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빈의 스몰데이터]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무엇이 본질적 희소성인가

김하빈 한양대 연구조교수 2026. 4. 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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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큐스대, 175명 교수진에 조기 퇴직 권고…무너진 지능 독점의 시대
AI가 만들어낸 완벽함이 흔해진 세상…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진짜 자산은?
알고리즘의 제안을 ‘구분’해 현실에서 ‘책임’지고 ‘구현’하는 희소한 능력
기계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서사는? 주목받는 ‘인간의 투박함’

(시사저널=김하빈 한양대 연구조교수)

2026년 3월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관춘 포럼 ⓒ연합뉴스

1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미국의 명문 사립대이자 공공행정 및 언론학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가 최근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약 175명의 교수진에게 조기 퇴직을 권고하고, 인문·예술을 포함한 전체 학술 프로그램의 20%에 달하는 93개 과목을 중단하거나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학생 수요와 재정적 효율성이다. 지식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세계적 명문대조차 효율이라는 칼날 아래 인간 지성의 본령을 도려내고 있다.

이 사건은 최적화의 저주가 인간의 영토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보여주는 선명한 사례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지적 결과물을 매끄럽게 다듬을수록 시장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근육이 남긴 투박한 흔적에 주목한다. 생산 비용이 0에 수렴하는 합성 콘텐츠는 희소성을 잃고 필연적으로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내놓은 예측 가능한 평균값인 슬롭(Slop·AI로 만든 질 낮은 양산형 콘텐츠)이 범람하는 시대, 평균적인 완벽함은 이제 가치가 아닌 권태의 상징이 되었다.

가치가 아닌 권태의 상징이 된 '평균적 완벽함'

우리는 지금 모든 결과가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최적화의 저주에 갇혀 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선제적으로 파악해 가장 그럴듯한 선택지만을 내놓을 때, 문화적 가치는 성장이 아닌 퇴보를 경험한다. 비평가 프란체스코 디사(Francesco D'Isa)가 그의 에세이 '알고리즘의 사보타주'에서 통찰했듯, 사용자의 기대를 통계적으로 완벽히 예측하고 충족시키려는 로직은 역설적으로 새로움이 거세된 미학적 권태를 유발한다.

인공지능이 과거 데이터를 학습해 도출해내는 통계적 평균값, 즉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안전한 화이트 스완의 세계를 무한히 복제할 때, 인간의 손끝은 데이터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예외이자 파괴적인 우연인 블랙 스완을 연출한다. 알고리즘의 계산기에 입력되지 않은 이 희귀한 변수야말로 최적화가 만든 지루한 질서를 깨뜨리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 가치는 이제 기계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굳이 흉내 낼 경제적 이유를 못 느끼는 비효율적 마찰에서 발생한다. 생산성을 무시하고 쏟아 부은 인간의 시간이 곧 독보적인 가치가 되는 역설이 시작된 것이다.

지적 노동을 상위에 두던 가치 체계가 뒤흔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공지능 덕분에 데이터 분석이나 보고서 작성에 드는 비용은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반면, 눈앞의 결과물이 진짜 사람이 만든 것인지 확인하고 증명하는 데 드는 비용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 시대에 이것은 가짜가 아니라고 판별하는 일은 이제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고난도 작업이 되었다. 이때 인간의 근육이 직접 개입한 물리적 실체는 그 자체로 결코 위조할 수 없는 살아있는 인증서 역할을 수행한다.

투박한 손끝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기계가 인간의 미세한 오차를 똑같이 흉내 내는 데 드는 비용보다 실제 인간을 고용하는 비용이 더 저렴하거나, 혹은 그 재현 자체가 알고리즘의 효율성 측면에서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크리스토프 펠크(Krzysztof Pelc)가 통찰했듯, 기술이 정점에 달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수작업을 갈망하게 되는 현상은 이제 단순한 취향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것은 지식이 흔해진 시대에 가치가 변치 않는 가장 확실한 신용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디지털 기술이 가짜를 무한히 복제해낼 때, 우리의 육체는 데이터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마지막 진실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이 현상이 장인이 아닌 평범한 화이트칼라에게 주는 시사점은 더욱 엄중하다. 여기서 정보와 실행 사이의 책임의 라스트 마일 문제가 발생한다. AI는 완벽한 전략을 짤 수 있고 결점 없는 도면을 그릴 수 있지만,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사람을 설득하고 현장의 물리적 변수를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알고리즘은 최선의 경로를 제안할 뿐, 그 경로 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마찰과 사고를 감당하지 않는다.

지능의 독점이 무너진 시대에 인간의 가치가 비싸지는 지점은, 알고리즘이 책임질 수 없는 물리적 마찰을 감당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세련된 기획자라도 자신이 만든 도면이 현장에서 어떻게 실체화되는지 모른다면, 그는 조만간 더 저렴한 AI로 대체될 시한부 노동자에 불과하다. 지능이 평준화된 시대의 생존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물리적 현실로 안착시키는 책임의 완수와 집행의 주권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제 아는 자가 아니라 현실의 변수를 감당하는 자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수지타산 안 맞는 비효율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가치

지능의 독점이 무너진 시대에 우리가 점유해야 할 영토는 명확하다. 업무가 오직 화면 속 데이터로만 완결된다면, 그 가치는 인공지능의 단가가 낮아지는 속도에 맞춰 하락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생존 전략은 전문 지식을 물리적 현장과 결합하고, 사람 사이의 미세한 상호작용을 숙련된 감각으로 정제해내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몸을 쓰는 수고로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디지털 세계의 설계를 물리적 세계에서 실제로 구현해내고, 알고리즘이 책임질 수 없는 현장의 수많은 변수를 직접 관리하며 끝까지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업 역시 멋진 철학을 나열하는 대신, 제품이 고객의 손에 닿기까지 거쳐 온 구체적인 공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을 인간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소비자는 이제 영혼 없는 완벽함보다, 기계가 감당하기에는 단가가 맞지 않는 복잡하고 지저분한 과정을 인간이 어떻게 비효율적으로 버텨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시라큐스 대학교처럼 상아탑조차 효율성의 논리에 밀려 인문학을 지워버리는 지금,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계가 대체하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 그 비효율의 현장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에 있다.

편집의 본질은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가치만 남기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쏟아내는 무한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사수해야 할 것은 숭고한 예술성이 아니라, 기계조차 굳이 침범할 가치를 못 느끼는 복잡한 물리적 실체 그 자체다.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미세한 뒤틀림과 흔적은 알고리즘의 최적화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저항인 동시에,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실체적 가치의 마지막 보루다. 화면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무기는 데이터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현장의 감각이다. 그 투박한 손끝이 남기는 오차야말로, 기계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당신만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 서사가 될 것이다.

김하빈 한양대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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