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소멸이 잉태한 검은 생명력 : 이배 'En attendant: 기다리며'
무한한 가능성의 메시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힘

이배 작가의 숯 앞에서는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까만 덩어리들은 전시장의 들뜬 공기와 미세한 빛마저 빨아들이며 절대적 고요를 만들어낸다. 이 침묵은 모든 것이 끝나버린 텅 빈 적막이 아니다.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무엇으로든 뻗어 나갈 수 있는 응축된 에너지가 발산하는 팽팽한 텐션, 가능태(可能態)의 상태다.
압도적인 긴장감은 숯이 품고 있는 역설적 시간에서 비롯된다. 섭씨 1000도를 웃도는 캄캄한 가마 속에서 나무는 제 형태를 허물며 맹렬히 타들어 간다. 극한의 열기와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뼈대만 남긴 순수한 질료는 죽음과 소멸의 잔해가 아니다. 불씨만 닿으면 언제든 다시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생명력을 잉태한 가능태의 물질이 숯이다.

숯, 가능태로 거듭나는 기다림의 은유
전시의 제목인 프랑스어 'En attendant'은 기다리면서 혹은 기다리는 동안을 뜻한다. 이배 작가의 사유 속에서 기다림은 가능태가 현실로 발현되기 위해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품은 시간이다.
그의 작업의 근간이 되는 숯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인고의 기다림이다. 나무는 가마 속 뜨거운 불길 속에서 제 형태를 잃고 타들어 가지만 어둠 속에서 인내를 거쳐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숯으로 재탄생한다.
소멸과 생성,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침묵의 기다림은 이번 전시의 철학이다. 이배 작가의 캔버스에서 흑색은 빛을 온전히 흡수한 깊은 심연이자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충만한 상태다.
서양의 거장들이 흑색을 빛을 통제하고 물성을 탐구하는 도구로 썼다면 이배의 흑색은 동양의 수묵화처럼 우주의 에너지가 응축된 상태에 가깝다. 동양 철학에서 흑색은 만물을 품고 있는 우주의 근원적인 색이자 만물이 태어나고 돌아가는 기운이 생동하는 실체다.
반대로 백색은 비어 있음이 아닌 여백과 공간을 의미한다. 동양적 사유에서 백색은 만물이 숨 쉬고 순환하는 무한한 바탕이자 가장 고결한 정신의 상태를 뜻한다. 서양 미술에서는 두 색이 대립각을 세우지만 이배 작가의 화면 속 흑백은 이러한 동양적 사유의 상호 관계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질료의 응축이 빚어낸 빛의 파동
평면 작업 중 특히 시선을 붙드는 것은 수많은 숯 조각들을 캔버스 위에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형태로 촘촘하게 배치한 초기 대표작들이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무수한 숯 조각들은 다양한 크기와 각도로 정교하게 잘려 각 조각이 품고 있는 미세한 나무결의 세로 줄무늬와 날카로운 단면이 근접해서 들여다보았을 때 살아 숨 쉬고 있다.

무(無)와 사색이 거대한 풍경으로 뻗어 나가는 명상의 공간
비어 있음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여백과 무(無)의 철학을 주제로 한 공간이다. 이곳은 결핍으로서의 텅 빈 공백이 아니다. 마치 작은 씨앗이 훗날 거대한 나무가 될 힘을 내면에 품고 있듯 아직 발현되지 않은 에너지가 움트기를 기다리는 역동적인 가능태의 공간이다. 이배 작가에게 하얀 캔버스와 전시장의 여백은 숯의 에너지와 관객의 사유가 교차하며 언제든 무한한 형상과 의미로 뻗어 나갈 준비를 마친 잉태의 공간인 셈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사유의 궤적
압도적인 스케일의 숯 조각과 거대한 붓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흑색이 뿜어내는 깊은 심연은 잊고 지냈던 내면과 지난 기억을 직시하게 했다. 우리의 삶 또한 가마 속의 숯과 닮아 있지 않을까. 숱한 생각들이 불타 소멸하고 그 잿더미 속에서 다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며 우리 삶의 뿌리를 단단하게 쥐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 미술이 대중의 욕망이나 이미 존재하는 시류에 영합하곤 한다. 이배 작가의 작품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동시대의 가벼운 욕망에 곁눈질하지 않고 땀 흘리는 장인처럼 본질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작가의 작업 영상은 작품 자체만큼이나 뇌리에 깊게 박힌다. 작가는 자신의 몸집만 한 거대한 붓을 들고 캔버스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인다.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액션 페인팅처럼 무의식이나 우연한 감정을 흩뿌리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에게 예술이란 머리로만 이해하는 관념이 아니다. 오랜 시간 숯과 부대끼며 얻은 생명과 순환의 섭리라는 앎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체화(體化)하여 화면 위로 쏟아내는 일이다. 손끝으로 그려내는 기교가 아니라 머릿속의 치열한 사유를 온몸의 근육과 호흡으로 육체를 통해 세상 밖으로 밀고 나가는 호흡이자 서예와 같은 수행의 과정이다.
작가의 몰입이 만들어낸 깊은 흑색의 세계는 내게 알 수 없는 위안을 건넸다. 숯이라는 가장 단순한 물질로 생명과 순환의 위대함을 보여준 이배 작가. 까만 덩어리들이 뿜어내던 무한한 가능성의 여운은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 것 같다.
전시장을 나서며 가만히 물었다. '우리는 지금 무얼 기다리고 있는가.' 삶이 때로는 식어버린 재처럼 지치고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어쩌면 누구에게나 저 숯처럼 작은 불씨만 닿으면 언제든 다시 뜨거워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에너지가 마침내 환하게 피어오르는 순간을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노크롬(Monochrome) 한 가지 색상만으로 명도와 채도를 조절하여 그린 그림을 뜻한다. 다채로운 색을 배제하고 대상의 본질과 정신성을 강조하는 현대 미술의 한 흐름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물감을 반복해 칠하고 지우며 수행의 정신을 담아낸 한국의 모노크롬 미술을 단색화(Dansaekhwa)라 부르는데 이배 작가는 물감 대신 숯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이 철학을 현대적으로 이어가는 포스트 단색화의 주역으로 꼽힌다.
☞가능태(可能態, Potentiality)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어떤 사물이 장차 특정한 상태나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온전히 품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예: 흙 속의 씨앗은 거목의 가능태이다.) 미학이나 예술에서는 텅 비어있는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무한한 의미와 에너지가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충만한 여백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체화(體化, Embodiment) 사상이나 이론, 지식 따위가 몸에 배어 완전히 자기의 것이 됨을 뜻한다. 예술이나 철학에서는 어떤 관념이나 깨달음을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복적인 수행이나 끈질긴 신체적 경험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감각과 육체로 체득해 내는 과정을 설명할 때 쓰인다. 본문에서는 작가가 우주의 섭리를 물리적인 몸의 움직임과 붓질로 승화시킨 상태를 의미한다.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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