의견과 환자에게 전달된 결과 내용이 상반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이 같은 정황을 3월 대한정맥학회에 알렸다. 학회는 이후 유사 사례가 추가로 존재한다는 점까지 확인하며 사안을 공론화했다.
경위를 설명중인 김태식 대한정맥학회 이사장. (고려대구로병원 응급중환자외상외과, 흉부외과)

실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자문의 원문에는 "하지정맥류 치료 지침과 수술 특성상 1일 입원 치료는 적정하며, 치료 목적과 합병증 예방 측면에서도 타당하다"는 취지의 판단이 담겨 있었다. 반면 환자에게 전달된 통지문에는 "외래 기반 단기 시술로 입원 필요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추가되며, 치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구가 포함됐다.

대한정맥학회는 이러한 차이가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자문의견 조작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고 있다.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전문가의 의료자문의견이 왜곡돼 보험금 지급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국민 권익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유사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당국을 향해 ▲보험업법 및 금융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법령 개정 ▲의료자문 내부통제 기준의 법제화 ▲보험금 부지급 사례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 및 결과 공개 등을 요구했다.

김태식 대한정맥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교수)은 "학회 차원에서 공론화에 나서기까지 매우 착잡한 심정이었다"며 "이 사안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4000만명 이상이 가입한 실손보험 체계 전반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사건 경위와 관련해 "자문의가 작성한 의견과 환자 통지문 간에 문맥상 전혀 다른 사람이 작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의 차이가 확인됐다"며 "복수 사례가 보고된 만큼 단발성 문제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사는 통상 자문의 의견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지만, 이번 사례는 전달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국민 다수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인 만큼 철저한 규명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문 과정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하는 당사자 격 의료진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안상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의료자문에서 '적절한 치료'라고 명확히 판단해 답변을 남겼었다. 그런데 환자 통지 단계에서 정반대 의미로 적혀 전달된 것을 직접 확인했다"며 "이는 단순 해석 차원이 아니라 문구 자체가 바뀐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특히 통지문에 포함된 부정적 문구는 과거 다른 사례에서 제가 사용한 표현이 그대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문서가 수정 가능한 형태로 중개업체를 통해 전달되는 구조에서 변형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구조에서는 보험사와 자문의 사이에 중개업체가 개입하고, 문서가 편집 가능한 상태로 오가면서 내용 변경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며 "문제의 핵심은 특정 주체를 넘어서 이러한 구조 자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문 내용 변경의 주체에 대해서는 "보험사인지, 중개업체인지 명확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문제가 개인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학회를 통해 공론화했다"고 덧붙였다.

환자 측 피해도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해당 환자는 "사전에 보험사에 확인까지 하고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문 이후 치료 적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보험금을 받기까지 한 달 이상 걸리며 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이 환자는 이후 '동시 자문'을 통해 재심을 요청했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적정 치료라는 판단을 받으면서 최종적으로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그는 "결과적으로 처음 판단이 잘못됐던 셈"이라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이번 사안의 본질을 '자문의견 변경의 책임 주체'로 규정하며 보험사의 명확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는 "중개업체가 개입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내용을 바꿨을 가능성은 낮다"며 "누가, 왜 자문 내용을 변경했는지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또 "자문서 대부분은 동일하고 마지막 판단 문구만 바뀐 점을 보면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지급됐어야 할 보험금이 중간 과정에서 부당하게 지급되지 않았던 구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향후 대응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현장 조사를 요청하고 필요 시 고발도 검토할 것"이라며 "유사 사례 존재 여부와 자문 절차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문의견이 수정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과 환자가 자문 주체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독립적 제3자 심사기구 도입 필요성도 제기했다.

권 교수는 "현재 손해보험협회와 학회가 협력해 자문위원 풀을 운영하고 있으나, 동시에 개별 보험사의 별도 자문도 병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제도 운영 실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정맥학회는 이번 사안이 개별 사건을 넘어 민간보험 의료자문 체계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고 보고 있다. 김태식 이사장은 "건강보험은 심사평가원, 자동차보험은 별도 조정기구가 있지만 민간보험은 이를 총괄하는 공식 관리체계가 없다"며 "현재 의료자문은 사실상 제도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손해보험협회와 학회 간 자문 협력 체계가 존재함에도 실제 활용은 미미하고, 개별 보험사를 통한 자문이 병행되는 구조"라며 "검증된 시스템이 있음에도 활용되지 않는 점 역시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 체결된 의료자문 관련 업무협약이 일부 정액형 보험에 한정돼 실손보험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김 이사장은 "제3의료자문 제도 역시 시범사업 단계로, 실손보험 분쟁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독립적인 관리기구 설립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