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정원에서 피어난 로시니의 꽃,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

아르떼 2026. 4. 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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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성곤의 아리아 아모레
나는 이 거리의 제일가는 이발사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中에서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부르지만, 모차르트야말로 ‘유일한 천재’다. 나는 그저 그가 남긴 음악의 정원에서 몇 송이 꽃을 꺾어왔을 뿐이다.” 로시니의 말이다.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 伊)는 공교롭게도 모차르트가 1791년 죽고 난 이듬해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유독 모차르트를 열렬히 흠모하고 숭배했다. 모차르트를 향한 존경심은 거의 종교적인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로시니는 모차르트를 가리켜 “내 젊은 시절의 영감이었고, 내 노년의 위로며, 내 음악 인생의 영원한 전형”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분석하며 따라 하다가 궁극적으로는 극복하고자 했고, 동료들에게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 테데스키노(Il Tedeschino)’. ‘작은 독일인’이라는 뜻. 바로 로시니의 젊은 시절 별명이다. 볼로냐 음악원 시절 다른 학생들은 순수 이탈리아적인 가창 중심의 단순한 선율미에 빠져있을 때, 로시니는 하이든⸱모차르트 등 독일어권 음악가들의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위법을 파고들었기에 붙여진 것이다. 그는 특히 모차르트의 악보를 직접 필사하며 그 정교한 설계를 제 것으로 만드는데 천착했다. 결국 둘은 비록 만난 적은 없어도 음악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나란히 자리하게 된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Pierre-Augustin Beaumarchais, 1732~1799)의 ‘피가로 3부작’이라는 연극 시리즈를 바탕으로 30년의 시간차를 두고 조우하게 되는 것. 모차르트가 2부에 해당하는 ‘피가로의 결혼’을 세상에 내놓은 게 1816년, 그리고 1부를 로시니가 1846년 발표하는데 그게 ‘세비야의 이발사’다. 그러니까 ‘피가로의 결혼’은 ‘세비야의 이발사’의 시퀄(Sequel, 속편)이고, ‘세비야의 이발사’는 ‘피가로의 결혼’의 프리퀄(Prequel, 전편)에 해당한다. 참고로 3부는 ‘죄 많은 어머니’로 거의 상연되지 않는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피가로. 귀족 처녀 로시나를 보고 한눈에 반한 알마비바 백작은 그녀의 완고하고 음흉한 후견인 바르톨로의 방해로 난관에 처한다. 이때 피가로가 여러 기지를 발휘해 여러 소동을 겪으며 둘을 결혼시킨다는 이야기다.

1막 초반에 린도로(Lindoro)라는 가명으로 대학생으로 변장한 채 세레나데를 불러도 응답이 없는 풀죽은 백작과 영리한 피가로가 마주친다. 자기 소개를 하는 피가로. 이 아리아가 바로 모든 바리톤의 레버리지(leverage)인 ‘나는 이 거리의 제일가는 이발사(Largo al factotum della città)’다. 직역하면 ‘이 거리(도시)의 만능 일꾼에게 길을 비켜라’가 된다.

[Hermann Prey – ‘라르고 알 파크토툼’(세비야의 이발사) Gioachino Rossini | 1972년 공연]

길을 비켜라, 이 거리의 만능 일꾼이 나가신다!
이른 아침부터 일터로 향하는 이 즐거움
아, 참으로 멋진 인생, 참으로 즐거운 직업이로다.

세비야 최고의 이발사, 나 피가로 여기 있노라
면도 도구도 있고, 날카로운 칼⸱가위도 챙겼고, 연고도 넉넉하다네
귀족에겐 중매를 서고, 예쁜 아가씨에겐 연애편지를 배달하지
내가 없으면 이 도시가 도통 돌아가질 않는다네

피가로! 여기요! 피가로! 저기요! 피가로! 이리 와요! 피가로! 저쪽으로! 위에서도 피가로! 밑에서도 피가로!

하나씩, 한 명씩, 제발 좀 차례대로 천천히! 아, 나는 행운아! 정말로 쓸모 있는 사람!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만능 일꾼, 바로 나, 피가로다!”

1972년 프랑스의 천재 음악감독 장피에르 포넬(Jean-Pierre Ponnelle, 1932~1988)은 유명 오페라의 영화화에 특화된 인물이다. 총 8편을 남겼는데 그중 첫 작품이 바로 ‘세비야의 이발사’다. 39세의 팔팔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테레사 베르간사⸱루이지 알바⸱엔초 다라 등이 출연했다. 주인공 피가로는 43세 전성기의 독일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Hermann Prey, 1929~1998)로 낙점되었다. 붙임성이 좋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 오페라 영화 속 피가로의 최적화 인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그의 목소리는 특유의 청량감이 있다. 바리톤이지만 소리가 무겁거나 탁하지 않고, 미끈하고 기름지게 울린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되며 연기 또한 본연의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듯 자연스럽다. 천생 피가로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